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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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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10년쯤 전의 일이었다. 회사에서 부고가 올라왔다. 그런데 부고에 올라온 사람은 바로 팀장의 딸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서 웅성거렸다. 혹시 그 따님에게 우리가 몰랐던 지병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사고를 당한 건지 다들 궁금해했다. 그때 사무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배가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했다. 자리로 가서 일이나 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들은 대충 눈치를 챘다. 이 죽음이 입 밖에 내기에도 조심스러운 죽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모두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좋은 일이라고 모여서 떠들고 소란을 떨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각자의 일에 전념했다.

직원들은 그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외국어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고 그 후에도 상위권을 놓치지 않은 수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팀장은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처세술에 관련된 책만 읽어대는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팀장이 가끔 수다스러워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주로 딸에 대한 이야기나 자랑을 할 때였다.

팀장은 딸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고 딸에 비해서 성적이 평범한 아들 얘기는 거의 꺼내지도 않았다. 팀장의 딸은 여러 대학교에 합격을 하고 어디로 갈지 고심을 많이 했다. 딸은 교육대학교를 가고 싶어 했고 팀장은 SKY를 갔으면 해서 결국은 SKY 중에 한 대학으로 입학을 했다. 그녀는 대학 생활을 착실하게 끝내고 7급 공무원 시험을 봐서 한 번에 합격을 해 버렸다. 그것도 수석 합격이었다. 그녀는 조그맣게 신문에 실리기도 했었다. 팀장은 그 후로도 그녀의 기사가 실린 신문지를 오려서 가지고 다녔다. 가끔 사람들에게 그걸 꺼내서 자랑하고 싶어 했다. 그랬는데 그렇게 신문에 실리면서 화려한 사회 신고식을 치른 그녀가 갑자기 죽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장례식장에 조의를 표하러 가기로 했다. 직원들은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출발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사무실을 벗어나자마자 다들 떠들어 대고 싱거운 농담을 던졌을 텐데 이 날은 다들 말이 없었다. 이런 장례식은 정말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가 본 장례식장은 대부분 직원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장례식장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노환이나 지병으로 돌아가신 어르신들이었고 나이도 거의 70대 후반이나 80대 정도 되는 어른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장례식장은 경험해 보지 못한 장례식장이었다.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장례식장이 도대체 어떤 분위기일지 그리고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았다. 비단 그런 걱정은 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직원들도 차 안에서 조용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다들 무거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팀장이 안내하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저녁 식사 때여서 다들 육개장에 밥을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육개장은 맛이 있었고 사람들은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장례식장에 가면 아무래도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그런 것을 묻고 대답하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고 기억 속에 오래 붙잡아 두려고 하는 것일 거다.

팀장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음식이 더 필요하지 않냐고 물으면서 일하는 분에게 떡을 더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딸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딸이 왜 세상을 떠났는지 그리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 회사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던 팀장은 그 날따라 평소답지 않게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팀장의 딸은 바로 발령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직장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높은 직급으로 발령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회사에서 나이가 훨씬 많은 선배들에게 따돌림을 받았고 그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고 했다. 그녀는 퇴근하고 오면 아버지를 붙잡고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때마다 팀장은 같은 대답을 했다.


" 돈 버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았냐? 무슨 일을 해도 그 정도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해? 그 좋은 직장 그만두고 나가면 더 힘들고 고생하는 거야. 시간이 약이니까 조금만 견뎌봐. 그러면 다 적응하게 되어 있어. 나중에 생각해 보면 네가 지금 얼마나 배부른 소리를 했나 싶을 거다. "

팀장이 그 말을 할 때 팀장은 비통해 보였다. 자신이 무심코 했던 말들이 자꾸만 귀에서 맴돌고 생각이 나서 괴롭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팀장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비슷한 조언을 했을 것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높은 직급으로 발령을 받았으니 힘들면 그만두라는 말을 하기는 참 어려웠을 것이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경쟁률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면 높은 직급의 공무원으로 인생에 첫발을 내디딘 그녀의 미래는 밝고 찬연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들 그녀에게 힘들면 그냥 다 내려놓으라고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녀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결국 아침에 출근을 하지 못하고 집에 남아서 혼자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결국 뛰어내리고 말았다.


팀장은 빈 잔에 소주를 따라서 마셨다. 그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도 그리고 소주를 연거푸 마시는 것도 처음 보았다. 그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우리는 모두 그를 위로할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는 나중에는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취해 버렸다. 결국 다른 친척이 팀장을 부축해서 데리고 가 버렸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팀의 김 팀장이 입을 열었다.

" 정 팀장 정말 안 됐어. 우리 딸은 자기 주관이 확실했거든. 자기가 원하는 전공학과와 대학을 스스로 선택을 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딸이 원하는 대로 다 수용하고 지지를 했었지"

김 팀장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 팀장의 고통과 대비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뭔가 알 수 없는 우월함을 느꼈던 걸까. 어쨌든 적절치 않은 말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그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김 팀장과 우리 팀장은 비슷한 연배의 딸을 키우고 있었고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는 우리 팀장의 딸이 정 팀장은 부럽거나 시샘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누군가 죽고 떠난 자리에 그 죽음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뒤에서 왁자하니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7명에서 8명 정도 되는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앉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섞여 있었는데 고인이 된 딸의 친구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20대 초반이었다. 아직 앳된 기색이 남아 있고 얼굴에는 삶에 대한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들 같았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온 손님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젊고 생동감이 있었기 때문에 마치 그들은 회식 장소에 모여 앉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앉아서 밥을 먹고 안주를 먹기 시작했다. 그들이 앉은자리에는 장례식장에 어울리지 않는 활기 같은 것이 퍼져 나갔다.


사람이 스스로 몸을 던진다는 것은 이미 정상적인 판단 기능이 마비된 것을 의미할 것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고 무서운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떨어졌을 때 내 육체가 입을 치명상을 생각하면 차마 발을 허공에서 떼기가 두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뛰어내린다는 것은 죽음의 두려움보다 삶의 고통이 훨씬 커진 것을 의미한다. 그 정도 상태가 된다면 이미 죽음의 두려움이나 육체적인 끔찍한 상처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버린다.




이상한 장례식이었다. 현실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한 젊은 누군가가 떠나 버린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젊은 누군가가 찾아와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남아 있는 젊은이들은 죽음과 상관없이 젊고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겨졌다. 누군가는 모든 희망을 다 포기하고 떠난 곳에 누군가는 무한한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원래 세상은 그런 곳이지만 이 이상한 장례식장에서는 그런 희한하고 슬픈 대비가 더 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아주 아프고 상처 받았던 젊음이 조용히 떠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건너가는 새로운 곳에서는 더 이상 그녀를 짓누르던 아픔이 없을 거라는 기대를 해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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