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을 잡기 위해 길목에 커다란 그물을 쳐 놓았다. 그물에 노루가 걸렸다. 이 노루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죽여서 어깨에 메고 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산 채로 끌고 가서 잡아먹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 어린놈이니 방생하는 셈 치고 산속에 풀어줄 것인가. 사냥꾼은 그물에 걸려서 고통스럽게 펄떡이는 노루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 급할 것이 없다. 어차피 결정은 사냥꾼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노루를 죽일지 살릴지 구워 먹을지 쪄 먹을지 사냥꾼이 결정할 뿐.
왜 나는 내가 그물에 걸린 노루 같다는 생각을 했을까.
팀장은 육체만 성장하고 정신은 어린아이에서 멈춰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감정은 자주 널뛰기한다. 그는 화가 나서 웅크리고 있다가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큰 소리로 웃어 댄다. 팀원들은 그런 감정의 기복 앞에서 자주 당황한다.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많은 사람들을 상처 주는 것을 보아 왔다. 팀장에게 불려 간 40대 후반의 남자 직원이 빈 회의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언제나 조용하고 신중해서 화를 내는 법이 없던 S차장이 파일을 책상에 던지고 나가는 것도 보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중재자가 될 수 없는 방관자였다. 그런 소란하고 이상한 풍경이 벌어질 때마다 놀라고 두려워서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두 가지의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한 가지는 저토록 굴욕적인 상황에직면해 있는 게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또 하나는 나에게도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저 불길하고 모욕적인 상황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 불길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느낄 수 있는 노골적인 무시와 괴롭힘이 오늘 내내 이어졌다. 내가 그의 의중을 읽지 못해서 심기를 상하게 했다는 것이 그런 감정적인 보복의 이유였다. 그는 일부러 나를 더 자주 부르고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내일 회의장에서 사용할 멀티탭이 부족하다거나 부사장님이 앉을 의자의 등받이가 탄탄하지 않다거나 그런 것이었다.
그와 사무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언제부터인가 가지 않고 멈춰 있는 듯했다. 나는 그물에 걸린 짐승이 되었다가 박제되어서 벽에 걸려 있는 짐승이 되었다가 했다. 은밀하고 노골적인 괴롭힘에 버티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학교를 다니고 오랜 세월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책을 읽었는데도 나는 그런 타입의 인간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나를 함부로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바로 내가 올해 승진대상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팀장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엄청난 권한을 부여받은 절대자와 같은 존재라고 착각하기에 이른다. 그는 나의 약점을 거머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만만하다. 나는 몇 년 동안 누구보다 많은 성과를 내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신의 비위를 얼마나 잘 맞추는지 나의 충성심까지 테스트 해보겠다는 심산이다. 사실 이제까지 치사하다고 느낀 적은 있었지만 더럽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더럽다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나의 업무 능력과 성과로만 평가받을 것이다. 만약에 그가 더 이상 무자비하고 비합리적인 관리자의 칼날을 들이댄다면 나는 더 이상 그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나의 성격상 그렇게 하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울 뻔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눈물로 나의 힘든 상황을 호소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다. 그게 비록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여성성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어쩌면 사냥꾼, 팀장이다. 그가 그렇게 무자비하게 살고 있는 동안 그가 사냥을 멈추고 산을 내려갈 때 그의 옆에 진정한 동료나 후배가 같이 할지 의문스럽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가 직원들을 사냥꾼처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도 언젠가는 그물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행동은 직원을 먹잇감처럼 갖고 놀다가 살아 있는지 툭 앞발로 한번 건드려 보고 재미있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결정했다면 그는 자신보다 더 강하고 무자비한 사냥꾼을 만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