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바뀌었다.
나는 새로운 팀장이 싫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옆의 팀, 팀장으로 있던 사람이다. 몇 달 전 우연히 회식에 같이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 같았다. 술을 몇 잔 들이켜더니 나에게 ' 예쁘다'는 말을 했다. 나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예쁘지 않았고 그의 말이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결혼식 청첩장을 돌리는 신입 여자 후배가 앉아 있었다. 키가 170이 넘는 데다가 웃는 모습이 시원스러운 미인형 후배에게 그 날 찬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나름 배려하기 위해 그런 무리수를 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분이 나빴고 그가 그 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때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이 빈말을 쉽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일을 집에 와서 얘기했더니 남편은 한 술 더 떴다.
" 그 사람 조심해라.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사람 무서운 사람이야"
물론 나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남편의 반응을 보니 남편조차 미워졌다.
하여간 그 날 그 팀장은 나에게 입에 발린 말을 여러 번 했다. 그 날 나의 상태는 평소보다 더욱 좋지 않았다. 비가 오는 바람에 드라이 한 머리카락은 힘없이 정수리에 달라붙어 있었고 코 옆에는 뾰루지가 있었고 나중에 보니 앞니에 대형 고춧가루까지 끼여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예쁘다니. 정말 불쾌했다. 그런데 그 비호감이던 사람이 갑자기 나의 팀장이 되었다. 그저 회식 자리에서 한 번 마주치고 헤어질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직속상관이 되다니. 나의 머리는 판단 기능을 정지하고 그저 멍하니 혼란한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미래 일이란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고 직장 일이란 더욱 변화무쌍해서 가끔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조직개편이 되어 팀장들이 대거 바뀌고 부장이 새로 오고 상무님 집무실이 옮겨지고 난리도 아니다. 어수선하니 불안하고 심란한 마음이 절로 든다. 사무실에 앉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새로 온 팀장은 자꾸 어딘가로 전화를 해서 사람을 알아보는 눈치다. ' 자기 코드에 맞는 사람으로 배치하고 기존 멤버들을 쫓아내려고 그러나? '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하고 신경을 그쪽으로 집중한다. 그랬더니 나의 청각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팀장의 작은 소곤거림도 레이다망에 걸린다. ' 오, 그래 남자 직원 1명과 여자 직원 1명을 어디에서 데려오려고 하는구만. 이거야 말로 지각 대변동이 일어나겠어'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온전한 땅인지 흔들리며 밑으로 쑥 꺼져 버리는 뻘인지 갑자기 물음표다.
상무님께 보고할 게 있어 새로운 상무님 집무실로 갔다. 오전 내내 보이지 않던 이차장이 거기에 있다. 상무님 집무실에 점퍼를 보관할 한 칸짜리 옷장이 들어온 모양이다. 이 차장은 그 옷장에 달려 있는 정사각형의 거울을 닦고 있다. 한 손에는 걸레를 들고 입으로는 '호'하고 입김을 불어서 거울에 습기가 생기면 그 위를 정성스럽게 닦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 민망해하는 듯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청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 아, 역시 한 수 위다. 어디 간단 말도 없이 사라지더니 여기에 와 있구나. '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만히 보니 상무님에게 필요한 곽티슈와 커피, 차가 종류별로 분류되어 있고 책들까지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손끝이 매운 이차장의 솜씨다.
'지금이라도 걸레를 들고 이 곳으로 뛰어 들어와야 하나?' 아주 짧은 순간 고민을 해 본다. 자리에서 궁둥이를 무겁게 내려놓고 일만 하던 나는 왠지 센스 없는 직원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들어가기에는 뭔가 상황이 부자연스럽다. 타이밍도 좋지 않다. 걸레를 천연덕스럽게 들고 이 곳에 들어오는 것을 상상하니 괜히 오글거린다. 그 사이 이차장은 거울 청소를 끝내고 원탁 테이블을 닦기 시작한다. 그녀는 대충 걸레로 먼지를 훔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고 차분해서 보고만 있어도 상무님을 향한 열의와 성의가 느껴진다.
사무실로 와보니 웬걸 여기 또 한 명의 열정적인 청소쟁이가 납셨다. 부장 책상 위를 흘끔거리며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새로운 팀장이다. 사실 부장 책상은 닦을 필요가 없다. 오전에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바닥에 밀대질을 하고 책상 위도 닦고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책상을 닦는 행위에는 청결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들어있지 않다. 여기에는 ' 당신이 일할 곳에 나의 작은 숨결을 불어넣고 싶어요'라는 충성심 혹은 로열티만이 가득한 것이다. 그래서 굳이 깨끗하게 정리된, 티끌 하나 없는 책상 위를 팀장은 굳이 청소하고 있는 것이다. 팀장은 책상 위를 일부러 탈탈 털고 명판의 위치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최적의 위치를 잡아 준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부장의 웃음소리가 어찌나 호탕하게 사무실을 울리는지 깜짝 놀라 뒤돌아봐야 할 판이다.
사실 새로운 팀장과 부장은 불과 몇 달 전까지 서로 불편한 관계였다. 그때는 둘 다 똑같은 팀장의 위치였으니 경쟁관계였고 둘 다 욕심이 많은 성격이라 자주 부딪혔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바로 그렇게 태세를 전환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팀장은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는 스타일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팀장은 어느새 부장에게 적극적으로 구애작전을 벌이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장 자리로 쫓아가서 어찌나 친근하고 다정하게 말을 거는지 안쓰러울 지경이다.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이 놀라운 사건과 장면들을 보고 있으려니 씁쓸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한 편의 코미디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어디에서 이토록 재미있고 풍자적인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단 말인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연인이 되는 놀라운 현장이다.
친절과 배려는 아름다운 덕목이리라.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친절과 배려를 베푼다면 직장이 얼마나 따뜻하고 인간적인 장소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그러나 회사는 어차피 비정한 곳이다. 친절과 배려 또한 목적성을 가지고 어떤 의도 위에서 행해질 뿐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곧잘 그것을 잊고 있던 나는 또다시 깨달음을 얻는다.
먹고살기 위해서 이래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남들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 이래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토록 치열하게 비정하게 올라가야 할 곳이 도대체 어디이고 그곳에 오르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이 다 용서될 정도로 그곳은 그토록 매력적인 곳인가. 나처럼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은 감히 그 높은 곳을 알지 못하고 그런 심리를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직장에서 일로 만난 사람들에게 인간성이니 순수성이니 선의니 하는 감정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한 일이라는 정도이다.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섞여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감정을 갖고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경험한 것처럼 그런 감정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면 결국 상처 받고 돌아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회사에서는 코미디가 펼쳐진다
찰리 채플린이 그랬던가.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라고.
지금의 이 웃긴 상황들도 세월이 지나서 생각하면 재미있는 추억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