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1년 정도 살았을 적에 만난 선생님 이야기다. 배정 받은 초등학교는 규모가 작아 전교생이 고작 70명이었다.
학교가 작을수록 전학생은 유명인사가 된다. 억양이 강한 사투리에 또래보다 훨씬 큰 키를 가진 나는 학생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새로운 무리가 나를 찾아왔고 간을 보다 떠났다. 소위 '잘 나가는 무리'는 자신의 위신을 공고히 하려 나를 부단히도 괴롭혔다.
그때가 살면서 육탄전을 가장 많이 벌였을 시기다. 매 싸움마다 이기자 교내에서 나의 위치는 가장 위였다. 힘의 논리가 온전히 적용되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던 셈이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이제 막 부임한 초보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 하나로 공군을 전역하고 학교에 입성한 그는 군 출신 답게 기골이 장대한 남자였다. 피부는 까맣고 안광이 빛났다. 그 어떤 풍파도 그를 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우물 안 아이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베풀었다. 어떤 장난에도 웃어 넘겼고 싸우면 어르고 타일렀다. 체벌이 흔했지만 그는 절대 아이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제 막 전학 온 나와 처음 교편을 잡은 자신의 모습에서 동변상련을 느꼈다. 유달리 내게 잘해줬고, 나도 그를 잘 따랐다.
교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인정 받은 나는 아이들과 퍽 잘 어울리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그 무리는 내게 호의적이었고, 다른 아이들도 그랬다.
괴롭힐 대상이 사라지자 아이들은 새로운 희생자를 물색했다. 교사는 처음인, 서툴고 친절한 남자. 그가 가장 군침 도는 먹잇감이었으리라.
처음은 사소한 반항으로 시작됐다. 수업 시간에 휘파람을 불거나 키득거리는 아이들이 생겼다. 참다 못한 선생님이 "적당히들 해!"라고 소리쳤다. 잠시 조용해지더니 이내 또 누군가 키득거렸다.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고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건 아이들의 승리였다.
다음 단계는 노골적인 조롱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욕하는 쪽지를 수업 내내 서로에게 넘겨댔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꽤나 방관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하루는 불시에 뒤를 돌아본 선생님에게 누군가 쪽지를 걸렸다. 선생님은 말 없이 쪽지를 읽었고, 수업은 거기서 끝났다. 그는 자리를 오래 비운 채 들어오지 않았다. 역시 아이들의 승리였다.
몇 번 간을 본 아이들은 그를 '이렇게 해도 되는 어른'으로 낙인 찍었다. 이즈음 선생님은 수척해졌고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신경질 내는 일이 많아졌고 툭 하면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은 이미 진즉에 꺾였으리라.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니었다. 끔찍한 광기가 교실 가운데에서부터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광기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은 느닷없이 벌어졌다. 어느 날 아침, 반 아이들의 휴대폰으로 익명의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다. (당시에는 발신인의 전화번호를 바꿔서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이건 아닌데' 싶을 정도로 저급한 음담패설과 육두문자였다. 선생님과 그의 가족까지 언급됐다. 서술하진 않겠지만 아직도 그 문자메세지 내용을 잊지 못한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반 아이들은 이제 정의의 사도 행세까지 했다. 나와 친했던 친구 두 명이 선생님이 없는 틈을 타 메세지 작성자가 누군지 추궁했다.
반 분위기는 숙연했고 서로 눈치만 보기 바빴다. 그 중에 유난히 문제가 많았던 (선생님을 가장 많이 조롱했던) 아이가 있었다. 반복되는 추궁에 그가 키득키득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거 내가 했어! 왜 이리 심각해?"
수업 중에 짓궂은 장난을 치던 아이들도 그를 흘겨 보았다. 모두가 '선을 넘었다'고 인지했다. 그는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는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조용히 책상에 엎드렸다.
이 일은 선생님은 몰라야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알량한 정의감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마자 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마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그동안 저지른 짓의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터다.
문자메세지는 가감 없이 선생님에게 전달됐다. 그는 메세지를 멍하니 들여다 보았다. 자리에 털썩 앉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교실 내에 침묵이 무겁게 깔렸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 보기 바빴다.
선생님이 침묵을 깼다. 아직도 그 목소리와 분위기,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너희가 나를 욕하는 건 괜찮다. 내 수업을 듣지 않아도, 뒤에서 조롱해도 참았다. 이 또한 스승이 행하는 사랑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런데 너희는 이러면 안됐다. 적어도 가족은 건드리면 안됐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눈물을 흘렸다. 다 큰 어른이, 절대 부러지지 않을 것 같던 남자가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뚝 뚝 흘렸다. 말을 더 잇지 못했고, 그날은 그 어떤 수업도 없었다.
조용한 나날이 이어졌다. 선생님은 더 이상 열의가 없었고, 기계 같은 태도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가 분필을 쥘 때마다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제 와서 생각해 봐도, 그 교실은 광기의 현장이었다. 살면서 보았던 것 중 가장 순수하고, 그래서 더 잔인한 악의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은 순진무구한 웃음으로 한 남자가 가지고 있던 신념과 자존심을 산산조각 냈다. 방향이 없기에 더욱 악랄했고, 목적이 없기에 더욱 끔찍했다.
최근 학생들이 남교사의 사진을 캡쳐해 여성 알몸 사진에 합성하고 조롱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기사를 접했다. 기사를 보자마자 기억 저편으로 고이 묻어뒀던 일련의 사건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맙소사,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악의가 저기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