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선생님. 저 어떻게 해요?”
민아가 아침에 윤표샘을 보자마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어리광을 부린다.
“뭘 어떻게 해?”
윤표샘은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운동장에 쌓을 접시콘을 주섬주섬 챙기면서 대답한다.
“아니. 제 좋사가... 어제 아우 진짜?”
“왜 고백했는데 ‘미안하지만 우리 사이는 여기까지인 것 같아.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라고 했어?”
윤표샘이 민아의 말을 중간에 가로채며 시답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아니! 어떻게 제자가 고민거리가 있다는 데 들은 체도 안 하시고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민아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어쩜 그럴 수 있냐는 말투로 윤표샘에게 말한다.
“플디 할 생각은 안 하고 플디 하는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게 더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얼른 나와서 한 개라도 더 던져.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상대 팀은 4월 되기도 전에 훈련했다는데 좋사가 어쩌고 저쩌고...”
윤표샘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끝도 없는 푸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4월이 다 끝나가고 5월이 되자 아침 8시만 되어도 운동장이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10분짜리 게임 하나를 뛰어도 숨이 차고 땀이 주룩주룩 흐를 만큼 초여름 날씨였지만 아이들은 단 한 명의 결석생도 없이 플라잉디스크 훈련을 하기 위해 운동장에 나왔다. 한 달 정도 게임과 훈련을 병행하자 열심히 하는 친구들의 실력이 월등하게 상승하는 게 눈에 띄게 도드라졌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학생들끼리 눈짓으로도 알고 있었고 윤표샘은 그 사이에서 실력 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지는 포핸드는 잘하는데 캐치만 좀 잘했으면 좋겠고... 신민아는 기술은 좋은데 발이 느리고...’
뭐 어찌 되었든지 간에 서두르지 말자.
“아니 그래서 내가 어제 톡 했는데 그 xx가 씹었다고~~~!!”
“와 진짜 인성 어쩔? 그래 놓고 내 얘기 아닌 척 스토리에 올리면 내가 모를 줄 알고!!”
다은이가 입에 거품을 물고 분노하자 하온이가 토끼눈을 하면서 달려와 물었다.
“그래서 걔가 그만 헤어지자고 그랬어?”
“아니 난 헤어지기 싫은데 헤어지자고 할 것 같아서 짜증 나서 그러는 거야 지금. 왜 그렇게 살아?”
“아니 어제도 연애 얘기하더니 오늘도 연애 얘기하는 거야? 연습 안 하고?”
“선생님은 얼마나 심각한지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 그럼 앞으로도 얼마나 심각한지 계속 모를게. 자 모여 봐 봐”
“아후 진짜”
“우리 오늘은 공간 전술 훈련을 해볼 겁니다. 어느 정도 주고받고 패스하고 백핸드, 포핸드 잘할 줄 아는데. 뭔가 먼저 뛰어주거나 옆에서 커버 들어오거나 할 때 망설이는 것이 있더라고. 그건 작년 선배들도 비슷했어. 그래서 오늘은 그걸 극복하기 위해 한번 체크해서 연습해 볼게요.”
윤표샘은 핸드볼 골대와 매트, 배드민턴 네트 등을 코트 중간중간에 배치했다. 윤표샘은 그것들을 수비 삼아 학생들이 요리조리 피해서 플라잉디스크를 주고받게끔 연습을 시키려는 생각이었다. 조별로 5~6명씩 한 그룹으로 묶어 우리 편 엔드존에서부터 상대편 엔드존까지 자유롭게 주고받으면서 공간 창출을 했다. 물론 잘하는 그룹은 실수 없이 패스와 동시에 비어있는 공간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받기를 했지만, 그렇지 않은 그룹에서는 실수가 많이 나왔다.
‘그래도 올해 애들 해볼 만한 게 남 잘못했다고 핀잔주거나 무시하는 거 없어서 좋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아 나도 좀 패스 같은 거 오면 팍팍 잘 잡고 싶다고.”
채연이가 하소연하자 같은 그룹의 채아와 민아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엥? 너 얼마 전에 연습 게임할 때 선생님이 실력 많이 올라갔다고 C조에서 B조로 올라오지 않았어?”
“아 그렇긴 한데 나도 효주나 린하처럼 패스를 길게 주던가 은유나 현지처럼 패스가 정확했으면 좋겠어.”
“윤표샘이 그러셨잖아 이거 대회가 6월에 있으니까 열심히 하면 누구든지 A조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어.”
“그럴 수 있겠지. 어떻게 하면 6월 전에 실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그럼 우리 학교 끝나고 2단지 공터에서 연습하자. 작년 언니들도 거기서 해 질 때까지 만날 3~4시간씩 연습했다고 그랬어.”
“그래? 그럼 우리도 6월에 A조로 대회에 나갈 수 있겠지?”
“그럼. 너 그거 몰랐지. 신현지 스토리에 ‘연습 3일 차’ 올린 거. 보여줄까?”
SNS에 누구보다 진심인 채아가 핸드폰을 열어 자신의 계정에 들어가 현지의 동영상을 보여줬다. 혼자 플라잉디스크를 손에 쥐고 카메라를 든 채로 던지는 장면이었는데 플라잉디스크가 날아가기는커녕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일쑤였다. “봐. 얘 지금은 엔드 존에서 포핸드로 풀 정말 멋지게 날리지만 이때는 C조도 못 들어갈 만큼 실력이 안 좋았어.”
“아무리 그래도 실력이 안 좋았어는 현지가 좀 실망하지 않을까?”
“걔 멘털 겁나 강해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자기가 맘에 드는 건 끝까지 하고 맘에 안 드는 건 죽어도 안 하잖아.”
옆에서 듣고 있던 민아가 거들자 채연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나도 열심히 해봐야겠다. 토요일에 몇 시에 시간 돼?”
“아니 인간들아. 좀 패스를 줄 수 있게 퍼지라고.”
효주가 연습게임을 하다가 도저히 못 버티겠다는 말투로 아이들에게 지시한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윤표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기한다.
“내버려 둬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잖아 유. 내가 지난주부터 퍼지라고 얘기한 횟수를 세어보니까 78번 정도는 되는 거 같더라유.”
“아니. 선생님이 제자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줄 생각을 해주셔야죠?”
“응? 아. 그런가? 어머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해버렸네. 아 좀 진짜 흩어지면서 왔다 갔다 움직여 줘야 할 거 아니냐.”
“저런 모습 보면 윤표선생님 우리 아빠랑 똑같아 아주.”
나은이가 그런 모습을 보며 쿡쿡 웃는다.
“그런데 윤표샘 어제 수업하시다가 그 영어시간에 시험 끝나고 과자 주신다고 하던데 맞아?”
“응, 윤표샘 뒤에 서랍 열면 과자 엄청 많아. 그런데 그 중에 5KG짜리 과자 하나 있었는데 5일 만에 다 동났대. 누가 몰래 와서 먹었나 봐.”
그러자 갑자기 황급히 자리를 뜨는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셔츠, 검은색 안경을 쓴 친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