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동생을 3년 정도 데리고 살았다. 남편이 매일 야근이라 늦게 들어오다 보니 나는 동생에게 심적으로 의지를 했고 장난꾸러기 두 아이들은 이모를 괴롭히는 재미로 살았다. 철없던 동생이 가끔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같이 사는 동안에 북적북적이며 사는 재미가 있었다.
동생은 은행 계약직이었다. 정규직 전환 시험을 매년 보았는데 면접까지 갔다가 최종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매년 겨울이 되면 시험공부를 한다고 독서실에 틀어 박혀서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동생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상했다. 몇 년 같이 살았더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서 가끔은 내가 엄마가 된 것처럼 걱정하고 불안해하면서 속을 끓였다. 동생은 몇 년 동안 열정적으로 전환시험을 준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지친 것 같았다. 특히 필기시험을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두 번이나 탈락하고 나니 자신감을 많이 잃은 눈치였다.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겠다는 말에 나도 더 이상 뭐라고 설득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동생은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는지 소개팅을 몇 번 나갔다. 한 번은 무슨 철도공사에 다니는 남자와 소개팅을 했다. 동생이 들어오고 나서 소개팅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동생은 쓸쓸하게 웃었다. 상대방 남자가 동생에게 정규직인지 대학은 어디를 졸업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바람에 난처하고 곤란했다고 했다. 동생은 이름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지방의 대학을 나왔다. 그런 데다가 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몇 년째 정규직 전환도 실패했는데 그런 질문을 받았으니 마음이 어떠했을지 알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동생은 소개를 받고 소개팅을 나갔는데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 결혼 적령기다 보니 상대방 남자들도 결혼을 염두에 두고 현실적인 질문을 많이 던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런 현실적인 질문에 답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져서 이제 더 이상 소개팅을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동생은 욕심이나 승부 근성 같은 게 별로 없었다. 주변에 친구들이 잘 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줄 뿐이지 시샘하거나 질투하는 모습도 없었다. 언제나 웃는 얼굴에 유쾌한 성격을 가진, 키가 커다란 매력적인 아가씨였지만 사회적인 여러 잣대로 봤을 때는 아마 매력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직업이 번듯한 것도 아니고 출신 대학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 결혼 시장에서는 상품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일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동생은 그 소개팅 이후로 소개팅에 나가지 않았고 아예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동생이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나고 들어왔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동생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 그래 남자는 어떤 사람이야? 잘 생겼니? 느낌은 어땠어?"
내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내자 동생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별로였어. 생긴 것도 별로고. 키도 작고. 가장 심한 건 좀 어딘가 덜 떨어져 보여"
"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 밥을 먹는데 내가 그 남자를 쳐다보면 눈을 내리깔고 내가 밥을 먹으려고 고개를 숙이면 그때 흘깃 나를 훔쳐보다가 내가 또 고개를 들면 다시 눈을 내리까는데 눈을 똑바로 마주 보지도 못하고 좀 바보 같아"
동생이 말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이 소개팅도 글렀다 싶었다.
" 그리고 언니, 이 남자 서울대 나왔다는데 나하고는 너무 안 어울리는 거 아니야?"
그 대목에서 나도 어리둥절했다. 내가 만난 서울대 나온 사람들은 다들 목에 힘 깨나 주고 자존심 깨나 세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서울대 나온 남자가 내 동생하고 소개팅을 했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인가 의아했다.
어떻게 소개팅이 들어왔냐고 물어보니 그 남자는 동생 직장에 있는 동료의 친구였다. 어느 날 그 남자가 은행에 왔는데 창구에서 일하는 동생을 보고 호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친구를 졸라서 소개팅을 해 달라고 했고 둘은 근처 커피숍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 후로 둘의 연애는 그다지 진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동생은 아주 사소한 기회에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사건도 참으로 사소한 사건이었다.
둘은 도시락을 사서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는데 만나보니 남자가 각각 다른 2개의 도시락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 남자는 평소에 무척이나 알뜰했는데 사 가지고 온 도시락을 보니 한 개는 4000원짜리고 한 개는 그 두배쯤 하는 비싼 도시락이었다. 남자는 동생에게는 비싼 도시락을 주고 자기는 저렴한 도시락을 먹더란다. 동생은 자기를 아껴주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그 남자에게 호감을 품게 되었고 둘은 조금씩 사랑이란 걸 하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그 남자는 얼마나 서투르고 때가 묻지 않았는지 가끔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동생의 생일날 둘은 63 빌딩 라운지에서 식사를 했다. 동생은 내심 비싼 선물을 기대하고 나갔다. 보통 남자들이 생일 선물로 목걸이나 반지나 아니면 향수 같은 걸 주니까 그런 걸 받을 기대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이렇게 비싼 식사를 했으니 선물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헤어질 때까지 동생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는데 남자는 정작 선물은 주지 않고 구구절절 두 장 짜리 손편지를 주고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온 동생은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그러나 내가 그 문제의 편지를 읽어 보았더니 그 남자의 편지는 너무 순수하고 솔직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 잘 생각해라. 너한테 비싼 선물을 사 줄 수 있는 남자는 네 인생에서 여럿 만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편지를 써서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더 이상 고민할 거 없이 무조건 이 남자라고 본다"
그래서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 둘은 정말로 결혼을 했다. 객관적인 조건 혹은 지표만 놓고 본다면 절대 성사가 될 수 없는 결혼이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남자와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을 졸업하고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여자의 결혼이란 현실에서는 거의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직업과 학벌과 재산으로 사람의 등급을 산정한다고 하는데 아마 결혼정보회사에서 두 사람의 등급을 산출했다면 한 명은 아주 위에 랭킹 되어 있고 한 명은 아주 아래에 랭킹 되어 있어서 둘은 서로 만나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둘은 결혼을 하고 너무나 재미있게 잘 살고 있다. 동생은 지금도 가끔 툴툴거린다.
" 언니, 나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 게 결혼할 때까지도 나한테 어디 대학 나왔는지 묻지를 않더라.
이거 나 무시하는 거 맞지?"
그리고 가끔 이런 얘기도 한다.
" 언니, 우리 남편 가만히 보면 얼마나 바보 같은지 몰라. 가끔 방에 들어가 보면 좀 어려운 사회학 서적 같은 거 보고 있는데 그럴 때나 아~맞다. 이 남자가 서울대 나왔지 하는 거지. 현실에서는 완전 빙구야"
그렇게 동생과 제부는 재미있게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살다 보면 결혼할 때 학벌이 어쩌니 저쩌니 서로 학벌이 차이가 많이 나서 양쪽 집안에서 반대한다거니 하는 것이 모두 아무 부질없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학벌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사람이란 어떤 객관적인 기준으로도 값을 매기거나 수치화할 수 없는,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이다. 그런 상대방의 가치를 알아주고 그 가치를 소중하게 지켜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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