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리게 걷기 Aug 31. 2020

나는 자꾸만 실패한 것 같다.

나에게 아이란 무엇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ADHD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충동성 조절 장애와 집중력 장애이다. 두 가지 증상이 다 나타나는 아이들도 있고 한 가지 증상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는 집중력 장애 쪽이었다. 

 

 아이는 8살에 신촌 세브란스에서 ADHD 경계라는 판정을 받았다. 경계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ADHD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단어는 양 쪽에 다 다리를 걸치고 있으므로 부모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 준다. 나는 아이의 ADHD를 설명해야 할 때마다 '경계'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했다. 그렇게 경계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나면 나는 조금이라도 변명을 한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는 특이했다. 아이는 장난감이나 완구를 조르는 법이 없었다. 대형마트에 가면 물건을 사 달라고 바닥에 누워 버리는 둘째 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별난 생각들을 많이 했다. 치킨을 시켜서 가족들이 막 먹기 시작하면 '이 닭의 아기들은 지금 엄마를 찾고 있을까요?'라고 했다. 사실 아이다운 천진함을 느끼기보다는 입맛이 딱 떨어지는 기분 나쁜 발상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유난히 마음이 여렸고 늘 상처를 받았다. 자기보다 작은 애들한테 맞고 다니고 손으로 하는 것은 다 능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는 어딘가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작은 동물 같아 보였다. 


 그랬던 아이가 사춘기가 되자 사정은 달라졌다. 아이는 타협하지 않았다. 어떤 말로도 아이를 설득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무단으로 학원을 빠지기 시작했다. 왜 학원을 안 가냐고 나무라면 학원 교재를 잃어버렸는데 교재 없이 학원에 가는 게 말이 되냐고 도리어 따지기 시작했다. 


 본인이 필요로 하는 문제집이나 책 주문을 깜빡 잊어버리면 난리가 났다. 그렇게 해서 다급하게 도착한 문제집은 아이 책상 아래에서 며칠을 뒹굴고 먼지를 뒤집어썼다. 남의 실수에는 냉정하고 본인의 실수나 잘못에는 수많은 변명과 이유가 있었다. 


 낮에 아이는 늘 잠들어 있었다. 핸드폰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새벽에 출근하려고 나가면 아이 방에는 그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핸드폰을 개통하면서 지키기로 약속한 메모를 보여주면 아이는 처음부터 불공정했던 약속이니까 지킬 필요가 없다고 우겼다. 


  자괴감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걸었다. 육교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게 보인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났다. 나는 가끔 내가 뛰어내리는 상상을 한다. 내가 그곳에서 뛰어내리면 나는 물방울이 될 것이다. 하얗고 작은 물방울이 되어서 공기 중에 잠시 떠다니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내 그런 상상이 얼마나 무섭고 슬픈 상상인가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틀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걷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다. 



사진출처: unsplash.com


작가의 이전글 잔인했던 그 여름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