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의 기적? 글쎄...(21년 2월)

백일이 지났는데 달라진 게 거의 없는 것 같아. 원래 이런 건가?

by 홍윤표

2021년 2월, 첫째 아들 백일 파티에 신경을 많이 쏟던 시기이다. 와이프와 나는 백일상 대여 업체 이곳저곳을 꼼꼼히 비교 분석해 보며 제일 마음에 드는 물품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본가와 처가댁 식구 모두 모일 수 있는 날로 스케줄을 확정하고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리스트도 차근차근 정리했다. 분명 오랜 시간을 두고 빠뜨리는 거 없이 나름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분유통이나 기저귀 등을 깜빡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 부부는 첫째의 첫 기념일을 준비하는 과정에 푹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재미있었으니까.

그렇게 본가와 처가댁에서 백일 행사를 성대하게 마치고 아들에게 들어온 선물과 현금을 정리했다. 현금의 양이 생각보다 꽤 되어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다. 검색해 보니 신생아들에게 들어오는 현금을 주식계좌를 만들어 우량주 주식을 조금씩 사서 성인이 될 때 주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2021년을 회상해 보면 모두들 알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때 당시 얼마나 주식과 코인에 관심을 갖고 열광했는지 말이다. 지금은 그들 중 대부분이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를 포함해서). 여러모로 따져보니 장기적으로 봤을 때 첫째에게 좋은 재테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은행에 가서 통장을 개설하고 주식 몇 개를 사줬다. 그리고 이 주식계좌는 아들이 20살이 되는 날 공개하기로 했다. 잃는 경험은 부모만 하면 되었지 아직은 첫째의 주식은 미실현 손실이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백일 행사를 마친 2021년 2월 즈음, 아들에게 새로운 친구가 하나 생겼다. 바로 '치발기'이다. 포도 모양, 바나나 모양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치발기를 손에서 떼지 못한다. 유모차를 타고 외출할 때나, 집에서 엄마아빠와 함께 놀 때나 항상 치발기를 입에 연신 가져갔던 기억이 있다. 치발기도 취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자신의 잇몸 사이를 간지럽게 하는 이를 확실히 긁어 줄 것. 그립감이 좋아 손에 오래 두고 잡아 놓기 편한 디자인일 것 등을 일일이 따져본 결과 아들은 포도 모양 치발기를 한동안 오래 간직하고 다녔다. 저 시기가 지나고 나서 자연스럽게 일명 '쪽쪽이'라 불리는 젖꼭지로 넘어갔다. 생후 4개월 차, 저 때 당시에는 열탕 냄비가 거의 쉬는 날이 없었다. 젖병과 젖꼭지, 치발기, 유아 장난감 등을 항상 정해진 시간에 맞게 열탕했고 소독기에 넣어 소독했다.

아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소근육보다 대근육이 금방 발달하는 모습이었다. 체중도 적정 체중에 비해 2~30% 더 나가고 어깨와 등, 엉덩이에 힘을 나름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흔드는 모습이 많이 나타났다. 특히 아직까지 뒤집기를 자유롭게 할 수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첫째는 틈만 나면 온몸을 비틀어 뒤집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목에도 힘이 빳빳하게 들어가 더 이상 목이 흐느적거려 다칠까 봐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고 분유를 먹는 양도 컨디션이 좋을 때는 160ml까지 단숨에 들이켤 정도로 성장했다. 마냥 누워만 있을 줄 알았던 첫째가 다행히 성장 과정에 맞추어 잘 자라고 있구나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머리에 맴돌던 시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뒤집기를 한번 성공하면 연신 뒤집다가 안전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경고 문구를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트의 크기도 좀 더 큰 것을 준비하고 유사시에는 안전가드를 설치해야 할지 모르니 많은 정보를 검색해 보던 시기이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역시 그리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지만.

첫째가 조금씩 커 갈수록 등장하는 육아템의 가짓수가 하나둘 늘어갔다. 늘 새것을 사주기에는 비용도 많이 들고 활용 빈도가 다소 짧은 아이템들은 가성비가 떨어지기에 '당O마켓'이라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슬슬 활용하던 시기이다. 아기를 낳고 보니 유모차도 디럭스, 절충형, 휴대용 등 발달 시기에 적합한 모델과 브랜드명이 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첫째에게는 디럭스가 제일 좋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해 당O마켓을 부리나케 검색했다. 그리하여 운이 좋게도 이사를 가서 급히 무료 나눔으로 유모차를 처분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곧바로 구매에 나섰다. 아들은 유모차가 마음에 들었는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잘 타고 다녔고 돌 될 무렵까지 아주 잘 탔던 기억이 난다. 역시 육아는 아이템빨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는다.

교사로서 1년 동안 맡았던 제자들을 무사히 졸업시키고 2020학년도를 마무리했다. 유래 없는 코로나 시국이라 학생들을 대면 수업이 아닌 원격 수업으로 마주하는 날이 훨씬 많았고 막상 만나도 마스크를 쓰던 시기여서 얼굴 한번 못 보고 졸업시킨 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출근 마지막 날 교장, 교감님께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교무실을 떠났다.

"1년 동안 아들 잘 키우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렇다. 나는 2021학년도 육아휴직원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은 육아대디가 되기로 결심했고 다음 달부터는 그 다짐을 실천에 옮긴다. 와이프의 바람도 한몫하긴 했지만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은 지금, 육아라는 큰 과업에 휴직이라는 재료를 살포시 얹어 온전히 육아의 세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또한 주변에서 육아를 도맡아 하는 아빠가 없었기에, 이 과정을 토대로 하여 나의 뒤를 이을 다른 육아 대디에게도 좋은 본보기와 공감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날이 제법 따뜻해졌다. 주변을 하얗게 수놓던 눈의 자취도 서서히 사라져 가고, 아침에 해가 뜨는 시간도 점점 빨라졌다. 그렇게 봄이 다가오는 소리를 잔잔히 느끼려던 찰나, 아들의 울음소리에 오늘 아침도 한바탕 전쟁이다. 실은 아침은 우리 가족에게 좀 더 이른 시간에 찾아왔고 그 시간도 갈수록 오락가락했다. 분명 백일의 기적이 일어나면 아가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그동안 고생한 엄마 아빠를 위해 통잠이라는 것을 선물한다던데...


"그래 사람마다 생활 패턴이 모두 다르듯,
봄이 되고 좀 더 자라다 보면 분명 잘 자는 시기가 오겠지"

그런데 대뜸 와이프가 이렇게 얘기한다.

"여보, 우리 아들도 원더 윅스라는 게 온 거 같아. 그것 때문에 잠 못 자는 아기들도 많대."

"그래, 원더 윅스가 자주 있는 거래?"

"뭐 애들마다 다르긴 한데 2돌 때까지 적어도 10번은 찾아온다는데?"

"뭐?? 그럼 앞으로 10번 정도는 계속 이런 패턴으로 살아야 되는 거야?"


아뿔싸. 큰일 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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