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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27. 2020

착한 아이

  반장이 간첩을 잡으러 갔다고 했다. 소문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얘기는 점점 부풀려졌다. 어떤 아이들은 반장이 간첩을 잡으러 간 게 아니라 따라갔다고 했다. 또 어떤 아이들은 간첩이 반장을 잡아 간 거라고 했다. 반장이 간첩을 따라갔든 간첩이 반장을 잡아갔든 둘 다 무서운 상황이었다. 우리들은 동요했다.  그런데  싱겁게도 1교시가 끝나기도 전에 반장은 교실로 쑥 들어왔다. 알고 보니 간첩 같아 보이는 수상한 아저씨가 의심이 되어서 몰래 뒤를 따라갔는데 그 아저씨는 간첩이 아니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간첩은 으레 바다로 침투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살고 있는 군은 내륙에서도 가장 골짜기 동네였다. 이런 마을에 간첩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다니. 반장의 상상력이란 형편없군 하고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설령 그 아저씨가 간첩이었다 하더라도 설마 초등학교 3학년한테 잡힌단 말인가. 간첩들은 특수 훈련을 받았을 거고 지붕 위로 휙휙 날아다니면서 도망을 칠 텐데 키도 나보다 작은 반장이 간첩을 잡겠다고 학교까지 마음대로 빠지고 쫓아가다니. 겁도 없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생님은 반장이 착하고 용감한 친구라고 했다. 이상한 사람을 보고 간첩이라고 의심을 한 것도 대단한데 겁내지 않고 따라간 것은 훌륭한 행동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모두 반장을 위해 박수를 쳤다. 나는 내심 반장이 부러웠다.


 우리 옆 반에는 정상규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잘생기고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 아이 집은 시장에서 목포 상회라는 잡화상을 했다. 속옷이나 양말, 몸빼를 주로 파는 곳이었다. 엄마는 늘 거기 물건이 제일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 집은 주변에 비슷한 가게들을 제치고 늘 손님이 바글거렸다. 그런데 학교 조회시간에 정상규 이름이 불려지고 아이는 연단으로 올라갔다. 내용은 착한 어린이상이었다. 정상규는 길에서 지갑을 주웠는데 그 지갑을 경찰서에 갖다 줬다고 했다. 아래에서 연단 위를 바라보면 정상규의 엉덩이와 우쭐한 어깨가 보였다.


  나는 지갑을 줍기만 해도 연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건 몰랐다. 지갑을 줍는 건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는 줄곧 아래를 보며 걸었다. 뭔가 이상한 게 보이면 가까이 가서 꼭 뭔지 확인했다. 그런데 시장 입구를 지나 문구점 근처까지 왔을 때였다. 바닥에 누르스름한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일단 주변을 한번 살피고 지갑을 열어 보았다. 지갑에는 천사백육십 원이 들어 있었다. 경찰서에 들고 가기에 액수가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고민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은 착한 행동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고 했다. 그랬다. 누군가는 지금 이 지갑과 천사백육십 원을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집 앞 길을 따라 돌면 모퉁이에 바로 파출소가 있었다. 밖에서 안을 살펴보니 경찰관 2명이 보였다. 나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 경찰서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갑을 주운 사실을 말하며 지갑을 내밀었다. 경찰관 아저씨는 지갑을 열어서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경찰관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 이걸로 과자 사 먹어"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힘이 빠졌다. 이 돈이면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풀빵과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착한 어린이가 되어서 연단 위에 올라가 상을 받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은 지루해서 몸을 빌빌 꼬면서 연단 위에 있는 나를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연단에서 천천히 내려올 것이다. 내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순진한 표정을 하고 조심스레 연단을 내려올 것이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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