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올해 쉽지 않겠는데?
“효주야, 오늘 도서부 아침에 미팅 있다며... 준비 다 했니?”
효주 엄마가 빨래가 다 된 옷가지를 세탁기에서 꺼내며 말한다.
“그거 이미 그저께 밤에 세팅 다 해서 아이들이랑 어떻게 할지 얘기해 놨어.”
새햐얀 와이셔츠의 옷깃이 살짝 구겨진 부분이 마음이 안 든 효주가 옷깃을 다시 빳빳하게 매만지며 대답한다.
“그 오후에 학원 레벨 테스트는 준비 다했고?”
“아, 그건 이미 사흘 전에 예원이랑 카톡으로 예상 질문지 만들어서 답지 체크했고 노트에 써 놨어.”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며 효주는 와이셔츠 끝에 매달 짧은 넥타이를 고른다.
‘오늘은 날씨가 좀 흐리니까 약간 코발트블루가 좋을 것 같아’
효주는 전신 거울을 보면서 짧은 넥타이를 목 끝까지 올리며 오늘의 패션을 체크한다.
‘아... 레이어드가 좀 별로인데, 아 이럴 때 하필이면 헤드셋을 검은색으로 사가지고... 바지로 만회해야겠다.’
효주는 옷장에서 부츠컷 중에 가장 진한 검은색을 골라 갈아입는다. 그리고 아일랜드 장에서 수십 개의 안경 중 가장 테가 얇고 알이 큰 것으로 바꿔 끼웠다.
‘그래 3월인데 너무 애쓰지 말자. 어차피 친한 애들도 우리 반에 별로 없던데...’
“그래서 윤표샘은 올해 언제부터 스포츠클럽 하신다고 했지?”
민아가 올해 또 같은 반이 된 다은이에게 말한다.
“몰라~ 그냥 만날 여쭤보면 일단 기다리라는 말 밖에 안 하시고... 아니 그냥 지어서라도 얘기하면 좀 좋아?”
“그러니까 기다리는 사람 애가 타는 것도 생각 좀 해줘야지. 하여튼 남자 선생님들은 여자의 이 깊은 마음을 헤아리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게 문제라니까.”
민아가 우아한 척을 가득하며 말하고 있는데 누가 쓱 끼어들며 딴지를 건다.
“황민아.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윤표쌤이 그런 쓸데없는 일에 집중하시냐?”
“야 정한결 너는 신경 끄고 네 할 일이나 해. 만날 똑같은 축구복만 3년째 입고 다니는 주제에.”
민아가 한결이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응~ 아닌데. 나 올해 팀 옮기고 중학교에서 이미 스카우트되어서 새 거 입고 다니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한결이는 그럼 민아를 놀리는 게 익숙한지 곁눈질을 하며 조롱했다. 그 모습을 보니 다은이는 갑자기 불현듯 화가 치밀어 올라 크게 소리쳤다.
“아... 진짜 아니 어떻게 된 게 6학년이 8반이나 되는데 쟤랑 또 같은 반이야... 재수도 진짜 너무 없어...”
“아 나 더 못 기다려. 그냥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올해 언제 플라잉디스크 선수 모집하는지 윤표쌤한테 들어야겠어.”
민아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손을 휘젓으며 말한다.
“그런데 작년에는 은정 언니랑 하은언니랑 또 누구지 우림이 언니? 그렇게 있었는데 우리가 그 정도로 할 수 있을까?”
다은이가 말로만 들었던 작년 6학년 선배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물어본다.
“언니들도 윤표쌤이랑 연습 많이 했으니까 전국대회 갔잖아. 그리고 우리 학년에도 체육 잘하는 아이들 꽤 있음.”
민아는 그런 다은이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한다.
“누구누구 있는데...?”
“음... 우선 나...?”
“아, 4월부터 모집할 거라는 얘기를 한 200번은 한 거 같은데 그만 좀 물어봐.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은 궁금한 거 없고?”
