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운전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운동신경이 둔한지 가끔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처음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샀을 때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살던 원룸 건물 뒤 편으로 길쭉한 주차장이 있었는데 일단 차를 주차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차를 어떻게 빼야 할지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밤에 건물 복도에 서서 주차장을 유심히 바라보고 방으로 들어와서 차를 어떻게 빼야 할지 이리저리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
그런 내가 속초까지 차를 운전해서 간다는 것은 사실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기회가 좋았다. 우리 네 자매는 그때까지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다들 취업 준비하랴 회사 다니랴 바빴기 때문이었다. 3번이 여행을 제안했다. 3번 회사에서 운영하는 여름 휴양소에 당첨이 되었는데 속초 바닷가에 있는 전망 좋은 콘도였다. 1번인 나는 정작 망설였는데 2번과 3번, 4번이 모두 열렬히 여행을 갈구하여서 나는 왕언니로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지금의 남편이자 당시 남자 친구였던 K는 고속도로 운전이 오히려 쉬울 거라고 용기를 줬다. 서울에서 갈 때는 자신이 차를 운전해서 데려다줄 테니 올 때만 조심해서 살살 운전해서 돌아오면 될 거라고 했다. 그때 나는 중고로 샀던 악센트를 폐차 처분하고 새 차를 막 뽑은 후였다. 운전이 약간 익숙해지기도 하였고 막 재미있던 시기였다.
그렇게 우리 4명의 여행은 두근두근 시작되었다. 그때만 해도 자상하기 이를 데 없던 나의 남자 친구는 정말로 우리를 속초까지 데려다주고 늦은 밤,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올 때는 운전을 조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남자 친구가 떠나고 나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다들 돈이 궁하던 시절이라 본격적으로 논다고 해 봐야 무척이나 소박한 여름 휴가였다. 우리는 2만 원씩 돈을 거둬서 먹을거리도 사고 떡볶이도 사다 먹었다. 밤에는 캔맥주와 오징어를 질겅거리며 수다도 떨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서로의 실없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고 호들갑을 떨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서울로 올라오는 날이 되었다. 그때는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크게 헷갈리지 않고 속초 시내를 빠져나와서 서울 방면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쯤 달리고 나서 나는 길을 잃었다. 표지판도 보이지 않아서 당황하고 있을 때 길을 걷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나는 차를 세우고 서울로 가는 길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오른쪽으로 난 길을 가리켰다.
" 그 길이 지름길이에요. 그 길로 쭉 가면 서울로 가는 큰 길이 나와요"
나는 인사를 꾸벅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그 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나는 오른쪽으로 난 길을 달렸다. 조금 달리자 길은 오르막으로 변했다. 그리고 경사가 점점 심해지더니 길은 꼬불꼬불해졌다. 지금의 운전실력이라면 한 손으로도 핸들을 휙휙 돌리며 화려한 핸들링을 선 보일 테지만 그때의 나는 운전의 걸음마 단계 어디쯤에 있는 초보 운전자였다. 나는 길이 꺾일 때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덕분에 차는 이상하게 출렁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속도를 내는가 싶으면 급정거하듯이 차가 멈추고 그러다가 또 갑자기 '부웅'하며 달리는 식으로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에는 차가 한대도 보이지 않았고 길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나는 슬슬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등에서는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손에서도 땀이 배어 나왔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 놈의 길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점점 경사가 가파른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이 경사가 90도쯤 될 리가 없는데도 그때 나의 심리 상태로는 거의 경사가 90도쯤 되는 길을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온갖 이상한 상상들을 하기 시작했다.
' 아까 그 길을 가르쳐 준 아줌마, 일부러 엉뚱한 길을 가르쳐 준거 아니야? 차가 한 대도 없는 이런 길을'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을 하다 보니 점점 더 겁이 났다. 급기야는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이 미끄러져서 갑자기 핸들을 놓칠 것 같았다. 그 산길에는 차들이 한 대도 지나가지 않고 우리 차만 그렇게 끙끙대며 달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왕언니로서의 체면과 위엄을 다 포기하고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참으려고 했지만 겁이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울먹울먹 하다가 나중에는 정말로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동생들도 겁에 질린 것 같았다. 3번은 나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달랬다. 4번은 조금만 더 가면 큰 길이 나올 것 같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2번은 달랐다. 원래 2번과 1번은 경쟁관계라고 했던가. 호시탐탐 1번의 자리를 넘보던 2번은 이런 상황을 호락호락 넘기지 않았다. 2번은 내 바로 뒤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나를 비난했다.
