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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30. 2020

잔인했던 그 여름날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더 악랄해졌다.  이제 나는 두 명과 맞서야 했다.


  나를 괴롭히던 홍이와는 반이 갈렸다. 나는 안도했다. 학년이 올라갈 때 나는 필사적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그릇에 물을 떠다 앉은뱅이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제발 홍이랑 같은 반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눈을 감고 빌었다.

  

  괴롭힘은 1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난 거짓말처럼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는 1반이 되었고 홍이는 4반이 되었다. 교실은 양쪽 복도 끝에 있었기 때문에 운이 좋은 날은 종일 홍이 얼굴을 안 볼 수도 있었다.

 악당에게는 조무래기들이 따르는 법이다.  누런 코를 흘리고 다니던 기환이라는 놈이 악당 역할을 자처했다. 기환은 이유 없이 나를 때리거나 머리를 잡아당겼다. 기환은 홍이와 한패였다.


  나를 가장 화나게 한 사건은 도시락통 사건이었다. 그 날 나는 새로산 도시락통을 들고 왔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도시락통을 열었을 때 밥이 있어야 할 곳에 기환의 얼룩덜룩한 실내화가 들어 있었다. 나는 분해서 씩씩거렸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운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나는 우는 대신에 차라리 악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너는 정말 나쁜 놈이야. 너희 엄마는 네가 이렇게 친구 괴롭히는 거 알고 있니?"

"너는 천벌을 받을 거야. 하늘이 너를 보고 있어!"

이렇게 나는 꼬박꼬박 할 말을 하며 기환을 몰아붙였다. 홍이는 키도 크고 무섭게 생겨서 나와 대적이 안 됐지만 누런 콧물을 묻히고 다니는 기환은 만만했다. 그러면 기환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렇게 한 번도 지지 않고 덤비니까 맞는 거야. "


 나는 기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악당들은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는 법이다. 홍이와 기환은 학교가 끝나면 숲 속 교실로 오라고 했다. 학교 건물 뒤에는 숲 속 교실이 있었다. 나무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지만  햇볕이 들지 않아서 아이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었다. 학교 끝나고 거기에서 몇 번 그 놈들한테 맞았다. 그 놈들은 조폭처럼 코피를 터뜨리거나 각목 같은 걸로 나를 때린 건 아니다. 그 놈들도 결국 초등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수업시간 내내 나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사실 나는 무서웠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나는 겁에 질려 버리곤 했다.


그래도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도망간다고 끝날 일도 아니었다.  차라리 맞든 아니면 붙어서 싸우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도 숲 속 교실로 갔다. 홍이와 기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시비를 거는 것으로 그 녀석들은 자기들의 악랄함을 정당화했다.

"너 왜 그렇게 기분 나쁜 눈깔로 우리를 쳐다보냐? 그러니까 우리가 화가 나는 거야"

항상 그런 식으로 시작해서 실내화 가방으로 내 머리를 때리거나 내 배를 때리거나 그런 식이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관되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야."

"너희들은 나중에 깡패가 될 거야. 하늘이 너희를 다 지켜보고 있어."

이렇게 나는 악을 썼고 그 녀석들은 재미있어하며 킬킬거렸다. 지긋지긋한 여름날이었다.


 그런데  동생들이 나타났다. 동생들은 둘 다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작품이었다. 그저 단정한 것만을 목표로 한 엄마의 작품은 형편없었다. 셋째는 유치원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길이가 덜름했다. 무릎이 다 드러나 보였다. 둘째는 머리가 너무 짧아서 흡사 남자처럼 보였다.  동생들은 겁에 질려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우리 언니한테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다. 나는 괜찮으니 빨리 가라고 동생들한테 소리쳤지만 동생들은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악당들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그만 초라한 동생들의 등장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악당들에게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  나는 악당들의 조롱을 받으며  더 맞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엄마한테 이르지 마라. 나는 여러 번 동생들한테 당부했다. 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우리 뒤로는 기다랗게 누운 그림자가 우리 뒤를 천천히 따라왔다. 지긋지긋한 여름날이었다.



사진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195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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