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리게 걷기 Aug 21. 2020

선생님은 과일을 좋아했다

나는 아직도 위로가 필요하다


  

   그 아이가 교실로 들어올 때 아이는 선생님만큼이나 키가 커 보였다. 아이는 얼굴이 검붉었고 눈이 매서웠다. 짧게 자른 머리는 약간 곱슬머리였다. 우리는 모두 9살이었는데 그 아이는 11살이었다. 어떻게 11살이 2학년으로 전학을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아이는 그렇게 우리 교실에 천연덕스럽게 들어왔다.

 

 그 아이는 수줍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하는 눈빛으로 교실을 둘러보면서 웃어 보이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 아이 자리는 내 옆자리였다. 나는 제일 뒤에 앉아 있었고 짝이 없었기 때문에 그 아이가 내 옆에 앉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아이는 화가 나면 욕을 했다. 나는 9살이 되기까지 그런 욕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게 그 아이가 하는 욕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실룩이는 입모양을 보면 심한 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종종 나를 때리곤 했다. 뭔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내 머리를 툭툭 치고 팔꿈치로 심하게 나를 밀어서 넘어지게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겨우 9살이었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은 배웠지만 힘세고 폭력적인 친구와 싸우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유일한 희망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아주 날씬했다. 선생님은 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원피스는 부드럽게 선생님을 따라 움직였고 좋은 냄새가 났다. 선생님이 예쁘고 날씬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날도 그 아이는 나한테 화를 내다가 내 책을 북 찢었다. 내 눈앞에서 두꺼운 책이 접힌 채로 찢어지는 모습을 보니 나는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고 선생님을 큰 소리로 불렀다.

내 책상에는 심하게 구겨지고 찢어진 책이 놓여 있었다. 모든 상황은 나에게 유리했다. 선생님은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동요하지 않은 우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너희 둘 다 똑같다. 교실 뒤로 가서 손을 들고 서 있어라"

 

 그래서 나는 교실 뒤에서 벌을 섰다. 나는 선생님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일이 이렇게 돼 버린 걸까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예쁜 선생님이 내 억울함에 관심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며칠이 지난  점심시간이었다. 한 아주머니가 교실 밖 복도에 서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허리에 복대를 차고 과일이 가득 든 나무박스 같은 걸 들고 있었다. 교문밖에서 시장으로 이어지는 난전에서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선생님을 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우아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말 중간에 전학 온 아이 이름이 간간히 들렸다. 그 녀석은 그 착해 보이는 아줌마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내 모든 것을 알아 버렸다. 선생님은 과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없이 소풍 가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