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살면서 반상회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반상회라는 단어도 역사 속에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심각했다. 새로 이사 온 주민이 민원을 제기했다. 문제는 관리비였다.
일반 관리비가 9만 원, 청소비가 3만 원,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경비비였는데 20만 원이었다.
나도 처음 관리비 고지서를 보고 경비비가 20만 원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따져 물었더니 다른 동은 모두 경비가 격일 근무를 서고 있는데 우리 동만 매일 근무를 서고 있다고 했다. 우리 동 주민들이 그렇게 원해서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자들이고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경비가 매일 경비실에 있는 것을 원했던 모양이다.
하긴 우리 동의 경비들은 좀 특별했다. 마트에 갔다가 와서 물건을 내리려고 하면 대형 카트를 끌고 와서 짐을 착착 싣고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옮겨 줬다. 그 외에도 동에 살고 있는 노인들에게는 집사처럼 궂은일을 도와주는 눈치였다. 무거운 짐이나 쓰레기 처리도 도와주고 화분 분갈이도 도와주었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집사 같은 경비가 필요하지 않았으니 나는 경비비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불만만 품고 지레 포기한 나와 달리, 적극적인 누군가가 정식으로 시청에 민원을 제기한 모양이다.
민원 사실에 가장 분노한 사람은 구찌 할머니였다. 구찌 할머니는 우리 동 8층에 살고 있는 할머니이다. 우리 가족이 그녀를 구찌 할머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녀가 늘 구찌 구두를 신고 다니기 때문이고 일반적인 할머니에 비해서 세련되고 부티가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자신의 나이가 80살이라고 했다. 나는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실제 60대 중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70살인 우리 엄마보다 훨씬 젊고 고급스러웠다. 아침이면 골프백을 들고나가는 구찌 할머니를 자주 만난다. 돈이 많으면 저렇게 세월까지 거스르는 것인지 아니면 돈 때문에 마음고생할 일이 없어서 늙지를 않는 것인지 그 재주는 알 길이 없다. 하여간 그녀는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활기차 보이고 언제나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 날부터 그녀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사인의 내용은 격일이 아닌 매일 경비 근무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집집마다 벨을 누르고 사인을 강요하고 받아 가지고 떠났다. 남편은 경비의 매일 근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결국 구찌 할머니가 들고 온 종이에 사인을 했다. 할머니가 기세 좋게 들이닥쳐서 아이들 칭찬까지 하는 바람에 도저히 반대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구찌 할머니는 그렇게 모든 집을 찾아다니며 동의서를 받아 냈다.
이번에는 그 새로운 입주민이 시청에 다시 민원을 제기했다. 바로 구찌 할머니가 세대를 방문해서 반강제적으로 사인을 받아냈으니 그 동의서는 무효라는 것이었다. 시청에서 그 민원을 인정하는 바람에 이제 이 문제는 반상회를 통해서 해결해야 했다. 엘리베이터에 안내문이 붙었다.
OOO동 경비실 근무에 대한 공청회를 실시하고 투표로 결정할 예정입니다. 입주민들은 OO월 OO일, 저녁 7시에 관리사무실 1층에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평소 같으면 그런 반상회에 참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7시라니 퇴근하고 가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참석해야 했다. 만약에 몇 표 차이로 우리 쪽이 진다면 경비비를 절감할 기회는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땡 퇴근을 하고 관리사무실로 찾아갔다.
관리사무실 1층에는 꽤 널찍한 사무실이 있었다. 중간에 사각형의 테이블이 놓여 있고 양쪽으로 의자가 쭈욱 놓여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는데 사람들이 속속 들어왔다. 구찌 할머니 쪽에 앉은 사람이 7명 정도 되었고 반대쪽에 앉은 사람도 7, 8명 정도 되었다. 앉고 보니 자리 구조가 절묘했다. 구찌 할머니 쪽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은 노인들이었다. 어림잡아 보아도 70대에서 80대 이상 되는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었고 내 쪽에 앉은 사람들은 40대에서 50대의 중년 여자들이었다.
구찌 할머니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고 있어서 시작도 하기 전부터 분위기는 냉랭했다. 구찌 할머니는 단단히 화가 난 사람 같았다. 언제나 신고 있는 구찌 로퍼를 신고 고급스러운 스웨터를 걸치고 모직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혼자 우뚝 서 있었다. 통장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밖으로 나가서 녹차 티백을 넣은 종이컵을 쟁반에 받혀서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우선 구찌 할머니 쪽으로 가서 컵을 건넸다.
" 통장, 나 너무 섭섭해. 통장도 경비실 격일 근무를 찬성한다고 했다던데. 그리고 만나는사람들마다 그런 식으로 유도를 하고 다닌다면서?"
통장 여자는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그녀도 그렇게 만만한 여자는 아니다.
" 아유. 제가 사람들한테 유도를 하다니요. 그런 오해하지 마시고 진정 좀 하세요. 할머니"
그녀는 구찌 할머니 앞에 녹차를 내려놓으며 다정하게 그녀 손을 두드렸다. 구찌 할머니도 더는 성을 부리지 않고 녹차를 입에 대고 목을 축이는 눈치였다. 곧 반상회는 시작되었다. 일단 경비가 격일 근무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발언을 시작했다. 갈색 점퍼를 입은 여자가 말을 시작했다.
