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통닭

그녀의 삶과 인생 # 7

by 느리게 걷기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행복은 짐작도 할 수 없는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터무니없이 서글픈 풍경 위에서도 일렁거린다. 그렇게 실체가 보이지 않는 이 행복이라는 놈은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를 놀라게 한 후에 긴 파장을 드리우고 슬며시 사라진다. 행복은 그토록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이기에 그만큼 더 놀랍고 경이로운 감정이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 집에서는 웃음 소리가 자주 들렸다. 미선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미선은 비좁은 주방에서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냈다. 어떤 날은 수수부꾸미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어묵을 넣고 보글보글 끓인 청국장을 상에 올렸다. 비가 오는 날에는 감자를 갈아서 감자전을 부쳤다. 아이들은 밥 먹으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밥상 앞으로 달려왔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동작이 빠르고 숟가락질이 빨라야 그나마 하나라도 더 입에 집어넣을 수 있다. 아이들은 밥상 앞에 앉아서 경쟁하듯이 밥을 먹느라 연신 입에 음식을 욱여넣고 있다. 그러다가 제 풀에 웃음이 터지면 입속에 든 음식은 밖으로 다 튀어나오고 미선에게 꾸지람을 듣게 되는데 아이들은 그런 것쯤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뭐가 그렇게 우습고 재미있는지 밥상 앞은 웃음이 쉬이 떠나지 않는다.


아빠와 함께 먹는 밥상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식사를 할 때면 상에 있는 반찬을 마음대로 집어 먹지 못했다. 그것은 그냥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엄한 규칙 같은 것이었다. 상에는 주로 김치나 된장찌개가 올랐지만 가끔 특별식이 올라왔다. 특별식이라고 해 봐야 마른 멸치에 양념장을 버무려서 깨를 뿌린 것이나 김을 불에 살짝 구운 것이었다. 가끔은 계란 프라이나 계란찜이 오르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런 반찬에는 젓가락을 갖다 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반찬은 모두 아빠를 위한 반찬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아빠가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그때서야 아이들의 젓가락은 분주하다. 남은 멸치나 계란을 조금이라도 먹어 보려고 서로 눈을 부릅뜨고 반찬 다툼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밥상에 있는 특별 반찬은 오직 아빠를 위한 것이었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먹어 보라고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 주거나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사랑방 손님보다도 더 어렵고 불편한 존재였다. 아이들은 엄마 없이 아빠 하고만 밥을 먹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고 혹여나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밥 한 그릇을 다 비울지 그것부터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걱정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아이들은 행복했다.


큰 딸 정숙은 공부를 잘했다. 학교에서 상장도 여러 차례 받아왔다.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따로 공부를 시키거나 한 것도 없었다. 미선은 물도 주지 않고 내버려 둔 화분에서 제법 실한 잎이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면서 신기해했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밤늦게까지 책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것이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일찍 자라고 성화를 부리며 소리를 질렀는데 그래도 딸이 공부를 잘한다고 하니 미선은 저절로 기가 살았다.



그래서 미선은 오늘 큰 맘먹고 시장에서 통닭을 사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시장에 있는 통닭골목을 찾아갔다. 골목 가까이에 오기만 했는데도 통닭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중에서 그녀는 한 곳을 정하고 통닭을 한 마리 주문했다. 금방 튀긴 통닭은 뜨끈뜨끈하고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녀는 자전거 앞 바구니에 통닭 봉투를 넣었다. 집으로 가는 사이에 통닭이 식을까 싶어 그녀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들은 아직까지 통닭을 먹어본 적이 없다. 통닭은 누런 봉투에 담겨 있다. 추운 날씨에 금방 튀긴 통닭은 어찌나 좋은 냄새를 풍기는지 미선은 자전거를 타고 오며 연신 코를 벌름거렸다.


아이들은 통닭 냄새를 맡자마자 난리가 나서 달려들었다. 미선은 연신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고 당부를 하지만 아이들은 들은체 만체다. 그러나 미선은 차마 본인은 통닭에 손을 대지 못했다. 그녀는 자전거 앞에 달린 바구니에 통닭을 싣고 오면서 실컷 냄새를 맡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서 먹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녀는 자기는 먹지 않았는데도 이미 먹은 것처럼 배가 부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오늘 통닭을 사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아이들은 엄마인 미선이 통닭을 먹는지 안 먹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먹느라 바쁘다. 저희들끼리 좀 천천히 먹으라고 트집을 잡는다. 아직 고기를 잘 삼키지 못하는 막내도 언니들 틈에 끼여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사이 통닭은 눈 깜짝할 사이에 뼈만 남았다. 아이들은 못내 서운한 눈치다. 아이들은 살이 조금 붙어 있는 뼈를 찾아서 쪽쪽 빨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미선이 다음에 또 사다 주겠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 그런 날이 올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특별한 음식을 자주 먹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철이 들어 버린 아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지만 집 안에는 온기가 있다. 아빠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아빠는 오늘 밤 내내 안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볼 수도 있다.


배가 부른 아이들은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좁은 방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다.


살다 보면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행복이 슬그머니 들어와서 아이들 곁에서 포슬포슬 피어오르고 있다. 막 쪄낸 감자처럼 포슬포슬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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