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개월 만에 응가 안 만지는 날
6살인 첫째 아들은 고맙게도 딱 2년 전, 36개월 차가 되던 어느 날, 며칠 간의 훈련 끝에 대소변을 화장실 변기에서 스스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즈음이 첫째의 세 번째 생일이 가까웠기에 생일과 겸해서 기저귀를 뗀 것에 대해 성대한 축하 파티를 연 적이 있었죠. 그 이후로 첫째는 약간의 용변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기저귀를 차는 일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 이후 둘째의 기저귀 떼는 연습을 세 돌 이후로 꾸준히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기저귀에 대한 애착이 생각보다 강했기에 '언젠가는 떼리라'며 기다려주었죠. 그런데 그 기다림이 45개월 차가 될 때까지 지속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긴 추석연휴를 계기로 저희 부부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이번 추석연휴기간에 둘째 기저귀를 한 번 꼭 떼 보리라.'
역시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둘째는 기저귀를 가져다 달라고 울고불고 떼를 쓰기도 하고 잔뜩 토라져서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두문불출하기도 했죠. 그래도 이번에는 저희 부부도 마음을 단단히 먹었기에 절대 기저귀를 채워주지 않았습니다. 무한한 격려와 응원을 겸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하게 다그치기도 하면서 기저귀를 떼는 훈련을 매일 반복했죠. 둘째 본인도 그 많은 응가를 배에 차고 있기가 힘들었는지 코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는 모습도 보였고요. 그래서 넌지시 딸을 화장실에 데리고 가 변기에 앉혔습니다. 그곳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응가가 나오기를 기다렸죠. 야구장의 응원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힘내라!' , '파이팅'을 외치던 그때.
"엄마 나 응가 다 했어."
마침내 며칠간 뱃속에 묵어 있던 긴 황금색 응가가 변기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둘째의 표정을 보니 편안함과 득의양양함이 잔뜩 묻어있더군요. 고생했다 내 새끼. 둘째는 한 번 허들을 넘으면 그 뒤로 퇴행하는 기질이 전혀 아니었기에 우리 부부의 근심도 한 꺼풀 덜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원래 자기 전에는 잘 보여주지 않던 유튜브 시청도 보상으로 제공하였습니다. 곧 있을 오빠 생일에 맞추어 둘째도 '응가 성공 기념 선물'을 사주겠다고 공언하였고요. 둘째의 자신감이 묻어 있는 표정을 보십시오. 속이 후련해지지 않습니까?
사실 저는 배변 활동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발달기제에 관해서 잔소리하거나 강권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다'라는 생각으로 되도록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기다려주려고 노력하는 편에 가깝죠. 모두가 정형화된 일상을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저귀를 떼는 습관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이의 성취욕을 불러일으켜주기 위함과 동시에 좀 더 편안한 일상을 경험시켜 주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수영장에서도 기저귀를 차야 했고, 장거리 이동을 할 때에도 기저귀를 차게 하는 것이 서로 불편한 일이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추석연휴에 좀 더 부지런을 떨었던 것이 모두에게 선물 같은 순간을 선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하나의 선물이 더 있습니다. 실은 첫째가 태어난 2020년 10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 5년간 저는 아이들의 배변 뒤처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 왔습니다. 그 말인즉슨 하루도 아이들의 대변을 만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60개월간 본의 아니게 아이들의 장 건강 상태도 체크(?)하고 손톱에 낀 흔적(?)들까지 꼼꼼히 씻어 왔던 일상도 이제는 안녕입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유독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두 자식 상팔자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