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살, 4살, 심지어 16개월 아가에게도 존재하는 데일리 루틴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후, 육아시간을 활용하여 부리나케 집에 돌아오면 둘째 하원 시간 무렵이다. 둘째를 하원시키고 첫째 어린이집에 가서 첫째도 무난하게 하원을 시킨다. 어린이집 앞 근처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타고, 모래놀이도 하다 보면 같이 놀던 여러 무리의 아이들도 각자의 부모님들과 함께 집으로 흩어진다. 그럼 첫째, 둘째가 무언가 깜빡했다는 듯이 화들짝 놀라더니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그럼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
첫째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얘기하면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둘째는 손으로 아이스크림 가게 방향을 자기 나름대로 가리키며 옹알이를 한다. 그렇지. 어린이집 끝나고 아이스크림 집은 국룰이지.
여름이 찾아오면서 우리 가족들이 각자의 소소한 하루를 보내고 휴식처럼 찾아가는 곳. 바로 우리 동네 근처에 있는 24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언제부터인지 아이스크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고를 땐 나도 모르게 초집중하게 된다. 아이스크림 취향도 한결같다. 아기상어를 좋아하는 첫째는 맛있다기보다 팬심(?) 때문인지 늘 '상어 아이스크림'을 고른다. 무엇이든 다 잘 먹지만 그래도 신경 써서 먹여야 하는 둘째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단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을 쥐어준다. 와이프는 안 먹고 나는 늘 그렇듯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고른다. 이 일련의 과정은 어제와도 같고, 그저께와도 같다. 우리는 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이스크림을 계산하고 나와서 늘 아파트 쪽문에 위치한 운동기구시설로 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우리 가족은 아이스크림을 여기 벤치에 앉아 사람들 구경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아이스크림이 쉬이 녹기 일쑤라 아이들 얼굴, 옷에 아이스크림 범벅이다. 하지만 어차피 들어가서 씻길 것이기 때문에 이 잠깐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청결과 맞교환한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한다. 슬슬 첫째가 늘 하던 멘트를 할 때가 되었는데.. 급기야 첫째가 한 마디 불쑥 내뱉는다.
"자, 이제 아빠 거 아이스크림이랑 바꿔 먹을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 나이다. 우리 아들은 사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제일 좋아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몇 입 먹지 않고 들고 있었다. 자연스레 아이스크림을 교환하고 다시 고요함과 평화로움의 시간을 갖는다. 각자의 아이스크림 먹방이 끝났다. 그다음 활동은 글쎄.. 감이 잘 안 온다. 데일리 루틴의 시간이 끝나고 나선 변화무쌍한 현실 복귀이기 때문이다. 부엉이 놀이터를 갈지, 킥보드를 탈지, 편의점을 갈지, 빵꾸똥꾸 문구야를 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첫째와 둘째가 하자는 대로, 가자는 대로 발을 내딯겠지만 잠시나마 누구나 아이스크림의 공식 같은 움직임에 행복했다.
나야 38살 아저씨이지만 4살, 2살 아이들에게도 일상의 루틴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이스크림 자체가 좋아서도 있겠지만 어린이집에서 무수한 자극과 경험으로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정리하고 추스를 여유가 필요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엄마 아빠랑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말이다. 뭇 어르신들이 벌써 아기들에게 단 거 먹이느냐고 타일러 주시지만 우리 아기들은 이 시간 자체가 힐링이자 치유이기에 나무랄 수 없다. 수고했어 오늘도 우리 아가들아. 오늘도 끝나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