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침부터 무슨 선글라스를 그렇게 열심히 닦아?” 윤표쌤의 와이프가 묻는다.
“내일 플라잉디스크 애들 데리고 대회 나가잖아. 8월인 데다 15시부터 시합 시작이라서 선글라스 없으면 안 돼.”
“아니, 그러니까 선글라스 챙기는 건 알겠는데 무슨 10분 넘게 닦고 있냐고. 신줏단지 모시듯이.”
“이게 내일 시합에서 제일 중요한 거니까 그렇지.” 윤표쌤이 이미 몇 번이고 닦았던 선글라스를 다시 한번 깨끗이 닦으며 말했다.
“시합에서 선글라스가 제일 중요하다고?” 윤표쌤의 와이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그런 게 있어. 나 다녀올게. 애들 저녁 좀 잘 챙겨줘. 아마 애들 자기 전에 들어올 것 같아.”
“어, 애들 신경 쓰지 말고 잘하고 와.”
윤표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거울에 비친 선글라스 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벌써 5년 넘게 착용한 선글라스라 자외선 차단에는 큰 효과가 없어 보였다. 선글라스를 벗고 다시 안경으로 바꿔 낀 윤표쌤이 엘리베이터를 나서며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선글라스야 오늘도 큰 힘이 되다오.
너를 끼고 나간 시합에서
내가 진 적이 없으니까.”
“야, 은정. 너 유니폼 언제 갈아입을 거야?”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은정이를 만난 하은이가 묻는다.
“학교에서 나가기 직전에 입을라고. 오늘 점심 김치찌개라 혹시나 해서 묻을까 봐.” 은정이가 머리끈으로 머리를 질끈 묶으며 말한다.
“아오. 날씨가 더우니까 자꾸 선크림 바른 게 흘러내린다. 또다시 발라야 돼.” 하은이가 귀찮다는 듯이 볼에 선크림을 펴 바른다.
“근데 오늘 윤표쌤 봄? 하루 종일 선글라스 끼고 돌아다니시던데.”
“어어 맞아. 나도 아침에 봤어. 오늘 아침에는 구름도 많던데 왜 끼시는지...”
“어. 종 쳤다. 이따 1층 필로티에서 만나. ” 하은이가 은정이에게 말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은정이도 뒤따라 교실로 갔다. 다음 시간이 제일 싫어하는 사회 시간이라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며 생각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 애가 하나도 없네...’
“다들 모였니? 교통카드부터 잘 챙겼는지 확인해 보자.”
플라잉디스크 부원 전부는 1층 필로티에 모여 인원 파악과 준비물 확인을 했다. 21명 모두 교통카드와 마실 물, 휴대폰 등의 소지품의 유무를 확인했고 이상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머. 우리 학교 대표 선수들. 얼굴 좀 한 번 보자.” 소리가 나는 곳을 살펴보니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 아이들 한 명의 사고 발생 없이 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윤표쌤이 자세를 고쳐 교장선생님께 정중하게 인사한 뒤 아이들에게도 인사를 하도록 했다.
“내가 직접 가서 응원하면 좋은데 오늘 교육청에서 손님이 오시기로 해서. 미안해요. 너희들 안 다치게 조심히 다녀 와.”
“네.” 학생들은 전부 씩씩한 목소리로 일제히 대답했다.
“자. 그럼 이동합시다. 버스 타고 지하철도 타야 되니 갈 길이 멀어요.”
“져도 괜찮으니까 매너 있게 잘하고 오세요~.” 교장 선생님의 말을 뒤로한 채 윤표쌤과 21명의 학생들은 본선 대회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와, 쟤네는 진짜 하나도 안 떨리나. 어떻게 저렇게 웃으면서 젤리를 나눠 먹을 수 있지?’
은정이는 지하철에서 주은이가 젤리를 다언이 입에 넣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야. 너 솔직히 말해. 하나도 안 떨리지?” 은정이 옆에 있던 우림이가 은정이를 빤히 보면서 말한다.
“떨려서 죽을 것 같은 데 뭔 소리야.”
“너 오늘 하루 종일 완전 무표정이던데. 긴장 안 돼서 그런 거 아니었어?”
“솔직히 오늘 1경기라도 지면 전국대회 못 가는데. 기왕 하는 거 우승해야지. 매일 밤 연습한 게 있는데.”
“와 진짜 근데 우리 열심히 했다. 밤에 8시까지만 하기로 했다가 9시, 10시까지 하고. 그렇지?”
“그러니까. 엄마가 이번 주는 학원 안 가도 뭐라고 안 했거든. 대회 준비해야 한다고.”
“아 진짜 너희 엄마가 그러셨어? 그럼 전국대회 만약에 진출하면 그때 또 학원 안 가도 뭐라 안 하시겠네?”
“그러니까 오늘 이겨야 한다고. 뭔 말인지 알지?”
“O.K. 콜. 접수 완료. 계속 말만 해. 내가 쭉쭉 패스 찔러줄 테니까.” 우림이가 포핸드 동작을 연신 취하며 걱정 말라는 듯이 말한다.
