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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28. 2020

세찬 비와 기다림

나는 아직도 위로가 필요하다

 아빠 차는 엘란트라였다.  아빠는 차를 집 앞에 세워놓고 매일 먼지를 털거나 걸레질을 했다. 그래서 차는 늘 새 차처럼 보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시내에서 멀었다.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철길을 건너고 인적이 없는 도로를 한참 달려야 겨우 도착했다. 학교 근처에는 큰 장례식장과 물류 창고가 있었다.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잘 탔다. 비가 올 때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자전거를 탔다. 그래도 넘어지거나 휘청이는 법이 없었다. 양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자전거를 타는 친구도 있었다.

 

   오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으로도 막을 수 없는 비가 있다. 그 날 내리는 비가 그런 비였다. 우산을 쓰고 있어도 온 몸이 젖어버리는 그런 비 말이다.  우리는 교실에 앉아 걱정스럽게  창밖을 바라봤다.  이 비를 뚫고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을까? 다들 같은 걱정을 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아이들은 교무실 앞 공중전화에 줄을 섰다. 나도 긴 줄 끝에 줄을 섰다.  오늘 같은 날 자전거로 집에 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비가 와서 아빠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차들이 한 대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현관 앞으로 들어와서 아이들을 태우고 사라졌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드디어 현관에는 나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그러고도 오래오래 기다렸다.


  그냥 자전거를 타고 가버릴까. 하지만 그러려면 아까 출발했어야 했다. 그때는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이 몇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엄마가 왔다.  엄마의 옷과 머리는 다 젖어 있었다. 엄마의 파마머리는 금방 머리를 감고 나온 사람처럼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모든 걸 알아 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 정문을 빠져나왔다. 엄마가 뒤에서 나를 부르며 쫓아왔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어둠도 무섭지 않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장례식장 앞을 지나 철길을 건너 집으로 맹렬하게 내달렸다. 비는 아프게 얼굴을 때렸다. 엄마는 뒤에서 자꾸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발을 구르지 않는데도 자전거가 저절로 달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빠차는 엘란트라였다. 그 차는 언제나 새 차처럼 반들반들하게 윤이 났다.   



사진출처: https://www.bbc.com/news/uk-wales-49998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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