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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27. 2020

엄마는 기다리지 않았다

나에게 아이란 무엇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처음 아이를 봤을 때 너무 못생겨서 실망했다. 아이는 얼굴이 길쭉하고 주름이 많았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흡사 아버지를 닮아 보였다. 나는 신생아는 원래  못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갑자기 배에 힘을 주더니 똥을 누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우리 앞에서 너무 당당하고 편하게 똥을 누기 시작했다. 아이 똥은 검은색이었다. 우리는 아이 기저귀도 준비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는 언제든  똥을 쌀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편은 병원 건물 1층에 있는 가게에서 기저귀와 물티슈를 사서 돌아왔다.


 아이가 처음으로 싼 똥을 치운 건 남편이었다. 나는 모성애란 건 기적처럼 생기는 거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10개월 가까이 품고 있었고 이제 엄연한 엄마였다. 그런데 쭈글쭈글하고 못생긴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누는 똥을 만지기가 꺼림칙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서 누는 똥은 검은색이라는 것도 그 날 처음 알았다.


  나는 아이가 처음 눈 똥을 내가 처리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미안하다. 아마 남편은 그 기억을 잊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는 그 일을 기억조차 못한다. 세상에 그 날 일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가 태어난 날을 떠올리면 항상 그 기억부터 떠올린다. 그리고 이내 미안해진다.


 아이는 4살이 되도록 기저귀를 떼지 못했다. 아이는 또래보다 덩치가 컸다. 그렇게 큰 아이가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건 창피한 일이었다. 아이는 예민하고 별났다. 나의 출근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출근 준비를 끝내고 막 집에서 나가려고 할 때마다 똥을 누기 시작했다. 아이는 특이하게도 똥을 눌 때마다 냉장고 옆으로 가서 벽 쪽을 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벽을 보고 서 있기부터 똥을 다 누기까지는 10분 이상이 걸렸다. 그럴 때 아이는 나와 등을 돌린 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서 그저 힘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팀장은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팀장은 항상 회사에 나오면 '성공하기 위한 10가지 법칙'이라는 책을 읽었다. 매일 마음에 드는 문장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 놓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그는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았다. 웃는 법도 없었다. 나는 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입을 열고 말을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팀장은 지각을 싫어했다. 팀장 자리는 출입구와 마주 보고 있었다. 지각하는 사람은 팀장과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사무실을 들어와야 했다. 말이 없는 사람이 보내는 눈빛은 더 많은 말을 내포하고 있어서 견디기 힘들었다.


 아침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출근을 준비하다가 아이가 냉장고 옆 벽으로 다가가면 나는 절망했다. 팀장은 아이가 똥을 누느라고 지각을 했다는  이해해 줄 사람이 아니었다. 성공하기 위해서 매일 포스트잇에 명언을 기록하는 사람에게 아이가 별나게 똥을 눈다는 사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나는 아이가 똥을 눌 때마다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봤다. 이따가 뒤처리를 끝내고 뛰어가면 어떻게 시간을 맞출 수 있겠지. 이렇게 희망을 가져 보다가 결국 무엇으로도 지각을 막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나는 곧잘 울곤 했다. 아이한테 화를 내기도 했다. 왜 매번 아침마다 이러냐고. 이제 기저귀에 응가하지 말고 변기에 해야 한다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이는 큰 눈으로 나를 말없이 바라보곤 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내가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아이한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하면 지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얼굴이 하얗고 눈이 컸다. 아이는 항상 나에게 업히고 싶어 했다. 어린이집은 경사가 심한 언덕에 있었다. 저녁이면 아이를 데리러 언덕을 올랐다. 아이는 저녁마다 내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데리러 와서 신이 난 아이는 등 위에서 다리를 흔들어 댔다.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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