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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이 무를 캐 왔네

겨울 무 진짜 달고 맛있는데 잘 되었네

by 홍윤표

지난 주, 아들과 딸이 무 농장에 가서 열심히 무를 수확해 왔습니다. 무가 동네 슈퍼나 마트에서 볼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실하고 커다랗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몸통만한 무를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즐겁게 캐 온 아이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 딸이 열심히 무를 캐 왔으니 이제 아빠가 실력을 발휘할 시간입니다. 사실 저는 겨울이 다가올수록 대방어 다음으로 무를 먹을 생각에 항상 신이 나있거든요. 겨울 무가 정말 뭉근하니 조려도, 그냥 얼렁뚱땅 무생채로 담가도, 꿀이나 조청보다도 더 달큰하고 맛있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제철 음식을 그때그때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복이다. 복'

먼저 무청을 따로 떼어서 깨끗하게 씻은 뒤 서늘한 곳에 보관합니다. 그리고 무에 붙은 흙을 박박 흐르는 물에 씻은 뒤 필러로 껍질을 벗깁니다. 그런 다음 적당히 길쭉한 사다리꼴 모양으로 5~6 토막을 내어서 쓸 만큼만 도마에 꺼내고 나머지는 보관통에 넣어둡니다. 그 다음 조림용이라면 적당히 취향껏 두께와 모양을 조절해서 썰고 국에 넣을 때는 좀 더 얇고 작은 모양으로 썹니다. 오래 끓일 수록 맛있기 때문에 두께 조절은 자기 입맛에 맞게 조절하면 되고요. 저희 아이들은 소고기는 좀 질기다고 안 먹길래 근래에는 바지막무국을 끓여주고 있습니다. 해산물의 맛을 슬슬 알아가는 중이라 요리하는 데 좀 더 수월하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렇게 국이나 조림으로 먹다보면 기름지거나 얼큰한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서울 출신이지만 경상도식 소고기 무국을 상당히 좋아하는데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좀처럼 메인 메뉴로 시도하지 않고 있긴 합니다만 맑은 소고기 무국이 다소 질릴 때쯤 경상도 스타일로 무국을 끓이면 그만한 별미가 또 없습니다. 육개장도 아닌 것이, 김치찌개도 아닌 것이, 달큰한 맛을 선사해 주거든요. 그때는 또 기호에 맞게 콩나물, , 청양고추, 고춧가루, 고사리 등을 별첨해서 드시면 좋습니다. (사진으로 미처 남기지 못한 게 아쉽군요...)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대뜸 하원하고 돌아오더니 '연유옥수수전'을 어린이집에서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기억이 나느냐 했더니 연유가 들어가서 달콤했고 옥수수가 들어가서 고소했다 합니다. 그 한마디를 듣고 제 머릿속에는 이미 '옥수수전 베이스인데 연유가 들어갔구나'라는 문장이 스쳐지나가며 요리 전체의 알고리즘이 탑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음날, 마침 주말이라 부침가루, 양파, 당근, 무, 먹다남은 스팸, 옥수수콘을 죄다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양파, 당근, 무, 스팸을 볶음밥 재료 만큼이나 잘게 다져냈습니다. 그리고 야채가 많이 들어간 만큼 물이 많이 생길 것을 감안해서 부침가루에 물을 되직하게 잡아 농도를 맞추었구요. 부침가루는 그 자체로 간이 좀 되어 있기에 약불조절과 기름 양만 신경쓰면 부치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난 후 아이들에게 아침 반찬으로 건네 주었더니 먹자마자 하는 말.


"와 이거 대박 맛있다."


그렇게 아들, 딸이 캐 온 무로 밥상을 차리며 모두가 뿌듯하고 행복했던 밥상을 마주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두 자식 상팔자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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