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짜장면이 지구를 떠돌고 있을 때

# 배달에 대해 생각한다.

by 느리게 걷기

사실 어제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고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1월 1일이었다. 한 해의 새로운 시작,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하루, 어제와는 뭔가 다른 나의 존재, 그렇게 1월 1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저녁으로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짜장면이라니. 1월 1일이라면 뭔가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단순했다. 오늘 같은 날 달짝지근한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부모의 기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짜장면을 시키기로 했다.


사실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짜장면은 자고로 음식이 나오자마자 뜨거운 상태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방 삶은 면에 뜨거운 춘장이 올려진 짜장면은 홀에서 바로 비벼 후루룩 먹어야 그 맛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배달앱이 잘 되어 있는 데다가 익스프레스라는 서비스가 생겼다. 익스프레스가 급행이라는 의미이니 그만큼 빠른 속도로 배달해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짜장면을 배달해 준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탕수육까지 추가로 주문을 넣었다.


배달앱에서는 나의 주문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나의 주문은 조리 완료상태로 바뀌었다. 그리고 오토바이가 출발했다. 그런데 오토바이는 우리 집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참이나 올라가더니 멈추었다. 도대체 오토바이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설마 길을 못 찾아서 헤매고 있는 건가 나는 불안해졌다. 오토바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아서 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달려오더니 또 엉뚱한 길로 들어갔다. 그때쯤 나는 감을 잡았다. 이 오토바이가 우리 집으로 곧장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 오토바이는 우리 집으로 배달을 오는 도중에 다른 배달 건수도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번에도 한참 정지해 있던 오토바이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익스프레스라면 쭉쭉 속도감 있게 와야 할 것이 아닌가. 나의 소중한 짜장면이 배달 오토바이에 실려 있는데 말이다. 지금쯤이면 나의 짜장면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퉁퉁 불기 시작했을 것이다. 날씨가 추우니 온기는 일찌감치 사라지고 면 가닥은 수분을 흡수해서 터질 듯이 통통해졌을 것이다. 나의 식욕은 사라졌다. 나는 오늘 같은 날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한 아이들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화는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 나더니 이제 배달 오토바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이 배달 오토바이는 시간당 최대한 많은 건수를 소화하기 위해서 이렇게 무리한 배달 건수를 수락한 거겠지. 건당 배달료를 받으니까 배달료를 최대한 많이 받으려는 수작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부글거리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여니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베이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나의 짜장면과 탕수육이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퉁명스러운 어투로 몇 군데를 돌고 오는 거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당황한 눈치였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두 군데를 배달하고 세 번째 오는 거라고 대답을 했다. 원래 배달 시스템은 그런 건가요? 나의 날카로운 질문에 그는 AI가 배정한 거라고 했다. AI가 배정을 했다고 하니 이 남자에게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다. 그러나 쉽게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는 그 남자가 건네는 비닐봉지를 거칠게 건네받았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문을 닫아 버렸다.


짜장면은 역시 불어 있었다. 면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서 젓가락으로 비벼지지가 않았다. 퉁퉁 불어 터진 짜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이것이 나의 올해 운수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기분은 점점 고약해졌다. 결국 나는 짜장면에 손도 대지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뒤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성질 고약하구먼. 배달하는 남자한테 성질이나 부리고" 나는 못 들은 체 문을 닫아 버렸다.


조용한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으니 화가 풀리면서 민망한 생각이 밀려왔다. 얼마 전 봤던 영화가 떠 올랐다. '미안해요. 리키'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의 가장인 리키는 택배 업무를 시작했다. 열심히 하면 금세 돈을 벌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그는 무리해서 택배 트럭을 구입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그는 택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밥을 굶어야 했고 소변은 차 안에서 플라스틱 병에 해결을 해야 했다.


그의 택배 경로를 설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AI의 역할이었다. AI는 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해서 최적의 경로를 설정하는 착한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를 감시하는 나쁜 역할도 했다. 그는 하루 종일 숨 돌릴 틈도 없이 일을 하지만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이 생겨서 하루라도 일을 쉬게 되면 엄청난 금액의 벌금을 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일을 하면 할수록 부자가 되기는커녕 점점 힘들고 불행한 삶 속으로 추락했다.


그 와중에 그는 강도들의 습격을 받았다. 강도들은 그에게 무차별적인 린치를 가하고 비싼 택배 물품을 훔쳐서 달아났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도 그는 휴가를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잃어버린 물품 중에 보험이 되지 않는 물품에 대한 배상 안내까지 받았다. 이제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결국 그는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몰래 일터로 나가려고 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온몸으로 차를 막아서지만 그는 결국 차를 출발시켰다.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이었다. 그에게는 잠깐의 멈춤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잠시라도 멈추면 그의 삶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훌쩍 뒤로 밀려나 버렸다. 그리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려면 죽을힘을 내야 했던 것이다. 결국 그 영화는 참혹한 모습으로 트럭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끝이 났다. 기대했던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희망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계속 흘러가는 시간은 때로는 무서운 것이었다. AI가 설정한 최적의 경로는 결국 거대한 물류시스템에게 최적인 시스템이었다. 그것은 리키라는 한 사람에게는 잠시의 쉼이나 휴식을 허용하지 않는 냉혹한 시스템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 결국은 사람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 1일에 퉁퉁 불어 터진 짜장면이라니. 기분이 몹시 상했다. 왜냐면 1월 1일은 특별한 날이니까 말이다. 나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고 어제와는 뭔가 다른 날이었다. 그렇게 설명하기 힘든 의미들을 너무 많이 부여했기 때문일까. 평소답지 않게 인내심을 잃어버리고 초조함에 빠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 게다가 짜장면 배달 라이더에게 그토록 심통을 부려댔다.


그 영화를 볼 때만 해도 AI가 조종하는 배달 시스템에 환멸을 느꼈다. 과연 물건을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하는 것이 사람의 존엄성까지 파괴하면서 지켜야 하는 가치인가 질문했었다.


그런데 그토록 리키의 입장에서 마음 아파했던 내가 짜장면 때문에 이렇게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하고 배달 오토바이의 도착에 집착하면서 열을 냈던 것이다.


영화를 보던 나와 짜장면을 기다리던 나는 같은 사람이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이었다. 1월 1일이라는 숫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부작용이었다. 그 날의 기분이 일 년을 좌우할 거라고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 날 나는 뭔가를 놓치고 있었다.


나의 1월 1일이 중요했던 것처럼 나에게 짜장면을 가져단 준 그 남자의 1월 1일도 중요했을 것이다. 한 해가 시작하는 첫날, 짜장면 때문에 성질을 부렸던 나 때문에 그의 1월 1일은 엉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남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한 번에 세 군데나 배달을 배정한 AI의 잘못이었다. 아니, 어쩌면 더 빠르게 더 많은 물품을 배송하도록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미안해요. 리키, 미안해요.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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