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린 성추행범을 잡았을 때
# 부모가 된다는 것
성추행이라거나 성폭행 같은 단어는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는 단어였다. 주변에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가까운 곳에서 그런 일을 겪은 적은 없었다. 그 일이 있기까지는.
신촌에 있는 종합병원 청소년과에 아이 진료를 간 적이 있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쯤 되었고 둘째 딸아이는 6살이나 7살이었다. 종합병원 대기실은 언제나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보채는 아이들로 대기실은 시끄럽고 부산스러웠다. 큰 아이가 심한 기관지염에 걸리는 바람에 나는 두 아이와 함께 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큰 아이의 진료가 끝나고 대기실로 나왔는데 딸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진료실에 큰 아이만 데리고 들어갔었다. 대기실에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딸아이가 대기실 TV에서 나오는 만화 영화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놀란 것처럼 내 쪽으로 나가 오더니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 엄마, 어떤 오빠가 내 엉덩이를 만졌어"라고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당황하였고 딸아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
딸아이는 또래보다 의사 표현이 분명한 편이었다. 어떤 오빠가 일부러 자기 엉덩이를 만졌는데 그 오빠는 교복을 입고 있고 지금 진료실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그 오빠라는 아이를 기다렸다. 조금 뒤에 정말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 학생, 혹시 부모님하고 함께 왔니?" 그러자 그 아이는 혼자서 왔다고 대답했다.
" 그러면 혹시 아까 여기 있는 꼬마 옆에 앉아 있었니?"
그러자 그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것 같았지만 키가 아주 작은 아이였다. 보통의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 보이는 키였다. 그리고 아주 착하고 순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얼굴이 작고 갸름한 얼굴형에 커다란 눈을 하고 있는 그 아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선뜻 우리 딸아이의 엉덩이를 만졌냐고 물어보기가 망설여졌다. 너무나 순진해 보이는 눈망울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 아이가 너무 어려서 상황을 잘못 알고 엉뚱한 소리를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 혹시 말이야. 그러니까 혹시 물어보는 건데. 학생이 우리 아이 엉덩이를 만졌다고 아이가 말해서 아줌마가 확인하고 싶어서 물어보는 거야. 혹시 무슨 일이 있었니?"
그러자 그 아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그 아이는 놀라고 당황한 것 같았다. 나도 덩달아 당황했다. 아이는 펄쩍 뛰었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이 꾸며낸 것 같지 않아서 나는 내 행동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나는 그 아이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병원 데스크에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데스크 직원은 나의 얘기를 듣더니 대기실에 CCTV가 있으니 확인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CCTV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그 남자아이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처음처럼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였다. 나는 왠지 큰 실수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저 작은 남자아이가 6살짜리 엉덩이를 만졌을 거라고 의심하는 게 왠지 너무 심한 비약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괜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CCTV가 돌아가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문제의 장면이 나타났다.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는 대기실 입구에 서서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우리 딸아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우리 딸의 엉덩이를 정말로 만지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소름이 끼치면서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어쩌면 저렇게 순진하고 천진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 남자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그대로 CCTV 화면에 담겨 있다는 걸 확인하자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기가 죽어 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CCTV를 확인해 준 직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수간호사인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그녀와 잠시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내가 너무 놀라서 격양되어 있는 것을 보고 녹차를 한 잔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오늘 부모님과 같이 오지 않고 혼자 왔으니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일단 오늘은 부모가 없으니 그냥 아이를 돌려보내고 나중에 부모님과 직접 얘기를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병원 측에서 그 부모에게 연락을 해서 나에게 연락이 가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들이 모두 맞는 말이다 싶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한 상황이고 화가 난다고 하더라도 어린아이를 상대로 내 감정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놀란 딸아이를 진정시켜서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는 " 엄마, 왜 그 오빠는 내 엉덩이를 만진 거야?"하고 물어보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어렵고 막막했다.
" OO아. 사람의 몸은 소중하잖아. 그래서 남한테 함부로 보여주거나 만지거나 하면 안 되는 거라는 거 알지? 아마 그 오빠는 그런 걸 모르는 것 같아. 엄마가 그 오빠 부모님하고 연락을 해서 그런 걸 잘 알 수 있도록 교육하라고 할 거야. 그리고 그런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벌을 받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나서 연락을 기다렸는데 그다음 날까지 따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그 아이의 부모도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사람들일까. 이런 큰일이 터졌는데 연락을 하지도 않고 그냥 침묵하고 있다니 참 이상한 사람들이구나. 내가 그 아이를 고분고분 돌려보낼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화를 내고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했어야 했나 그런 후회도 했다.
그러고 나서 늦은 시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그 아이의 아버지였다. 목소리로 봤을 때 나이는 30대 후반쯤 되었을까. 그런데 그 목소리는 너무나 지치고 기운 없는 목소리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아이의 부모와 전화가 연결되면 강하게 항의하고 따지려고 했었는데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전화기 속의 목소리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 아이는 사실 그런 비슷한 문제를 여러 차례 일으켜서 학교에서 학폭이 열린 적도 있다고 했다. 지금 종합병원에 다니는 것도 정신과를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그런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상담 치료를 받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 이제 좋아지나 보다. 이제 괜찮아지나 보다 했는데 결국 또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가 많이 놀라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제 저도 아이를 포기하고 싶습니다. 정식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셔도 되고 학교에 연락을 해서 조치를 취하셔도 저는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저는 다 수용하고 받아 들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그 아버지의 목소리는 동굴에서 울려 나오는 것처럼 낮고 축축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 남자는 술을 마셨을까. 그 목소리는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기보다는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한 목소리였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고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경찰이나 학교에 신고하려고 생각했었다.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어디인지도 병원을 통해서 다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런 나쁜 버릇을 고치려면 제대로 고생을 하고 망신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고 생각했다. 호되게 당해 봐야 그런 나쁜 버릇을 고칠 거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아이 때문에 학교에 있는 상담센터에 몇 번 상담을 간 적이 있었다. 물론 나도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을 추스리기 힘들어서 도움을 받으러 간 것이었다. 그때 상담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 주었다. 부모들이 자녀 때문에 가장 힘든 순간이 오면 하는 말들이 부모라는 자리를 다 버리고 그냥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 한다고. 초등학교 딸아이가 채팅앱으로 외설스러운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어느 엄마, 아들이 집을 자주 가출을 한다고 마음을 졸이며 울먹이는 어느 엄마, 그런 엄마들도 그런 아이들도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고 했다.
나 또한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더라면 그런,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세상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내 의지대로 세상일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나의 의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의 물레방아를 돌려놓는 존재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자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 젊은 아버지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와 한숨에서 나는 그만 또 다른 나를 보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세상의 모든 시름에 잠긴 부모들의 목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나는 그 남자에게 경찰에 신고하거나 학교에 신고하지는 않겠다고 다만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 교육시켜 주시라고 한번 더 아이를 믿어 주시라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때 그 교복을 입고 있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을까. 그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아주 먼 곳에 있는 그 둘의 존재를 나는 조용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