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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표 Jul 19. 2023

바르고 슬기롭게 즐겁게

선생님이 바라는 건 너희가 저렇게 크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다. 교과서를 누구보다 열심히 읽었고 하루에 발표를 단 한 번도 안 한 적이 없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매달 행해진 애국조회, 반성조회에서도 늘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도록 애썼고 숙제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이다음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하셨으니까.


물론 좋은 선생님만 만나고 자라온 건 아니었다. 미술 시간에 바탕에 하얀 점이 안 보이도록 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탁에서 교실 뒤까지 뺨을 후려 맞은 적도 있다. 단소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초리를 맞은 적도 있고 영어단어 틀린 개수만큼 손등을 자로 맞은 적도 있었다. 틀린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선생님 말이 옳다는 걸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러셨단다. 난 그 말을 믿고 선생님께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꿈꿔왔던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학생은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다른 것보다 내가 자라온 것 중에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예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고 나쁜 것이 무엇인지 그 존재조차 모르게끔 하고 싶었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도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일만 하지 않고 자란다면 너희는 선생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만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오늘 난, 과연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에 깊이 빠졌다.


오늘 난 정말 바빴다. 여름방학에 있을 스포츠클럽 학생들에게 안내문을 발송하고 영어캠프 지도계획서를 제출했다. 학생선수가 혹시라도 폭력을 당하고 있는지 설문조사도 실시했고 생태전환교육 전문가로부터 컨설팅 장학도 받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학생들을 지도할 의무가 있으며 나아가 좀 더 학생들이 바르고 슬기롭게 즐겁게 학교 생활을 영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러나 뉴스에 나온 소식을 접하고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었다.


그저 미안했다. 더 공부 열심히 해서 다른 직업을 갖지 못해 미안했다. 없는 살림에 공부 하나 열심히 하는 거 믿고 길러준 부모님께 미안했다. 나 하나 보면서 살고 있는 와이프와 아들, 딸에게 미안했다. 그동안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준 제자들한테 미안했다. 오늘 하루만 정말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난 내일부터 미안할 필요 없이 내가 믿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좀 더 공부하고 노력하기로 했다. 나보다 더 행복하고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는 너희가 있기에. 너희가 바르고 슬기롭게 즐겁게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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