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에세이 챌린지]32. 복날은 간다

학생들 아니었으면 복날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by 홍윤표

교직생활하면서 감사한 것은 누군가가 항상 내 점심을 챙겨준다는 것이다. 좋은 식재료와 저렴한 가격으로 매일매일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이 음식을 즐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점심시간 또한 생활지도가 매우 필요한 시간이기 때문에 마냥 편하게 먹을 수는 없다. 그리고 5~600명가량의 학생이 몰리는 시간이기에 왁자지껄한 장소에서 밥을 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급하게 음식을 욱여넣게 된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내가 먹은 식판을 감사하게도 누군가가 치워주시고, 이 더운 날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쾌적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그래서 교직생활을 그만두기 전까지 계속 '급식충'일 것이다. 흔히들 쓰는 벌레 '충'이 아닌 충성 '충'을 써서 말이다.


이전에 근무하던 학교는 규모도 작고 시설이 다소 낙후된 환경이었다 그래서 별도의 식당시설이 없이 급식차를 이용해 교실 급식을 실시했다.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이 늘 생활지도 문제로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배식하면서 더 달라고 또는 덜 달라고 아우성이 오갈 때도 있었고, 자기가 받은 식판 가지고 자리로 돌아가다가 다른 친구랑 부딪혀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배식 당번을 지정해 줬지만 아무래도 학생이다 보니 어른들처럼 능숙함과 책임감에 있어 지도가 많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했기에 담임으로서 밥이 어떻게 넘어가는지 잘 모르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음식냄새가 교실에 그대로 남아있어 청국장이라도 나오는 날은 다음날까지 고소한 국 향기가 고스란히 자리 잡은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 급식을 격하게 사랑한다.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점심값만 해도 족히 10,000원이 넘어가며 심지어는 냉면이나 갈비탕 한 그릇이 2만 원을 육박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점심을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그냥 차려주는 대로 맛있게 감사히 잘 먹으면 그만이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든 음식이기에 몸에도 좋을 것으로 믿고 그냥 먹으면 된다. 그리고 아무리 과일 값이 비싸도 제철 과일이 항상 디저트로 나오며 가끔 영양교사 선생님의 재량으로 특식이 나오기도 하니 이만하면 가성비가 트렌드인 요즘의 시쳇말로 가히 '혜자'스럽다고 할 만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고소한 닭죽 냄새가 코끝을 감싼다. '음. 오늘 메뉴는 닭죽인가 보네'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식판에 옮겨 담고 있었다. 그리고 교직원 자리로 가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학생들이 뒤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와, 우리 학교 진짜 대박이다.
복날도 다 챙겨주네?"


굉장히 사소롭고 흘려 지나가기 쉬운 일상 속의 대화 한 줄이다. 그런데 나는 이 한마디에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내가 얼마나 요즘 정신없이 살고 있었으면 복날이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복날인 거 뭐 그거 모를 수도 있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상황이다. 하나 나에게는 반복되는 직장과 육아 생활의 쳇바퀴 속에서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요즘 트렌드와 이슈는 무엇인지,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등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있었구나 라는 반성을 가져다주는 순간이었다. 학생들 덕분에 오늘이 복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복날인 걸 알게 해 준 너. Thank you s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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