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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21. 2020

엄마 없이 소풍 가던 날

나는 아직도 위로가 필요하다

  입학할 때는 할아버지가 따라왔다. 엄마는 몸이 불편했다. 교실에서 뒤를 돌아보면 할아버지가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뒤를 보며 엄마 얼굴을 찾을 때 나는 할아버지 얼굴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평생 미장이 일을 하였다. 할아버지는 베이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할아버지 점퍼는 남루했고 얼굴은 늙어 보였다. 학교에 할아버지가 오는 게 싫었다.


  학교를 데려다주던 할아버지가 소풍까지 따라오는 게 싫어서 나는 울었다. 엄마는 걷기도 힘들 만큼 몸이 불편했다.  엄마는 골목 끝집에 사는 종섭이 엄마에게 나를 부탁했다. 종섭이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 종섭이는 키가 작고 얼굴이 새까맸다. 나는 그 아이하고 친하지 않았지만 소풍 가던 날은 일부러 친한 척했다. 종섭이 엄마는 착한 사람이었다. 나는 김밥과 이름 모를 과자들을 많이 먹었다. 종섭이 엄마는 자꾸만 나에게 더 먹으라고 했다. 그런 특별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결국 나는 배탈이 나고 말았다.


 나는 나보다 높게 자란 풀밭으로 들어가서 똥을 눴다. 풀밭에서 똥을 누면 뱀이 엉덩이를 문다고 그랬다. 나는 뱀이 엉덩이를 물까 봐 겁이 났다. 그리고 뱀이 엉덩이를 문다면 종섭이 엄마에게 엉덩이를 보여 줘야 할 것이다. 어쩌면 종섭이에게도 보여줘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겁이 나서 잔뜩 움츠리고 똥을 눴다. 똥을 누고 나오니 나는 어쩐지 부끄러웠다. 너무 많이 먹은 것도 부끄럽고 밖에서 몰래 똥을 눈 것도 부끄러웠다.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햇빛이 유난히 좋았다. 나는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집 근처에 왔을 때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 꽃무늬 몸빼는 온통 흙투성이었는데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철퍼덕 앉아서 울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꾸만 "아이고, 아이고"하는 소리를 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할머니를 쳐다보는데도 할머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죽었나보다 생각했다.  나는 무서워서 마구 뛰었다.


 그러나 엄마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뒷방에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할머니를 대성통곡하게 만든 것은 아기였다. 아기는 포대기에 싸인채 누워 있었다. 아기는 이 비극적인 상황에 어울리지 않았다. 아기는 작고 눈이 예뻤다.


엄마는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맥이 풀려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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