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겠냐마는
지난 주말은 집에만 있으면 안 되는 날씨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어디를 다녀올까 궁리를 하다가 '국립과천과학관'을 다녀왔죠. 지난번 방문 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유아체험관도 간신히 경험하고 밖에 있는 놀이터에서 좀 놀다가 기차, 공룡과 같은 대형 조형물만 눈요기거리로 보고 왔습니다. 유모차도 물론 대동하고 말이죠. 그런데 이번 방문은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체험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즐겁게 체험하는 모습을 만끽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남매는 협동체험을 하다가도 서로 관심사가 다를 땐 아빠나 엄마랑 1대 1로 다니며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체험했죠. 그렇게 재미있게 주말을 보냈으니 유치원 가기 당연히 싫겠죠.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둘의 온도차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첫째는 얼른 가고 싶다 하고 둘째는 울면서 가기 싫다 하거든요.
첫째는 요즘 수영을 하면서 기초체력이 강해지고 더불어 먹성도 한껏 좋아졌습니다. 밥상 앞에서 깨작거리던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골고루 잘 먹고 배변도 잘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또래에 비해 키가 좀 작아서 걱정이었는데 이번 신체검사 때 보니 꽤 많이 컸더라고요. 그리고 본인이 종이접기를 잘하고 컴퓨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는지 하원 후에도 집에서 코딩 프로그램을 하거나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종이로 이것저것 접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물론 본인이 요즘 제일 관심 있어 하는 마인크래프트 영상도 보긴 하지만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실행에 옮기는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괄목할만한 일이죠. 이러니 얼른 유치원에 가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오나 봅니다. 얼른 가서 친구들 선물도 줘야 하고 자랑도 해야 하니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둘째입니다. 둘째의 머릿속 알고리즘은 줄곧 '어린이집 = 노는 곳 = 공부 안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이집에서는 놀이 시간, 낮잠 시간이 따로 있어 교육보다는 보육에 가까운 교육과정이 주를 이뤘으니까요. 그러나 5살이 되었고 유치원생이 된 다음부터 둘째의 알고리즘은 '유치원 = 공부 많이 하는 곳 = 재미없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작년에 5명이었던 반 친구가 15명으로 늘어나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침만 되면 눈물의 성토대회가 열립니다. "오늘 재미있는 발레 하는 날이지 않느냐." "아빠가 퇴근하자마자 데리러 오겠다."라고 매일 아침 어르고 달래는 중이긴 합니다만... 이와 비슷한 경우를 오빠로부터 2년 전에 겪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야죠.
그러던 중, 첫째가 심히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왜 집에서 아무도 심부름을 안 시켜?"라고 말이죠. 순간 수년 전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아빠가 아들을 심부름시키며 모르는 척 몰래 미행하던 에피소드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둘째가 아직 엄마 뱃속에 있었고 첫째 분유를 타 먹이며 봤던 바로 그때 말입니다. 어찌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느냐고요? 저는 그 모습이 정말 정말 부러웠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입가에 웃음에 가득 번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하원 후에 아빠가 카드를 줄 테니 요 앞 마트에 가서 심부름을 해오라고 얘기했지요. 혼자 가면 무서울 테니 둘째에게도 같이 다녀오라 했더니 흔쾌히 수락을 하더군요.
그렇게 카드를 가지고 편의점으로 간 아이들을 뒤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본인들이 먹고 싶은 간식을 사고 엄마, 아빠가 좋아할 만한 간식도 사서 가지고 오라고 시켰고요. 자주 가던 편의점이라 그런지 씩씩하게 둘이 편의점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비닐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서 가져왔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엄마가 좋아하는 감자칩과 아빠가 좋아하는 나쵸 과자를 야무지게 잘 사 왔더라고요. 그렇게 인생 첫 심부름을 마친 아이들의 득의양양한 표정이 귀엽고 기특해서 사진으로 잘 담아놨네요.
당분간 위와 같은 등원 전쟁이 계속되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배우는 것이 또 있을 것이기에 우리 아이들이 슬기롭게 유치원 생활을 지속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소망이와 구름이의 유치원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