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언니들이나 오빠들처럼 잘하고 싶다.
“나 작년에 플디 우승 한 언니들 마주침.”
은유가 횡단보도를 기다리다가 같이 있던 민아와 채아에게 넌지시 말한다.
“아. 그 머리 포니테일로 묶고 다니고 동설중 교복 입은 언니 말하는 거지?”
채아가 은유의 말에 누군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친다.
“어 맞아. 그 언니 되게 시크해 보이던데.”
“그 언니가 둘째 오빠 중2인데 그 오빠도 플디부였다고 했어.”
채아가 같은 학교 중3인 언니를 통해서 세라초 선배들의 소식을 종종 듣고 있어 알려준다.
“맞아. 우리 오빠도 지금 중3인데 윤표쌤이랑 전국대회 같이 나갔었어.”
마찬가지로 같은 학교 중3인 오빠에게서도 세라초 선배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민아가 말한다.
“아후. 나도 올해 열심히 해서 전국대회 나가고 싶은데... 오빠들이랑 언니들이 부럽다...”
은유가 손톱을 입에 가져가 질근거리며 말한다.
“신민아 그래서 너 신청서 어제까지 제출해서 냈지?” 채아의 말에 민아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한다.
“아니...”
“뭐. 아니 왜 안 냈어? 나랑 같이 한다며?”
은유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 모르겠어... 가서 배우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뭔가 어려울 것 같고 못하는 모습 보이면 창피할 거 같아서...”
민아가 자신 없는 듯한 말투로 얘기한다.
“플디부 안 그래도 인원 넘쳐가지고 나중에 추가로 들어오거나 그러면 불리하고 그럴 텐데?”
채아의 말에 민아는 가방을 다시 고쳐 메고 미간에 힘을 준 채로 말한다.
“몰라. 황민아랑 얘기 좀 더 해보고. 안 그래도 이따가 둘이 영상 찍기로 해서 만날 거라.”
“알겠어. 그럼 이따 학교 끝나고 톡해.”
‘난 평소에 운동 잘한다는 얘기
한 번도 못 들어봐서 좀 불안한데...
못해서 놀림받고 싶지 않아...’
민아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교실로 향했다.
“하온이 너 내일부터 뭐 학교 일찍 나가야 한다고 그러지 않았어?”
“맞아. 그래서 다연이랑 연락해서 8시까지 플디 하러 나가야 돼.”
엄마의 물음에 하온이가 가방을 주섬주섬 싸며 말한다.
“플디? 그게 뭐야?”
엄마가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하온이를 바라본다.
“그거 있잖아. 우리 학교에서 체육으로 대회 나가는 거. 플라잉디스크”
“아. 그거 올해도 학교에서 하는 거야? 그 예전에 가온이 오빠가 뭐 횡성인가 전국대회 갔었던 그거?”
하온이의 오빠 가온이는 3년 전 남자 플라잉디스크부 세라초 대표로 나가서 서울시 우승을 하고 그 해 횡성에서 열린 전국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남들보다 특출나진 않았지만 지치지 않는 체력과 이타적인 플레이로 꾸준히 훈련에 참여했고 그 이후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에 재미를 붙여 중학교에서도 축구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응. 맞아. 그때 지도하신 선생님께서 올해 6학년 여학생들 또 대회 준비시켜 주신다고 했어.”
“아이고. 너 키도 조그맣고 안경도 두꺼운 거 썼는데 괜히 가서 다치는 거 아니니?”
유난히 하얀 피부에 작고 왜소한 체구를 가진 하온이가 과연 체육활동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지 하온이 엄마는 걱정이 앞섰다.
“에이. 엄마. 오빠도 지금 뭐 키가 엄청 큰 것도 아닌데 중학교 축구부 계속하고 있잖아. 키가 다가 아니라니까.”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다치지 말고 조심히 해. 알았지?”
“알겠어. 엄마. 내가 무슨 애기야. 학원 숙제도 미리 했어. 다녀올게.”
하온이는 엄마를 안심시키며 가방을 둘러메고 문을 닫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 앞에서 내색은 못했지만 학교스포츠클럽이란 것을 처음 해보는 지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 반에서 스포츠클럽 활동을 하는 것은 나 하나뿐이라 교실에서도 이런 말을 친구들에게도 할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온이는 바지 주머니를 뒤적여 손에 잡히는 비닐봉지를 하나 꺼냈다. 어제 발표를 잘해서 받았던 지렁이 젤리였다.
‘아오. 지렁이 젤리 하나 먹어야겠다.
왜 이렇게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냐 갑자기?’
“올해 여자 아이들은 좀 어떤 거 같아요? 작년 아이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종석쌤이 커피를 내려 윤표쌤에게 건네며 말한다. 종석쌤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6학년 남학생 플라잉디스크부 훈련을 담당하고 있었다. 교내에서 플라잉디스크의 인기가 많아져 지원 학생들이 많아진 탓에 종석쌤과 윤표쌤은 각자 아침에 시간을 따로 내어 훈련을 했고 남학생부는 1주일 빨리 훈련에 임했다.