" 경비가 격일로만 있어도 충분하죠. 다른 동을 보니까 격일로 근무하는 대신에 경비가 두 개의 동을 왔다 갔다 하면서 경비를 서는데 그 정도면 문제 될 것 없다고 보이는데요"
딱 보니 민원을 넣은 당사자인 것 같았다. 그녀는 작정을 한 듯이 발언을 쏟아냈다. 반대파에서도 발언을 시작했다. 12층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재작년에 205동에 도둑이 들었던 일이 있기 때문에 무섭기도 하고 해서 경비가 매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그 뒤로 통장과 다른 사람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대체로 경비비가 너무 많이 나오니 경비를 격일 근무제로 바꿨으면 한다는 의견이었다.
구찌 할머니는 안 되겠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일어섰다. 그녀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왕년에 남들 앞에 꽤나 서 본 솜씨였다.
" 경비가 매일 있어야지. 지금 당장은 경비비가 아깝다고들 생각하지? 그렇지만 만약에 도둑이 들거나 아니면 가족이 다치거나 무슨 사고가 난다고 생각해봐들. 그러면 경비비 10만 원 더 내는 거 아무것도 아니야"
반응이 시원치 않자 그녀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 우리 동은 대대로 부자들이 사는 동이예요. 어쩌다가 우리 동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그리고 10만 원이면 콩나물 값이잖아. 콩나물 값 아낀다고 생각하고 경비비를 내자고요"
어쩌다가 콩나물 값이 10만 원이 되었단 말인가. 10만 원쯤 되는 돈을 콩나물 가격으로 체감하는 부잣집 할머니의 계산법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찌 할머니는 그 정도로 현실감각 없는 부자 할머니란 말인가.
" 아. 그리고 얼마 전 우리 동 여자아이가 막 뛰어오더라고. 내가 왜 그렇게 뛰어오냐고 물었더니 무섭다는 거야. 그렇게 애들이 무서워하는데 경비가 매일 있어야지 안 그래요?" 그녀는 동의를 구하는 듯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하고는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인사를 주고받은 사이니 친밀하다고 느낄 만도 하였다. '이제 내가 출격할 때인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 날 뛰어온 아이가 저희 집 아이예요. 그런데 사실 저는 이사 오고 나서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놀랐거든요. 아이가 무서워하는 것은 제가 데리러 가면 되니까 해결할 수 있는데. 저는 사실 관리비를 줄일 수 있으면 그게 좋을 것 같아요. "
내 말을 듣고 구찌 할머니는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구찌 할머니는 풀이 죽어서 자리에 앉았다. 구찌 할머니의 표정을 보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곧 투표가 시작되었다. 결과는 구찌 할머니의 참패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경비비를 줄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경비를 격일로 근무하게 하자는 의견이 65프로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구찌 할머니는 결과를 승복하기 힘들어 보였다. 계속 투덜투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서 반대표를 던졌던 사람들은 슬금슬금 빠져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구찌 할머니는 금방 따라 나오지 않았다. 아마 친한 할머니들과 성토를 쏟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구찌 할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801호 할아버지는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보다 경비실의 도움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경비실 아저씨가 매일 근무를 서면서 시시콜콜한 일들을 챙겨주고 도와주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바람 때문에 그토록 경비실 문제에 집착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한동안은 구찌 할머니를 슬슬 피해 다녔다. 그 날 기세를 보아하니 잘못하면 앞에서 따지고 들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본인 생각만 주장하면서 동 전체를 시끄럽게 만드는 고집스러운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멀리서 보이면 일부러 빙 돌아서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구찌 할머니는 그렇게 고약한 할머니는 아니었다. 경비실 아저씨에게 가끔 멜론이나 망고 같은 귀한 과일을 박스채 갖다 주기도 하고 경비실 의자가 불편해 보인다며 사비를 털어 비싼 사무용 의자로 교체해 주기도 했다. 그녀는 부티가 좔좔 흐르는 할머니인 동시에 어느 정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할머니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중 가장 다행인 것은 구찌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얼마나 부지런한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하러 나왔다. 가끔은 길이 미끄러워서 불안해 보이는데 그럴 때도 지팡이를 짚고는 나와서 운동을 했다. 언제나 절뚝거리며 겨우 앞으로 나가던 할아버지는 언제부터인가 건강한 사람처럼 제법 속도를 내서 걷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면 어딘가 불편해 보이지만 그냥 지나쳐 가며 보기에는 별 이상한 점이 없어 보였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제 구찌 할머니도 경비가 매일 경비실에 앉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그렇게 열을 내지는 않는 눈치이다. 그렇게 우리 동을 뜨겁게 달구던 한 달여간의 관리비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런데 관리비 전쟁으로 10만 원까지 내려갔던 관리비는 슬금슬금 올라가더니 어느샌가 다시 15만 원이 넘어버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디에 따져 물어야 할지 답답하다. 이번에는 내가 관리비 열사라도 되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