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나의 딸은 누구를 닮았는가?

by 느리게 걷기


딸의 방에서 종이봉투를 발견했다. 벌써 세 번째였다. 봉투에는 '요기요'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딸은 나 몰래 또 배달을 시켜 먹은 것이다. 딸은 중학생의 평균 몸무게를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성장판은 닫혔는지 키는 더 이상 커지지 않고 계속 옆으로만 몸을 불려 갔다. 딸아이의 옷은 무서운 속도로 작아졌다. 아니 사실은 그 옷의 주인이 무서운 속도로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딸아이가 쿵쿵거리며 옆을 지나갈 때마다 나의 표정은 걱정과 한심함이 뒤섞인 묘한 표정으로 변해버리곤 했다. 딸아이는 그럴 때마다 내 표정의 변화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 엄마, 왜 그렇게 쳐다봐요? 내가 뚱뚱해서 그러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도대체 딸아이는 누구를 닮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은 정상체중이었다. 달리기와 등산을 즐겨하는 덕분에 몸에는 적당한 근육이 보기 좋게 붙어 있었다. 나는 정상체중을 약간 웃도는 과체중이지만 그렇다고 비만은 아니었다. 밖에서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의 몸무게는 항상 정상 범주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렇다면 딸은 돌연변이인 것인가. 저 아이의 무서운 식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나의 어린 시절이야 형제들이 바글바글했으니 자연스럽게 식탐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조금 꾸물거리거나 결정적 순간에 화장실이라도 갔다 올라치면 음식들은 모두 사라지기 일쑤였다. 나와 비슷한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식탐은 필연적인 생존 본능의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먹을 것이 풍족하고 간식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저 식탐은 어찌 된 것이며 굳이 경쟁이 필요치 않은 시대에 경쟁적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저 욕심 많은, 통통한 손가락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길이 없다. 도대체 저 통통하고 끊임없이 달달한 것을 찾아 헤매는 딸아이는 누구를 닮은 것이란 말인가? 돌연변이란 말인가? 나는 깊은 고뇌에 잠긴다.



내가 살던 도시는 내륙에 있는 작은 도시였다. 시내에는 그 흔한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화려한 상점들도 없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거리에는 캐럴이 넘쳐났다. 나는 중심지로 나갔다. 중심지라고 해 봐야 커다란 구두 상점과 스포츠 웨어 상점들이 붙어 있는 상가 한 열이 전부였고 중심에는 로터리가 있었다. 로터리를 중심으로 4개의 길이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고 그 로터리 주변에 잘 나가는 상점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그 주변에는 쫄면이나 군만두를 파는 분식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은 학생들에게 핫플레이스였다.


그런데 그 날 새로운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방송국 사람들이었다. 방송국에서 나온 무리가 로터리 근처에 있었다. 그중 몇몇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탕 봉투를 나눠주고 있었고 몇몇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곁으로 가까이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관심 없는 척하며 그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커다란 자루에서 사탕 봉투를 나눠주는 사람이 나에게도 사탕 봉투를 건넸다. 사탕을 받은 후에도 뭔가 모를 아쉬움에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마이크를 들고 있는 아저씨가 인터뷰를 하자고 말을 걸었다. 인터뷰를 하면 오늘 밤 뉴스에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의 가슴은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질문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한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에 학생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냐, 내년 소망은 무엇이냐 그런 질문을 몇 가지 물었다. 나는 내년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을 더 잘 듣겠다는 뻔하고도 착한 대답을 성실한 태도로 주억거렸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나의 인터뷰에 실수는 없었을까. 아니 그 정도면 꽤 훌륭한 인터뷰였다고 나는 평가했다. 말을 더듬거나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고 당당하고 시선처리도 훌륭했다. 어서 집으로 달려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했다. 집에서는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한바탕 난리가 났다. 특히 동생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동생들은 역사적인 순간에 같이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워했다. 엄마도 흥분한 것 같았다. 엄마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릴까 고민하는 눈치더니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며 그만두었다. 우리는 저녁을 일찍 먹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다. 그리고 내가 나오는 장면을 기다렸다.


그리고 내가 나왔다. 그것은 뉴스는 아니었다. 뉴스가 다 끝날 때쯤 ' 크리스마스 지역 풍경'이라는 그런 이름을 달고 나오는 코너였다. 거기에 내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 장면은 아, 뭐랄까. 내가 생각하고 상상했던 그런 그림이 아니었다. 일단 나는 터질듯한 빨간색 패딩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 점퍼는 온통 빨간색에 흰색 줄이 가로로 있는 점퍼였다. 나는 위에는 그 점퍼를 입고 하의는 통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의 엉덩이는 너무 커다랗고 펑퍼짐했다. 그리고 나의 얼굴은 터질 듯이 통통한 데다가 추운 날씨에 살짝 얼어서 촌스러운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바로 나의 부끄러운 장면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날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사탕 봉투를 두 번 받았다. 나는 처음에 촬영팀 근처로 가서 사탕 봉투를 받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자루에는 사탕 주머니가 가득 담겨 있고 한 번 더 받으러 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그래서 로터리를 빙빙 돌다가 두 번째 봉투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그 장면이 고스란히 화면에 잡혀 있었다.


첫 번째 사탕 봉투를 들고 가는 나의 둔중한 모습과 두 번째로 눈치를 보며 또다시 사탕 봉투를 챙겨가지고 떠나는 나의 모습이 모두 화면에 나왔다. 그 장면은 인터뷰하는 사람들 뒤에 흐릿하게 나왔지만 내 모습만 뚫어지게 찾고 있는 우리 가족들의 눈에는 선명하게 다 보였다. 게다가 그 날 따라 나는 어찌나 뚱뚱하고 굼떠 보이는지 그 장면은 마치 일부러 연출된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우스꽝스러웠다. 텔레비전을 보던 동생들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자애롭고 인자하던 엄마는 나에게 짜증을 내며 나가 버렸다.


남겨진 나는 비참한 심정이었다. 그때는 집에 대형 거울 같은 것이 없었다. 나의 상상 속에서 나는 전혀 뚱뚱하지 않았다. 비록 가끔 뚱뚱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거실에 달린 작은 거울 속의 내 모습은 꽤 괜찮아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쇼윈도를 보고 놀랄 때도 있었지만 쇼윈도는 실물보다 조금 뚱뚱해 보이는 것 같다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 나온 나의 모습은 인정할 수 없을만큼 육중하고 둔해 보였다. 그때 물론 그런 말들이 떠오르기는 했다. 방송은 실물보다 훨씬 뚱뚱해 보이는 거라고. 그래서 김혜수 같은 연예인도 화면으로는 통통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젓가락 같다는 얘기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미 나의 터질듯한 자태는 공중파를 타고 방송이 되었고 나의 처참한 몰골은 가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그 터질듯한 빨간 점퍼를 입고 사탕 봉투를 하나 더 얻기 위해 몰래 잠입해 들어가는 굼뜬 모습이라니. 그 날은 내 역사에 길이 남을 치욕적인 날이었다.





펑퍼짐한 궁둥이와 둔탁한 움직임, 그리고 사탕 봉투를 하나 더 포획하기 위해 탐욕스럽게 목표지점으로 다가가는 통통한 소녀의 뒷모습, 그리고 안경에 꽉 끼는 터질듯한 볼살까지 너무나 둘은 닮아 있다.

생각해 보니 둘은 나이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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