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하게 추운 날이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이 잔뜩 흐린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낮인데도 해가 나오지 않아서 늦은 오후로 접어들기라도 한 것처럼 사위는 어둑어둑하다. 낮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부는 바람조차 스산했다. 일을 돕는 사람들은 그저 말없이 할 일을 찾아 묵묵히 움직일 뿐이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이사였다.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설렘은 없었다. 그저 철 모르는 아이들이 밖으로 나온 자기들 짐을 보고 신기해하며 장난을 치고 떠드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오늘 이삿짐은 용달 대신 리어카 신세를 지게 되었다. 가게 앞에는 작은 화물 회사가 있다. 그 회사 일꾼들은 배가 출출하면 미선네 가게에 와서 국수를 먹었다. 따로 육수를 내지 않고 호박하고 배추만 듬성듬성 넣어서 끓이는 국수였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직접 손으로 밀어서 만든 국수를 잘 펴서 넣어줬다. 그렇게 펄펄 끓여낸 국수는 인기가 좋았다. 그들은 국수를 먹고 나서도 바로 일어서지 않고 가게에 앉아서 실없는 얘기를 주고받다가 갔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정이 들어서였던 걸까. 그들은 미선이 살림을 차려 나간다는 얘기를 듣자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짐이라고 해 봐야 작은 서랍장과 이불 보따리 몇 개, 자질구레한 세간살이가 전부였다.
얼추 이삿짐을 다 실을 때까지도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나와 보지 않았다. 그들은 몹시 쓸쓸한 기분에 사로 잡혀 있었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분한 마음도 들었다. 그들은 며느리인 미선과 같이 사는 게 못 견딜 일처럼 들들 볶아댔으면서도 막상 그 순간이 오자 그녀가 시부모를 버리고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노인은 마치 그들이 자식한테 버림받은 비운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 같은 씁쓸한 심정을 곱씹으며 방 안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잘 살라거나 잘 가라거나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은 기척도 없이 방에서 완고하게 그들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마지막으로 대문을 나서는 며느리의 마음이 더 심란하고 더 복잡하기만을 그들은 열렬히 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것은 며느리가 나가서 더 고생을 하고 그래서 시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그렇게 본인의 과오를 깨닫고 어느 순간 자신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뿐이었다.
그 두 사람이 나와보든 나와보지 않든 미선은 떠나야 했다.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밥상을 마당까지 집어던지고 횡포를 부린 것은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가 저지른 행동을 생각만 해도 그녀는 가슴이 부들부들 떨려서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매 순간을 가슴을 졸이며 살 수는 없다. 시어머니와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벌벌 떨리고 말이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가서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겨우 목으로 소리를 내려고 하면 어느새 그 말은 덜덜 떨려서 더듬으며 나오기 일쑤였다.
리어카가 출발하고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어차피 짐을 가득 실은 리어카의 속도나 아이들의 속도나 크게 차이가 없다. 큰 딸 정숙이 가슴팍에 벽걸이 시계를 안고 걷고 있다. 세간살이 중에서 그나마 값나가는 것은 시계 하나뿐이다. 리어카에 부려 놓은 짐들은 밖에서 훤히 보였다. 정숙은 혹시나 아는 아이를 만나지는 않을까 움츠린 채로 가슴에 시계를 안고 조심조심 걸어갔다. 미선은 막내를 포대기에 업고 있고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은 나란히 걷고 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 흐리지만 눈은 그렇게 쉽게 쏟아지지 않는다.
이사 갈 집까지는 한참이나 걸어야 했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를 지나고 사거리를 지나서도 한참을 걸었다. 만물상회라고 하는 잡화상을 지나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미선은 다 왔다는 신호를 보냈다. 집은 골목 끝집이었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위쪽은 주인집이었다. 주인집은 꽤 그럴듯했다. 넓은 툇마루도 있고 마루에는 중문처럼 여닫이 문도 달려 있다.
그러나 미선이 살 집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마당을 중심으로 해서 바로 앞으로 방이 하나 있다. 그 방이 그나마 널찍한 편이니 안방으로 써야 할 것이다. 방에서 신발을 신고 내려 서면 바로 부엌이다. 부엌은 바닥에 시멘트를 아무렇게나 발라 놓아서 울퉁불퉁하다. 개수대가 따로 없으니 그릇은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씻어야 한다. 작은 찬장 한 개와 석유풍로를 들여놓으니 뭔가를 더 놓을 수 있는 공간은 남지 않았다.
부엌 바로 옆에 있는 방이 아이들이 사용할 방이다. 그 방은 창문이 달려 있으니 먹방은 아니다. 그러나 코딱지만 한 방에는 햇볕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창문은 만들다 만 것처럼 기이할 정도로 작았다. 가로 세로 넓이가 손가락 두 뼘이나 될까. 창문을 열면 바로 뒷집 담벼락이 단단하게 얼굴을 들이민다. 통풍이나 채광 같은 창문 본연의 역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양만 창문인 이상한 창문이다. 오히려 그 작은 방에 창문이라는 작은 구멍이 있어서 아이들은 겁을 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창은 손톱만큼 작아져서 그 창으로 희미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창으로 귀신이 몰래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아이들은 잠을 설쳤다. 자려고 누우면 벽을 통해서 스며드는 한기까지 아이들의 잠을 괴롭혔다.
춥고 지루한 겨울은 그렇게 오래도록 새로 이사 간 집 주변을 맴돌면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