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공사 하기
남편과 나는 한 커플 (남편의 친한 친구와 나의 직장동료)의 소개로 만났다
소개받은 날부터 숨기지 않고 '나는 당신과 다음에도 만나고 싶어요!'하고 티내는 남편의 투명하고 적극적인 모습에 마음을 열었다
우리는 2년반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남편은 흔히 말하는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를 세심하게 챙겼고, 표현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이 점을 감사히 여겼다
또, 남편이 가진 독특함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싸운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 우리 사이에 아이가 끼었을 때는 문제가 달라졌다
그 중 하나가 BCG 접종이었다
BCG는 아기들이 태어나면 4주 이내 접종하는 주사로 종류는 두 가지인데, 9개의 바늘이 있는 도장을 두 번 찍는 경피용과 흔히 불주사라 하는 피내용이 있다
두 가지는 접종범위와 통증, 흉터, 효과, 금액에도 차이가 있다 보니, 그맘때 아이를 둔 엄마들이 폭풍검색하는 것 중 하나다
나는 아기에게 접종할 주사 종류를 이미 정했지만, 남편에게 'BCG접종' 관련링크를 공유했다
우리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부모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지 몸소 느끼고 있었다
엄마가 알아서 하는 집도 많다지만 나는 우리 아이의 일 이니 우리의 일이라 생각했고, 남편도 납득하고 동의하는 결정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남편은 수술 후 회복 중인 나 대신 새로운 가족 맞이를 위해 집안 정비, 택배 주문, 출생신고 등 다양한 일을 맡고 있었다
새롭게 주어진 아빠라는 역할에 책임감을 가지고 열중하고 있었지만, 철저하고 예민한 성격 탓에, 그것들을 다 감당하기 벅찼던 것 같다
그런데 한 숨 돌릴만하면 내가 새로운 이슈를 하나씩 꺼내놓았나 보다
내 딴에는 배려였다
한 번에 풀어놓으면 벅찰 것이 뻔히 눈에 보여서 한 번에 하나씩 감당하게 하려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충분히 내 결정을 신뢰하니 이렇게 할 일이 많을 때는 '내가 알아서 착착'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남편은 갓 출산한 아내에게 버겁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싫어서 꾹 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결국 감정은 삐져나왔다
세 가족이 처음으로 1박 여행을 앞둔 전 날이었다
남편이 나에게 여행준비물 체크리스트를 짜보라고 했지만, 나는 대수롭지않게 "카테고리별로 먹거리, 잠잘거리, 입을 거리, 놀거리 이렇게 챙기면 돼."했다
그리고 짐을 챙기다 아기가 낮잠에서 깨어나는 바람에 짐 싸는 걸 미뤘다
다시 짐을 싸면서 남편의 이상기류를 감지했다
남편은 언제 짐을 싸나 참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화가 나서 폭풍처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찌어찌 짐을 꾸렸고 아기를 재운 후, 못다한 대화를 이어갔다
남편은 육아로 인해 할 일은 많고, 여유를 부리면 휴식시간이 줄어드니, 해야 할 일은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예전과 달라졌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억나지도 않는,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이에 다음날 여행일정 따위 안중에 없는 사람들처럼 밤늦도록 언쟁했다
입은 멈추지 않은 채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평행선을 제발 끊어달라고 한 마음으로 시계를 노려보았다
감정이 격해지니, '싸워도 헤어질 수 없다니!'하는 원통한 마음이 들었다
연애는 "우리 헤어져!"하면 끝나는 건데 말이다
다음 날, 남편이 "기분 풀고 여행 잘 다녀오자"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분명 우리의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다
짐 꾸리는 스타일도, 성향도 달라지지 않았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던 일들이 갈등으로 번진 이유는 아마 우리 사이에 아이가 끼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기에게 부탁해야겠다
엄마 아빠 둘만 살던 좁은 공간을 확장하다 보니 소음이 생길 수 밖에 없지만
최대한 조용히, 서둘러 공사할테니
양해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