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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01. 2020

현실판 미녀와 야수, 그 결말

  우리 집을 나와서 전통 시장 쪽으로 100미터 정도 가면 오토바이 수리점이 있다.  오토바이 아저씨 옷은 늘 시커먼 기름때에 절어 있었다. 아저씨는 키가 작고 피부색이 까무잡잡했다. 쓰고 있는 안경은 도수가 높은지 돋보기처럼 보였다. 아저씨는 나이에 비해서 늙어 보였고 머리숱도 별로 없었다.  

  

 아줌마는 이뻤다. 아마 근방에서 가장 이쁘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아줌마는 꽃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자주 입었다. 머리에는 큐빅이 박힌 핀을 꽂고 다녔다. 다른 아줌마들은 다 짧은 파마머리였다. 최대한 오래 가게 해 달라고 요구한 머리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촌스러웠다. 하지만 오토바이 아줌마는 달랐다. 아줌마는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에 굵은 파마를 해서 항상 어깨 위로 늘어뜨렸다. 뒤에서 보면 아가씨처럼 맵시 있고 이뻤다. 아저씨와 아줌마가 나란히 앉아 있을 때면 아저씨는 더 늙어 보였다.


 우리는 오토바이 아저씨가 아줌마를 납치해 온 거 아니냐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오토바이 아저씨가 부자라고 거짓말을 해서 아줌마를 속인 거라고 상상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오토바이 아저씨와 아줌마는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었지만  사이가 좋았다.  우리는 오토바이 아저씨가 가게 앞에서 끙끙거리며 오토바이를 고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아줌마가 미숫가루에 얼음을 동동 띄워서 갖고 나왔다. 동네 사람들은 오토바이 아저씨는 복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부부가 어쩌면 저렇게 금슬이 좋냐고 부러워했다.

  

 동네에는 떠들썩하게 부부싸움을 하는 집들이 많았다. 간판집 아저씨는 화투에 빠졌다. 간판집 아줌마는 아저씨를 찾으러 시장통을 뒤지는 게 일과였다. 밤이면 아줌마는 목이 쉬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골목 끝집 안 씨는 술에 절어 살았다. 아줌마가 애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안 씨는 옛날보다 더 술에 절어서 비틀거리며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옛날에는 밤에만 비틀거렸는데 이제는 낮에도 비틀거렸다.

 

 동네가 이 모양이니 오토바이 아저씨와 아줌마는 동네에서 단연 제일 금슬 좋은 부부였다. 돈이 없고 집은 초라해도 말이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오토바이 아저씨 살림집은 좀 심했다. 밖에서 보면 가게 안이 들여다 보이는데 방이 한 개고 작은 부엌이 하나 딸려 있었다. 세간살이들도 옹색하고 초라했다.


 그런데 오토바이 수리점 건너편에 숯불갈비 식당이 생겼다. 그 식당은 안에 인테리어를 새로 한 데다가 내부도 넓었다. 식당 앞에는 숯불갈비 아저씨 차가 서 있었다. 아저씨 차는 그랜저였다. 아저씨는 늘 빳빳하게 다린 셔츠를 입고 나왔다. 고된 식당일은 아줌마가 하고 아저씨는 멋진 셔츠를 입고 왔다 갔다 하거나 식당 샷시를 내리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딱히 할 일이 없는 오후가 되면 사우나를 하러 갔다. 차로 한 시간이나 되는 먼 곳으로 사우나를 하러 다녔는데  그곳이 그렇게 물이 좋다는 게 이유였다.


 오토바이 아저씨는 아줌마의 허리 통증을  걱정했다. 아저씨는 숯불갈비 아저씨가 매일 사우나를 다닌다는 걸 듣게 되었다. 아저씨는 아줌마도 사우나를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고민을 하다가 숯불갈비 아저씨가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는 걸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갔다. 그리고 사우나 갈 때 가끔 아줌마를 데리고 가 줄 수 없냐고 부탁했다. 숯불갈비 아저씨는 곤란하다는 듯이 뜸을 들였다. 자주는 힘들겠지만 가끔 그렇게 하마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숯불갈비 아저씨는 사우나 갈 때마다 오토바이 아줌마를 태우고 갔다. 심지어는 거의 매일 사우나를 가는 것도 같았다. 오토바이 아줌마는 매일 사우나를 다녀서 얼굴이 더 하얗고 이뻐졌다. 얼굴이 활짝 펴서 보조개를 지으며 웃을 때는 소녀 같아 보였다.


 동네가 난리가 난 것은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숯불갈비 아저씨와 오토바이 아줌마가 밤에 같이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오토바이 아저씨는 가게 문을 닫고 아줌마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은 원래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오토바이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가게 문이 닫혀 있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 숯불갈비 식당은 밤에 비밀 이사를 갔다. 그 많은 식당 집기와 살림살이를 어떻게 옮겼는지 수수께끼였다.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던 식당은 아침에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 말로는 숯불갈비 아저씨도 돌아온 것 같더라고 했다.

 

 오토바이 아줌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토바이 집 아이들이 어른만큼 키가 커졌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토바이 아저씨는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여전히 기름때 절은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고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학교 가고 올 때마다 아저씨 얼굴을 훔쳐보는 걸 재미있어했지만 아저씨 표정은 늘 한결같아서 곧 재미가 없어졌다. 아저씨는 화가 나거나 슬픔에 빠진 사람 같지 않았다. 그저 늘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다 땀이 많이 흐르면  앉아서 담배를 피곤했다.


  '아저씨는 아직도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저씨는 아줌마를 용서했을까? 아줌마는 돌아오기는 할까?'  우리는 내기를 했지만 결과는 알지 못했다.


 결국 아줌마는 30년이 흐르고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토바이 가게는 아직도 그곳에 있다. 현실판 미녀와 야수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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