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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21. 2020

농담 같지 않은 농담

나는 아직도 위로가 필요하다

 아버지는 농담을 하곤 했다. "나는 딸이 세명인지 네 명인지 자꾸 헷갈립니다" 나는 그 농담이 싫었다. 아버지는 정말로 딸이 세명인지 네 명인지 헷갈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버지에게는 우리가 세명이든 네 명이든 혹은 다섯 명이든 별로 상관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췌장암을 앓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장례를 치르러 떠났다. 아버지는 바깥에서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을 잠그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새벽에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나와 어린 동생들은 무서웠다. 나는 친구 정민이를 자러 오라고 했다. 정민이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저 잘 그리는 정도가 아니라 대학생이나 어른이 그린 것처럼 그림을 그렸다. 정민이는 아빠가 없었다. 그래서 정민이가 더 그림을 어른처럼 잘 그렸는지도 모른다. 정민이가 집에 왔지만 어둠이 깔리자 무서웠다. 나는 대문을 잠그고 부엌문도 걸어 잠갔다.  아버지가 새벽에 온다면 그 소리를 듣고 깨리라 생각했다.


밤새 꿈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은 문을 흔들어 대고 금방이라도 부서뜨릴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문은 정말로 부서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는 화가 난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새벽에 돌아왔던 것이다 아버지는 나의 뺨을 때렸다. 나는 아파서 우는 건지 아버지 얼굴이 무서워서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뺨은 견딜 수 없이 아팠고 나는 서러웠다. 그때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울음은 목구멍이 아니라 더 깊숙한 곳에서 나오고 있어서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나는 웅크린 채로 이상한 병에 걸린 사람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정민이는 아침 일찍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정민이가 "나는 아빠가 없어서 다행이다. "라고 했는지 "나는 무서운 아빠가 없어서 다행이다"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정민이한테 그런 말을 들어서 슬펐다.


아버지는 왜 그런 농담을 했을까? 나는 아버지의 그런 농담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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