윤표쌤이 귀찮다는 듯이 모니터에만 시선을 둔 채 아이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대충 둘러댄다.
“저희도 작년에 언니들처럼 전국대회 가서 2박 3일 다른 곳에 친구들이랑 놀러 가서 함께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싶단 말이에요.”
민아와 다은이가 윤표쌤이 계신 교실에 찾아가 앙탈을 부린다.
“그 마음은 잘 알지 선생님도. 나도 그렇게 해주고 싶고. 그런데 있잖아 얘들아.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그걸 차근차근 지키...”
“아 그러니까 그걸 4월에 어떻게 할 건지 지금 미리 말해주셔도 되잖아요!!”
윤표샘이 말씀하시는 와중에 다은이가 불쑥 끼어들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한 마디 거든다.
“아니지 아니지. 이미 지금 이렇게 와서 떼쓰는 것부터가 첫 단추를 잘못 꿴 거지. 기다리는 자에게만 행운의 여신이 찾아오는 법. 알았으면 빨리 들어가. 쌤도 일해야지.” 윤표쌤은 다은이가 옆에서 화를 내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고 모니터만 보며 대답한다. 민아와 다은이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자 교실 밖으로 나가는데 윤표쌤이 갑자기 물어본다.
“그런데 너희 효주랑 좀 친하니? 선생님이 효주를 전혀 몰라서 아는 바가 없는데 운동을 잘한다던데?”
‘어떻게 된 게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 애들이 하나도 없냐... 뭐 죄다 뭐? 트랄랄레로 어쩌구 저쩌구...’
효주는 2주 동안 자신이 속한 6학년 2반을 분석한 결과 반 친구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알 수 없는 외계어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여자아이들은 조용하고 차분한 편인 것 같았지만 뭔가 선뜻 말을 나누며 친해지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을 꾸미는 데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사는 아이들도 제법 많다고 느꼈다. 그렇게 생각하며 화장실을 가는 데 키가 작고 안경 쓴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복도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 반 친구 신현지였다.
“너 그거 할 거야?”
“어... 자신은 없는데 해 보고 싶기는 해서...”
효주가 물어보자 현지가 화들짝 놀라며 쥐 죽은 듯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야 신현지. 뭐 하냐? 야 너 이거 해 봤자 제대로 안될 거 같은데”
지나가는 영훈이가 현지를 놀리듯이 말했다.
“뭐라는 거야. x같이 생겨가지고...”
‘응?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효주는 방금 들은 말에 눈이 번쩍 띄었다.
생각지도 못한 강한 표현을 이렇게 작고 다람쥐 같은 애가 다 하다니?
“야 신현지. 너 지금 욕한 거야?”
“응... 아니야... 효주야... 네가 잘 못 들은 거야... 나 욕 못해...”
‘그래...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효주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누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야 신현지. 여자화장실 좀 깨끗이 쓰라고. 네가 쓰고 나면 온통 물바다 아니야.”
같은 반 서은이와 예린이가 현지에게 핀잔을 준다.
“뭐래 이 x신이. 내가 안 그랬다고 x밥아.”
‘응? 뭐라고?’ 이번 것은 진짜 확실히 나쁜 말인 것 같은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야 신현지. 너 지금 말한 거 욕 아니야?”
“응... 아니야.. 효주야.. 나 그런 나쁜 말 못 해...”
효주가 잠시 패닉에 빠져있는 사이에 누군가 복도에서 크게 소리친다.
“야야 종 쳤어 선생님 오신다. 김영훈 너 좀 바닥에 좀 누워있지 마. 왜 쉬는 시간마다 박지원이랑 복도에 누...”
“어쩌라고 저쩌라고 네 인생 아니잖아!!”
영훈이가 친구의 말을 딱 끊고 큰 목소리로 우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현지는 또다시 나지막이 읊조렸다.
“저 x라이 같은 게 x나 나대네...”
‘아... 올해 우리 반 쉽지 않겠는데...’
효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교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