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첫째의 우렁찬 울음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와이프는 이미 출근해서 집에 없고 오늘도 오롯이 아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120ml 우선 먹인다. 그리고 다음 수면 이후에 먹일 이유식을 미리 소분하여 보관해둔다. 이번주부터 쌀 미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취사병 출신이라 미음은 군대에서도 환자한테 많이 만들어 주었기에 문제 될 것은 없다. 금세 분유 한 통을 다 비운 아들을 소화시키면서 오늘 오전에 할 일들을 정리한다.
우선 전날 먹은 분유통과 젖꼭지, 실리콘 스푼 젖병을 소독하기로 한다. 그리고 밀린 집안일을 분주하게 시작한다. 건조가 다 된 빨래를 개어 놓고 있는데 아들이 큰 소리로 운다. 기저귀를 보니 대변을 보았다. 잽싸게 팔 한쪽에 아들을 받치고 꼼꼼이 씻긴다. 기저귀를 이제 슬슬 통풍이 잘 되는 여름용으로 바꿔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이 맞닿는 부분이 빨갛게 짓무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기를 잘 닦아 준 다음 비O텐 연고를 발라준다. 때마침 빨래할 거리가 있던 참이라 아들의 옷까지 한꺼번에 넣어서 세탁기에 넣는다.
세탁기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대변을 보아서 배고플 수 있으니 쌀미음을 먹여보도록 한다. 처음보는 실리콘 스푼이 신기하고 처음 접하는 미음의 텍스처가 생각보다 괜찮은 모양이다. 그래도 오늘은 지난번보다 3,4숟갈 더 먹는다. 이제 슬슬 찹쌀을 혼분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30분 뒤면 수면 의식을 해도 되겠다 싶어 '더미타임'을 주기로 한다. 요즘 부쩍 배밀이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무대를 마련해 주기로 한다. 바닥에 폭신한 담요를 깔고 사방에 방지쿠션을 설치해주면 아들만의 쇼타임이 시작된다.
그러는 동안 잽싸게 나를 위한 점심을 차린다. 육아휴직하면서 부쩍 국에 밥을 말아먹는 버릇이 생겼다. 밥과 반찬을 차려서 수저를 사용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언제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전날 끓여둔 미역국에 밥을 담고 김치를 꺼내서 대충 먹는다. 아기가 또 보채면서 운다. 눈을 연신 비비는 모양새가 꽤나 졸린가 보다. 아기를 품에 안아 무릎의 오금에 슬금슬금 자극을 준다. 우리 아들은 아빠 품에서 바운스를 느낄때 푹 잠에 드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20분 정도 되니 곤히 잠든 것 같다. 얼른 침대에 눕히고 남은 국밥을 단숨에 들이킨다.
아기가 잘 때가 비로소 집안일의 '골든타임'이다. 2일전 해야 했던 화장실 청소를 부지런히 시작한다. 그것이 끝나면 분리수거 시간. 일반쓰레기,음식물쓰레기를 차곡차곡 정리 박스에 옮겨담고 분리수거장에 가서 배출한다. 그리고 아들의 입에 들어갔던 치발기, 장난감 등을 또 한 번 열탕 소독한다. 그러던 중 세탁기가 세탁을 끝냈다는 알림을 보낸다. 그럼 건조대에 널어서 말릴 옷감과 건조기에 돌릴 세탁물을 구분한 뒤, 각자의 조건에 맞게 세탁물을 정돈한다. 그렇게 일과를 어느정도 마치고 나면 소파에 누워 잠깐 쪽잠을 청한다. 오전 육아 1부가 마무리 되는 셈이다.
2,30분쯤 지났을까. 아들이 낮잠을 1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기저귀를 확인하니 소변을 살짝 봐서 새 기저귀로 갈아준다. 와이프가 퇴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동화책을 읽어주기로 한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아빠의 모습에 집중하는 모양새가 재미있다. 와이프가 읽어주래서 읽어는 주는데 이게 과연 의미가 있나 솟구치는 의구심을 눌러 담은 채 열심히 읽어준다. 그 사이 와이프가 퇴근하는 소리가 들린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다. 오늘 푹 자고 일어난 와이프가 들뜬 목소리로 오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여보, 오늘같은날 집에 있으면 죄인이야. 벚꽃 보러 가자"
아들에게 어울리는 나들이 복장을 입히고 육아 바구니를 체크한다. 분유, 기저귀, 손수건, 물티슈, 보온병... 얼추 다 챙긴 것 같다. 유모차를 차에 실어 근처 카페로 벚꽃 구경을 하러 갔다. 처음엔 죄인이든 뭐든 간에 집에 있고 싶었지만 막상 나오니 나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가면서 이번 주말에 인근 아울렛에 나들이를 가는 것이 어떻냐고 와이프가 묻는다.
아, 그럼 어디든 좋지. 주말에 집에 있으면 뭐해 빈둥대기나 하지
주말이랄게 딱히 없는 육아휴직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주 들렀던 아울렛인데 부모로써 방문하니 이전에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모차 대여소와 수유실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아기 옷이 이렇게 종류도 가지각색이며 가격도 천차만별이구나를 새삼 깨닫는다. 피곤하긴 한데 삼삼오오 나들이하는 가족들 사이에 함께 자리하니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이 육아에만 매진한지 2개월이 지났다. 새삼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을 격하게 존경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우리 아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리라고 마음을 굳게 다 잡았던 나날들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