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를 사는 이유

아니 CDP도 없는데 왜 CD를 사는 거임?

by 홍윤표

나는 한때 힙찔이었다. 힙합을 사랑하고 즐겨 들으며 노래방에서 랩만으로 1시간 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낭만 있는 힙찔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힙합팬들, 소위 말하는 '힙덕후'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음반을 사 모으는 컬렉터가 되진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사는 데 바쁜 청년이 1~2만 원 되는 앨범을 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랑하고 좋아했던 앨범은 나름대로 차곡차곡 사 모았고 대략 100개 정도의 CD앨범이 둘째 방 서랍 한편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그중엔 아예 포장도 벗기지 않은 앨범도 있고 심지어는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케이스만 있는 앨범도 있다.


'아니 요샌 cd를 사도 들을 수가 없는데 도대체 cd앨범을 왜 사는 거임?'


최근 힙합 LE 커뮤니티에서 나름 리스너들의 사견이 오갔던 질문 중 하나이다. 오, 뭔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라 쉽사리 답변을 내놓긴 어렵지만 가장 큰 욕구는 '소장'인 것 같다. 앨범 하나를 발매하기 위한 아티스트의 노고를 치하하고 리스펙을 보여주는 행위는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좀 더 의미 있는 서포트 방식 중 하나는 그들의 앨범을 사서 듣거나 콘서트를 보는 것이다. 이 둘 중에 콘서트는 다소 휘발성이 강하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앨범 소장이 좀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출처 : HiphopLE


또 하나의 이유는 (다른 장르의 음악도 그렇지만 유난히) 힙합 리스너들에게 있어 앨범 소장이 주는 의미부여가 좀 더 크다는 것이다. 물론 앨범 판매량으로는 아이돌이나 임영웅을 이길 재간이 없다. 요즘 같은 분위기로는 빈지노 한 트럭이 와도 못 이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지노의 앨범을 사는 리스너의 마음가짐은 이렇지 않을까.


"내가 비록 사재기는 하지 못할지라도 빈지노의 앨범을 소유함으로써 리스너로서 해야 할 소명을 어느 정도 한 셈이야. 그는 나를 모를지라도 그의 벌스를 듣고 이해하며 감동할 수 있는 자격이 나에겐 있어. 그럼 나도 빈지노와 하나가 되는 거야'


일과 육아에 쫓기다 보니 요새는 예전만큼 진득하니 앨범은 고사하고 트랙 하나조차 음미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7월에 다듀, 빈지노, 이센스 등 내 20대를 온전히 함께 했던 아티스트들의 앨범이 줄지어 발매된다. 와이프한테 셋 중에 하나라도 사달라고 졸라봐야겠다. 꼭 지금 아니고 나중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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