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질문에 그 직원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일상적으로 관리사무소에서 응대하는 질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관리비나 소독 일정 같은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의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조금 있다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 그 아저씨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만 두셨습니다. "
개인적인 사정, 그렇다고 그 개인적인 사정이 무엇인지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알겠습니다. "
나는 전화를 끊었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사실대로 말 한 건지 자신이 없었지만 믿지 않고 다른 무슨 도리가 있단 말인가. 나는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청소를 시작했다. 하긴 경비 아저씨들은 자주 바뀌는 법이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캐묻는다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 아파트에 이사온지 5년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경비 아저씨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작년에 경비를 서던 아저씨는 키가 아주 작고 얼굴이 새까만 아저씨였다. 키가 작고 덩치가 왜소해서 경비 업무가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 경비 아저씨는 인정이 많고 수다스러웠다. 주민들한테 친근하게 말을 걸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다가와서 물어보고 확인하곤 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동 입구를 막 들어서는데 아저씨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저씨가 무슨 그림을 그리나 궁금해하며 그림을 보았다. 아저씨는 연습장 같은 노트에 여러 개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런데 아저씨가 그린 그림은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 아주 수준급이었다. 유명 미술학원에 가면 바깥에 전시해 놓는 그런 작품들처럼 완성도가 높았다. 어떤 그림은 나무 위의 새를 그린 그림이었고 다른 그림은 여자 연예인의 얼굴을 그린 인물화였다. 이 아저씨에게 이런 예술적 재능이 있다니 놀라웠다. 아저씨는 그림을 그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 뒤로도 아저씨는 자신의 작품을 보여 주거나 자랑하고 싶어 했다. 우리 동에 있는 주민들이 스케치북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게으름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 분리수거를 하려고 내려오면 도와주겠다고 꼭 옆으로 다가왔다. 괜찮다고 사양해도 도와주겠다고 고집을 부리고는 하였다.
그 아저씨가 몸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자 젊은 경비 아저씨가 들어왔다. 이 아저씨는 선한 인상의 사람이었는데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아저씨는 경비실에서 책을 자주 읽었다. 그리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 것 같았다. 가끔 경비실을 지나가다 보면 내부의 정리된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평이나 될까 싶은 경비실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가 겨우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책상 위에는 손전등과 수첩, 연필꽂이와 책 몇 권이 꽂혀 있었는데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가끔 경비실 앞을 지나가다 보면 아저씨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저씨는 책을 읽다가 답답하면 밖으로 나와서 청소를 하거나 분리수거함을 정리했다. 음식물 쓰레기통도 언제나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가끔은 물청소를 해서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을 말끔히 치워 놓았다. 운동하러 나가다 만나면
" 운동하러 가시나 보네요. " 라거나 "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 하는 아저씨의 점잖은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경비실에 아저씨가 보이면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랬는데 지난주 경비 아저씨가 갑자기 바뀌었다. 퇴근하면서 동 입구로 들어오는데 처음 보는 아저씨가 경비실에 앉아 있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기 싫지만 이번에 새로 온 아저씨는 눈빛이 무섭고 날카로웠다. 경비 업무를 하기에는 무척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경비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고 앉아 있어서 눈만 보이는데 그 눈이 무서워 보였다. 아저씨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나 목례도 하지 않고 언제나 핸드폰에 푹 빠져 있었다. 이 아저씨가 온 후로 분리수거함은 자주 넘쳤고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는 음식물 국물이 제때 치워지지 않아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아저씨는 그 후로도 사춘기 중학생처럼 핸드폰에 푹 빠져서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핸드폰에 무슨 재미난 게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며칠 전에는 딸아이가 예전 경비 아저씨 얘기를 꺼냈다. 지금 아저씨는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아들 녀석도 예전 경비 아저씨가 궁금하고 보고 싶다고 했다. 설마 관리사무소에서 해고한 것은 아니겠죠 하고 걱정을 했다. 우리 가족은 어느샌가 그 친절하고 우직한 경비 아저씨에게 친밀감과 신뢰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하는 자세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에 따라서 이렇게 색깔이 다른 기억을 남기게 된다. 좋은 사람은 자신이 떠난 자리에 생각지도 못했던 아쉬움과 그리움을 남긴다. 그래서일까. 오늘 그 선한 얼굴의 경비 아저씨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고맙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