"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큰소리칠 때부터 알아봤어. 운전도 제대로 못하면서 잘난 척 하기는. 이렇게 해서 서울로 가기는 가는 거야? "
그렇게 2번은 내 바로 뒤에 앉아서 퉁퉁거리며 불만의 말을 간헐적으로 뱉어내고 있었다. 나는 2번의 도발을 애써 무시하며 운전에 집중했다. 어떻게든 살아서 이 숲을 빠져나가야 했다. 그리고 얼마쯤 달렸을까. 정말로 길은 내리막으로 바뀌었고 크고 넓은 길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이제 살았다. 나쁜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고 환하게 느껴졌다. 내 휘하의 동생들도 이제 살았다 싶었는지 환호하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런데 차들이 서서히 막히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차들이 쏟아져 나오나 싶을 정도로 차량이 많아지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차들이 도로를 점령하였다. 그런데 그때 연료 게이지에 불이 들어왔다. 초보 운전에다 산길을 달리면서 운전에만 신경을 쓰느라 미리 주유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었다. 그때는 이 연료로 몇 킬로미터를 더 달릴 수 있는지 그런 것까지 계량기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불안감에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금방이라도 차가 길 위에서 서 버릴 것 같았다. 그때는 긴급출동 서비스도 없었다 (어쩌면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건지도 모른다. )
나는 차가 도로 위에서 달리다가 갑자기 서 버리는 건지 아니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푸식하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서는 건지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니 불안감은 더 고조되었다. 이러다가 도로 한복판에 차가 서 버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동생들은 패닉 상태였다. 사실 운전자인 나도 거의 패닉 상태였다. 차는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고 나와 동생들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때 도로에 SOS라고 쓰여 있는 전화기가 보였다. 나는 그 근처에 가서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SOS전화기를 들고 발신을 누르니 어딘가로 전화가 연결되었다.
" 차에 기름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거의 울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남자는 아주 침착한 목소리였다.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곳에서 조금만 더 오면 휴게소가 있으니 와서 주유를 하라고 했다. 차가 심하게 막힌다고 했더니 고속도로 갓길로 비상등을 켜고 오라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근처 휴게소에 가서 기름을 넣으라니. 그럴 거면 굳이 SOS라는 게 왜 필요한가. 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SOS로 전화를 하면 사태를 해결해 줄 줄 알았는데 별 볼일 없는 솔루션을 제공받아서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고속도로 갓길을 달렸다. 정말로 5킬로미터 정도 달리니 오른쪽에 고속도로 휴게소가 나왔다. 그런데 휴게소 입구에서 경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경찰의 수신호에 따라 차를 오른쪽으로 붙였다. 그는 차 안에 있는 우리를 보더니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차에는 패닉 상태의 여자 4명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간절하게 경찰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이 나간 목소리로
" 길을 잃었다가 찾았는데 이제 기름이 떨어졌어요. SOS를 쳤더니 비상등을 켜고 달리라고 해서 왔어요. " 하고 주절주절 변명을 했다. 차 안에 타고 있는 2번, 3번 4번도 거의 넋이 나간 눈으로 경찰을 바라보았다. 경찰은 알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보내 주었고 우리는 차에 기름을 터질 듯이 넣었다.
결국 남자 친구가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왔다. 나는 심리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만큼 남자 친구가 멋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남자 친구가 나타나자마자 나는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울어 버렸다. 내 동생들은 남자 친구의 등장에 열렬히 환호했다. 다시는 1번 언니가 운전하는 차는 타지 않겠다고 뒤에서 뭐라고 뭐라고 떠들어댔다.
그 여행 얼마 후에 고속도로 갓길 범칙금 통지서가 날아왔다. 7만 원짜리였다. 우리 여행 전체 경비와 맞먹는 돈이었다. 속이 쓰렸지만 세상사를 제대로 배운 수업료였다.
그러나 저러나 위기 상황에서 감히 나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2번을 어떻게 처단해야 할 것인가. 나는 2번에 대한 응징을 다각도로 고민했지만 아량을 베풀기로 하고 2번을 용서해 주었다. 2번은 나의 관대함에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동생들은 그 후로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행을 가자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의 운전실력이 일취월장하였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언젠가 같이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나의 현란한 운전 실력과 부드러운 핸들링을 선보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