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주는 힘

내 글을 읽고 우는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해보았는데

by 홍윤표

여느 때와 다름없는 휴일 아침, 일찍 기상한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빨래, 설거지, 분리수거 등 여러 가지 집안일 종합선물세트를 받아 들고 집안일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다. 아이들 차려준 닭고기뭇국에 밥을 훌훌 말아먹어서 그런지 출출했던 찰나, 장모님께서 우리 식구 먹으라고 김밥을 포장하여 방문하셨다. 처가댁이 가까워서 주말 아침이나 점심 즈음해서 자주 방문하시는데 그때마다 늘 커피, 햄버거 등을 사주시거나 직접 토스트를 구워서 배달해주시기도 한다. 아들 딸도 할머니가 놀러 오시면 버선발로 나가 반길 정도로 우리 아이들한테 물심양면으로 베풀어주시는 게 너무 많아서 늘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대뜸 장모님께서 나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늘 우리 센터에 일이 있는데 글짓기를 하나 해 줄 일이 있어"


장모님이 근무하시는 일터에 주임으로 일하시는 분께서 새 일터에서 적응하기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인사발령을 철회할 수 없겠냐는 일종의 탄원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전에도 한번 우수사원 추천서를 써 드린 적이 있었다. 너무 훌륭하고 괜찮은 직원인데 어떤 장점을 조리 있게 정리해서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길래 인적사항과 공적요지를 전달받아 3~4쪽 되는 공적조서를 작성해서 드렸다. 며칠 후 장모님께서 그 직원이 우수사원으로 선정되었다고 하시면서 매우 기뻐하셨고 나도 나름대로 도움을 조금이나마 드릴 수 있어서 뿌듯했다. 그래서 이번 탄원서는 성격이 정반대의 글이라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출처 : 픽사베이(pixabay)

먼저 주임 되시는 분의 인적사항과 요구조건 등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최근에 녹내장 수술을 하셔서 야간 운전이 어렵다는 점과 15년 이상 근면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셨다는 점을 최대한 부각할 필요가 있었다. 서두에서부터 전문성과 근면함을 두루 갖춘 베테랑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해 나가며 인사발령의 결과를 부득이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점을 조심스럽게 어필해 나갔다. 확실한 주장에는 분명한 근거를 조목조목 하게 밝히고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객관성에 초점을 두어 차근차근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을 썼다. 말미에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꾸준히 이 직장에서 부지런함과 창의성을 겸비한 인재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다 보니 글이 너무 착하고 밋밋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주임님의 입장을 대변해서 글을 썼고 창작, 각색 등의 조미료 하나 없이 있는 그대로 진심을 담아서 써서 드렸다. 그랬더니 30분 지나지 않아 와이프가 카톡 내용을 보여주었다. 장모님께서 주임님 내외가 너무 고마워하셨다면서 글을 보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고 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몰랐는데 사위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잘 써줘서 감사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고 하셨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출처 : 픽사베이(pixabay)

말과 글에 힘이 있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늘 글을 쓸 때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글로 술술 풀어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바람이 내 가슴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글쎄 나도 이게 무슨 감정인지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그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주임님께서 탄원서 내용이 인정을 받아 원래의 일터로 돌아가서 꾸준히 일하셨으면 좋겠다.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 바람이 닿아 좋은 결과를 전해 듣는다면 내 마음이 한껏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무더위에도 가슴이 따뜻해질 수 있다니.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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