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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Mar 08. 2021

이 남자와 결혼해도 될까요?

# 사랑

  지역 카페에 있는 글을 읽다가 누군가 올린 고민 글을 읽게 되었다.

  

    내용은 결혼할 상대방에 대한 고민이었다. 글을 쓴 사람은 20대 후반의 여자였는데 그녀는 3년 가까이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상위권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을 졸업해서 대기업을 다니고 있고 남자 친구는 서울의 중위권 대학(중위권은 또 어디인가)을 나와서 마찬가지로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글에는 나와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 친구와 소울 메이트라고 할 정도로 가치관이나 생각이 잘 통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하였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남자 친구가 분양받은 아파트가 직장에서 멀다는 이유, 두 번째 이유는 남자 친구의 학력이 자기보다 떨어진다는 이유, 그리고 세 번째는 더욱 놀라운 이유였는데 자신의 부모님은 박사 학위까지 받았는데 남자 친구의 부모님은 고졸이라는 사실이라고 되어 있었다.


   댓글이 100개 넘게 달려 있었다. 일부 댓글은 고민할 가치도 없는 일에 고민을 하고 있냐고 그녀를 비난하는 글이었고 또 일부 댓글은 현실적으로 조언하자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결혼이니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었다.


 얼마 전 브런치에 글을 하나 올렸는데 학벌과 결혼에 대한 짧은 글이었다. 가볍게 쓴 글이었는데 조회수나 라이킷을 보고 놀라서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였다. 역시 한국 사회는 학벌에 대해서 관심들이 많고 그만큼 의미를 부여하는 양상이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 사람의 학벌이라는 것은 거의 성인부터 노년이 될 때까지도 그 사람을 따라다니는 이름표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내가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본다면 약간의 무시와 깔보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남편과 나는 같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까지 그곳에서 다녔다. 나는 남편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남편은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단과학원을 다녔던 것이다. 바로 그 단과학원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연신 손을 번쩍번쩍 치켜들며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던 활달하고 적극적인 여학생,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잘난 체하고 부담스러웠던 여학생으로 남편은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노력파였다. 아마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무너지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절박감, 내가 스스로 헤쳐 나가지 않으면 현실이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는 불안감 같은 감정 말이다. 나는 그런 감정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머리 좋은 학생보다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선생님들은 애정을 느끼는 법이었다.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가지고 있는 무료 문제집이나 학습지를 나눠 주었고 학교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에 나의 자만심은 뻔뻔할 정도로 높아졌고 콧대도 높았다.  아마 그것은 고등학교 내내 상위권을 유지하고 선생님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으면서 가지게 되었던 그릇된 자부심 같은 감정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이 지나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남편과 소개팅이나 미팅 같은 자리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고향 친구들 모임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남편이 어느 대학 학생이라고 소개를 하였을 때 내 마음속에는 무시하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솟아 나왔다. 사람에게는 묘하고 비열한 습성이 있는데 그것을 내가 그때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남편이 다니던 학교는 내가 살던 도시 근처에 있는 대학이었다. 차라리 다른 행정구역에 있는, 아주 멀리 떨어진 학교였더라면 사람들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함부로 속단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다니던 학교는 바로 우리 도시에 붙어 있었고 그곳의 교수진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그리고 그곳의 학생들이 얼마나 성적이 낮고 행실이 좋지 않은지 하는 것들이 우리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훤히 알려져 있었다.

 

 잘 알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무시할 근거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학교를 마음껏 무시하고 평가절하하였다. 심지어 자녀들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 너 그러다가 OO대' 간다' 하는 것이 그 당시 유행하는 잔소리처럼 되어 버릴 정도였다.


 그랬으니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가 그 남자를 그렇게 무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어 버렸다. '앞으로 볼일이나 있겠어.'


  그러나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감정이란 것은 제 멋대로 사람을 갖고 놀기도 한다. 어느 날 길에서 만나서 알은체를 하고 잠깐 같이 길을 걸었는데 상대방이 진중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도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이 남자는 아니지. 하는 강한 반발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서로 책을 돌려 읽었고 하천 옆 둑방길을 따라 가끔 거닐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서로 각별한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나는 금요일이면 고향에 내려왔다가 다시 일요일이 되면 기차를 타고 떠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만남과 이별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설마 이 사람과 아주 오래오래 만나서 결혼까지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때는 겨우 21살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내가 가장 큰 혼란에 맞닥뜨린 것은 한 호프집에서였다. 그 날 남자 친구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다른 테이블에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그 아이들은 모두 남자 친구와 같은 학교, 그러니까 바로 우리 지역에서도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그 OO학교 학생들이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멸시와 무시의 감정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 그때 공부 지지리도 못하던 애들, 다 같이 어울려 다니네"

그런 생각이 말릴 새도 없이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지 않게 얼굴을 붉힌 것도 나였고 보이지 않게 슬퍼진 것도 사실은 나였다. 그때 나는 겨우 21살이었고 세상이 뭐가 뭔지 하나도 확실한 게 없어 보일 때였다.

20살을 갓 넘긴 젊은 청춘들에게 사실 어쩌면 대학이란 건 전부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학은 내가 소속된 커다란 집단이었고 나의 현재였고 또 한편으로는 나의 미래를 결정 지어 주는 중요한 관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21살의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인간 됨됨이가 얼마나 진실하고 진중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잣대들로 남자 친구를 다시 재단하곤 하였던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많이 우울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과연 이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도 많이 하였다. 부모님께 남자 친구를 소개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두려움에 지레 질려서 집에는 남자 친구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비밀에 부쳤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10년을 만나서 결국 결혼을 했다. 나는 직장인이 되어서 먼 지방으로 발령이 났지만 10년 가까이 주말마다 만나는 일들을 되풀이했다. 사람들이 '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면 나는 일부러 집에 돌아와서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으로 들어온다' 하고 문장을 고쳐 말하곤 하였다.


 과연 결혼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청춘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이제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남편과 내가 중년이 되었어도 아직 우리에게는 서로가 그때, 20대 초반의 앳되고 순수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원하는 조건들, 그런 기준들에 맞는 사람을 찾기는 어쩌면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기준은 눈으로 확인하기 쉬우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기준들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들, 예를 들면 여행을 갈 때 이 사람은 같은 도시에 오래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 많이 걷는 여행을 좋아하는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리고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책을 읽는지 그리고 읽는다면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그런 복잡한 기준들을 맞춘다는 것은 어렵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서로가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이 경이롭고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 21살의 나를 생각한다. 어리고 허영에 들떠 있고 어딘가 모르게 바람이 들어가 있던 나, 그러나 그런 철없던 내가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21살의 나에게 경이로움을 느낀다. 21살의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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