“이게 제가 올해 여자애들이 완전 베일에 쌓여 있어요. 한 번도 담임이나 교과로 마주친 적이 없어서요.”
윤표쌤이 종석쌤의 말에 답하자 종석쌤이 커피를 홀짝 마시며 답했다.
“아예 접접이 없는 상태에서 마주치는 거구나. 그럼 초반부터 얘기할 것이 많겠네. 작년 아이들은 성격이 강한 아이들이 많아서 좀 고생했지 않았어요. 드세기도 좀 드세고.”
“사실 시합 대비하기는 편했어요. 아이들이 승부욕도 강하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합을 알아서 맞춰 보고. 서로의 장단점을 소통하기도 하고. 올해 아이들은 어떤지 한 번 지켜봐야죠.”
“올해 남자아이들도 비슷해요. 순하고 착하고. 딱 한 번 시켰는데 오늘이 3번째 훈련인가? 그런데도 알아서 자기들끼리 운동장 5바퀴씩 뛰면서 웜업 하고.”
종석쌤의 말에 윤표쌤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다. 며칠 전부터 계속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학생들의 ‘체력’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20분 이상 꾸준히 달릴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한 스포츠인데 윤표샘은 작년 여학생들에게는 그다지 체력훈련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서울시 대표 선발전까지는 체력적인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전국대회에서는 체력의 큰 격차를 보이며 무너졌다.
‘하아... 여학생들한테도 이런 체계적인 훈련을
시킬까 말까 늘 고민이네...
체력훈련 강화한다고 하면
토라져서 나간다고 할 거 같은데.... 고민이다...’
“아니. 이거 뭐 이렇게 잘 안되는 거야?” 현지가 혼잣말로 툴툴거리며 플라잉디스크와 씨름한다.
“선생님이 이번 주까지는 공으로만 게임하고 다음 주부터 디스크로 수업한다고 하시지 않았어? 예습하는 거야?”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린하가 현지에게 말한다.
“짜증 나. 아니 유튜브 영상 보니까 여기 이렇게 손가락으로 걸고 튕기면 된다는데 나는 왜 안되냐고.”
“너 자세 한 번 잡아봐”
린하가 현지에게 다가가 유튜브 영상을 보여 달라고 한 뒤 이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현지의 오른손을 살짝 감싸 쥐면서 말한다.
“여기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디스크에 걸어서 살짝 튕겨야지.”
린하가 그렇게 말하며 현지의 손을 접시 받치듯이 살짝 뒤집는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현지의 손등을, 다른 한 손으로는 손목의 스냅을 살짝 걸어 디스크를 튕기듯이 날렸다. 그랬더니 아까 전까지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던 디스크가 수평으로 회전을 받으며 약 10m가량 날아갔다.
“어... 너 어떻게 했어?”
“영상에서 이렇게 마지막에 손가락을 튕기고 손목을 잡아채던데? 그거 그대로 따라 한 건데?”
린하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현지는 갑자기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냥 나가 죽어야겠다...”
“아니 아니... 그렇게 갑자기 자책하지 말고...”
“아니야... 난 그냥 x신인 거 같아... 때려치울래...”
갑자기 자책하는 현지의 모습을 본 린하는 현지의 두 어깨를 손에 잡고 흔들며 말했다.
“친구야. 우리 사이좋은 친구야. 제발 진정하고. 내가 다시 알려줄 테니까 손을 여기 이렇게 해봐.”
“어 저기 신현지다. 오 신현지 너 이거 새로 샀어? 윤표쌤이 이거 디스크 다음 주부터 주신다고 했는데?”
멀리서 걸어오던 은유가 현지를 보더니 이내 반가워하며 말한다.
“아니.”
“그럼 어떻게 이게 있어?”
“뽀렸는데?”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현지는 갑자기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생각만 해도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킥킥거린다.
“미쳤나 봐. 그걸 왜 허락도 안 받고 함부로 가져와?”
가만히 듣고 있던 린하가 현지를 빤히 보면서 말한다.
“아니... 그냥 윤표쌤 교실에 가봤는데 앞문이 열려있더라고... 그래서 거기 가보니까... 플라잉디스크가 엄청 많은 바구니가 있길래... 한 개 정도는 티도 안 날 거 같아서...”
“와 진짜 인성 진짜... ”
은유가 현지를 타박하면서 어깨에 걸고 있던 에코백에 슬며시 손을 넣는다. 그러더니 현지에게 으스대듯이 무언가를 꺼내며 말한다. 알고 보니 은유도 윤표쌤의 교실에서 플라잉디스크를 몰래 가져온 것이다.
“나만 그런 인성 가진 줄 알았는데!! 우린 역시 통했어!!”
“와... 최은유, 신현지 나 너희랑 같이 못 있겠다. 막 나까지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릴 것 같아...”
은유와 현지가 포옹까지 하며 좋아라 하는 모습을 본 린하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이 진짜. 왜 이렇게 플디가 자꾸 없어지는 느낌이야... 뭐지 이거?’
윤표샘이 사물함 여기저기를 여닫으며 한숨을 푹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