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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31. 2020

아들 낳기 대회

 우리 집에 , 큰 삼촌네 둘, 작은 삼촌네 , 합이  여덟 명이 전부 딸이다. 제사 때만 되면 할머니는

"아이고 조상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 조상님 죄송합니다 "

이러면서 한숨을 쉬었다. 가시나가 흘린 머리카락은 조상님 오실 때 뱀으로 변해서 조상님 놀랜다고 소리를 쳤다. 우리들은 혹여라도 방에 머리카락이 떨어졌을까 싶어 샅샅이 구석을 훑었다.


아빠가 누워 자는 머리맡에 여자속옷이 개켜져 있다고 할머니는 발길질로 속옷을 걷어치웠다. 여자 속옷이 남자 머리맡에 있으면 남자가 재수가 없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릴 때 우리는 마땅히 씻을 곳이 없어서 연탄을 쌓아 두던 창고 같은 데서 큰 통에 물을 퍼다가 씻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고추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추가 하나 섞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우는 소리를 했다. 우리는 겨우 말귀나 알아듣는 나이였지만 뭔가 잘못한 아이들처럼 눈치를 봤다.


 내가 살던  소도시에는 유독 딸 부잣집이 많았다. 딸만 인 집은 양반이고 네 명, 다섯인 집도 많았다. 희한한 동네였다. 할머니는 곧잘 시비가 붙어서 사람들과 싸우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아들이 몇인지 알아? 내가 아들만 셋이야"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아들을 낳은 여자와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로 세상은 나눠졌다.


   맛나당 아줌마는 일찌감치 아들 낳기를 포기한 경우다. 아줌마는 딸을 넷 낳고 나서 이제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아줌마는 아들 낳는데 공을 들이는 대신 맛있는 팥빵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맛나당에는 맛있는 빵 냄새가 솔솔 피어났다.


 미용실 아줌마는 어디에서 아들을 얻어 왔다. 5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아주머니는 짐 따위를 싣는 커다란 자전거 뒤에 그 아이를 앉히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오후가 되면 아이를 태우고 자랑스럽게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엄마는 근본도 없는 애를 데려다 키우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도 내심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가끔 엄마는 며칠씩 집을 비웠다. 우리는 엄마 없는 집에서 불편한 아빠와 며칠을 보내야 했다. 며칠 후 엄마가 오면 그때마다 엄마한테는 병원 냄새가 났다. 엄마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종용당했고 이제는 스스로 간절히 아들을 원했다.  엄마가 온통 병원 냄새가 배어서 집에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또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마다 엄마 얼굴은 너무 부어서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는 며칠 동안 엄마 곁에 가지 않았다.

 

 아들을 낳은 사람은 승리자였다. 결국 누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미정이가  오더니 난데없이 "우리 엄마 아들 낳았다. 너네 엄마한테 전해 주래"라고 하는 거다. 미정이 엄마는 우리 엄마와 중학교 동창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나는 미정이가 시키는 대로 엄마에게 그 말을 전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그 말을 듣고 난 엄마는 '흑'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둘 다 딸을 넷이나 낳은 처량 맞은 신세였는데 미정이 엄마가 이제 아들을 낳았으니 보란 듯이 약을 올린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설마 미정이 아줌마가 아들 낳은 걸 자랑할 정도로 유치하다고 믿기도 어려웠지만 울고 있는 엄마가 한심해서 나는 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다.


   지긋지긋한 아들 타령은 내가 어른이 된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엄마가 울고 있다고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큰 숙모가 50이 다 되어서 늦둥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아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병원에 엄마가 가지 않았다고 숙모가 전화를 해서 어른이면 어른답게 처신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울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숙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숙모는 나에게 당돌하다고 했다. 그랬다. 나는 당돌했다. 숙모도 아들을 못 낳는다고 그렇게 설움을 겪었으면서 그러고 싶냐고. 다들 왜 그러냐고 따졌다. 하지만 사실  제일 화가 났던 사람은 엄마였다. 얼마나 지긋지긋한 일인가. 아들 못 낳으면 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제 아빠와 엄마는 70이 넘었다. 아빠는 노인 우울증을 겪고 있다. 거의 하루 종일 방에 누워서 벽을 보고 하루를 보낸다. 전화기 너머 엄마는 말했다.

"아들이 없어서 저런가 싶다. 아들이 있었으면 좀 달랐을까 싶다"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아들이 뭐라고 우울증으로 누워 있는 아빠를 벌떡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느냔 말이다.


 아들을 낳으라고 눈치를 주고 괴롭히던 할매들은 다 죽었다. 아들 낳으려 애쓰던 여인들은 이제 호호 할머니가 되었다. 그런데도 의미 없는 아들 낳기 시합은 끝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사진 출처: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mmkarong&artSeqNo=2676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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