“자. 내리자. 휴대폰 다 주머니에 넣고. 가방 챙기고. 옆에 자는 사람 깨우고. 야. 배짱도 좋다. 어떻게 대회 나가는 데 낮잠을 자냐. 멋지네.” 윤표쌤이 학생들을 전부 지하철에서 내리게 하면서 슬쩍 농담을 한다.
“난 가끔 윤표쌤이 하루 종일 저렇게 농담을 연구하는지가 궁금해.” 하은이가 지하철을 나서며 은정이에게 말한다.
은정이는 대꾸 한마디 하지 않고 눈에 힘을 주며 생각했다.
‘이기고 싶다. 이기고 싶다. 이기고 싶다고. 아 근데 떨린다. 떨린다. 떨린다고.‘
“아이고. 이렇게 또 1년 만에 뵙네요.” 동혜초 김영식 선생님이 윤표쌤을 보자 먼저 인사를 건넨다.
“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한 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윤표쌤이 김영식 선생님께 정중히 인사한다.
“저기 구르미초랑 곡현초는 먼저 와서 몸 풀고 있어요. 가서 인사드리세요.”
윤표쌤이 운동장을 살펴보니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과 남색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플라잉디스크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색은 곡현초고 남색은 구르미초였다.
“동혜는 올해 유니폼 색이 바뀌었네요. 원래 분홍색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노란색이 더 좋다고 올해는 그렇게 했어요. 오. 세라초 아이들 옷이 완전 축구선수들인데.”
“저희도 원래 하늘색이었는데 여자아이들이 빨간색이 멋지다고 해서 막판에 바꿨어요.”
“그래요. 기왕 맞추는 건데 아이들 의견 존중하는 게 좋지. 그럼 이따가 봐요.”
“네. 알겠습니다. 곧 봬요.” 김영식 선생님과 인사한 뒤 윤표쌤은 아이들에게 짐을 운동장 스탠드 한쪽에 풀도록 했다.
“짐 다 내려놓고 A, B, C 그룹별로 서로 몸 풀면서 패스 주고받기 합시다.”
학생들은 일제히 그룹별로 둥그렇게 모여 플라잉디스크 패스를 하며 몸을 풀었다. 그 사이 윤표쌤은 대회 관계자 분들을 만나 인사를 했다.
“오. 윤표쌤. 올해도 여기서 뵙네요.” 곡현초 이형우 선생님이 윤표쌤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아니. 형우쌤. 저렇게 기골이 장대한 여학생들을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합니까? 쟤는 완전 중학생 아니에요?”
윤표쌤이 너스레를 떨며 곡현초 학생들의 체격 조건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우리 이번 아이들이 키는 큰데 체력이 좀 달려서 걱정이에요. 오늘 같은 날씨에 안 다치고 뛸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
“어. 오셨습니까.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윤표쌤과 형우쌤을 깍듯이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바로 구르미초 전성만 선생님이었다.
“구르미초는 뭐 전통의 강호니까. 성만쌤은 여름에 플라잉디스크 심판 연수도 받으셨다면서요?” 형우쌤이 성만쌤을 치켜세우며 말한다.
“아이. 별 거 아닙니다. 때마침 짬이 나서 며칠 잠깐 다녀왔습니다. 윤표쌤 올해도 잘 부탁드려요.”
“아이고. 그럼요. 올해는 좀 살살해 주세요. 전 아직도 작년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요.” 윤표쌤이 성만쌤의 어깨를 두 손으로 주무르며 어리광 부리듯 말한다.
“전부 선수들 라인업 시켜주세요. 제1경기부터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레퍼리 선생님들도 같이 이쪽으로 와주세요.”
“그럼 나중에 봬요.” 윤표쌤이 다른 학교 선생님들께 인사 한 뒤 세라초 진영으로 걸어오며 와신상담하며 다짐했다.
'작년에 곡현초한테 1:9...
구르미초한테 0:7...
올해는 절대 그렇게 안 당한다.'
“선생님. 오늘 전술 알려주세요. 저희 어떻게 하면 되는지. 어느 그룹부터 먼저 나가는지.”
“오냐. 여기 필승 전략이다.”
윤표쌤이 가방 속에서 프린트 한 장을 꺼내어 학생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주며 말한다.
“와. 쌤. 이게 뭐예요?” 학생들이 윤표쌤이 꺼낸 종이를 보며 놀란 눈으로 묻는다.
“이게 그동안 너희들이 연습 경기 결과를 지금까지 정리해 놓은 데이터다. 이걸 보면 어떤 선수가 득점을 많이 했는지, 수비 성공률이 높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걸 바탕으로 짜 놓은 오늘 경기의 경우의 수고.”
윤표쌤이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안경과 바꾸어 쓰며 회심의 한마디를 한다.
“나 오늘 지려고 온 거 아니다.
우승하러 온 거야.
그 중심엔 너희가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