지난주에 본가에서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평창에서 갓 수확한 감자가 1박스 있으니 가져다 먹으라고 말이다. 족히 4-50알은 돼 보이는 감자들. 성인 2명에 5살, 3살 아들 딸이 먹기엔 다소 많은 양이긴 하다. 그동안 본가와 처가에서 오이며, 상추, 가지 등 정성스레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많이 주시긴 했다. 그런데 늘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서 8-90%는 버리기 일쑤였고 아깝기도 하고 못내 죄송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감자는 부지런을 좀 떨어서 되도록 많이 음식으로 승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특명을 해결하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많은 양을 한 번에 요긴하게 처리할 것.
2.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야 할 것.
3. 지나치게 맵거나 달고 짜지 않을 것.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감자 수프'와 '햄감자볶음밥'이 위의 3가지 조건을 충족하기 좋을 듯하여 바로 실행에 옮겼다.
감자와 양파를 어느 정도 작게 썰고 기름에 볶는다. 얼추 볶아졌다 싶을 때 우유를 넣고 생크림을 넣어야 되는데 아뿔싸. 생크림이 없다. 부랴부랴 냉장고를 뒤져보니 선물용으로 들어온 오믈렛이 있어 열어보니 나이스!! 생크림이 가득 묻은 오믈렛이 있어 그 부분만 떼어 냄비에 투하했다. 역시 이가 없으면 잇몸이지.
어느 정도 우유에 삶아진 감자, 양파를 덜어 핸드블렌더에 넣고 갈아 냄비에 약불로 다시 저어주면서 끓였다. 그와 동시에 '햄감자볶음밥'도 동시에 준비했다. 취사병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1000인분의 볶음밥을 만들었던 경력직(?)이기에 볶음밥은 라면보다도 쉬운 음식이 되었다. 수프는 잘 저어주지 않으면 쉽게 타기 때문에 적당히 역량을 배분해서 저녁식사 준비를 마쳤다.
아가들이 하원하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해서 냉동 피자를 1/4 조각 데워서 줬는데 꼬다리 부분을 안 먹고 남겼다. 아까 오믈렛 속 생크림을 발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속으로 나이스 쾌재를 불렀다. 수프에 마무리를 담당하는 '크루통'이 없었는데 여기 있었네. 가위로 적당히 4-5등분 잘라 감자 수프 위에 고명으로 올려 두 아이에게 대접했다.
과연 결과는?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햄감자볶음밥은 남김없이 잘 먹었지만 감자 수프는 두 아이 모두 한두 입만 먹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남은 수프는 모두 우리 부부의 몫이 되었고 수프를 바닥까지 싸악 긁어먹어준 와이프의 모습이 너무나 고마웠다.
자, 이제 한 나머지 45개의 감자를 어떻게 먹어볼지 연구해 볼까. 우선 애들 좀 재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