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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Aug 22. 2020

그녀의 이름은 홍갑순

나는 아직도 위로가 필요하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왁자하게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소란해진다. 2교시는 수학이다. 나의 목구멍은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딸꾹질이 시작된다. 딸꾹질은 정확한 간격을 두고 일정하게 반복되었다. 1년 내내 계속된 나의 딸꾹질은 홍갑순 때문이었다.

 

   홍갑순은 수학선생님이었다. 그녀는 교실에 들어와서 칠판에 큰 글씨로 '홍갑순'이라는 이름을 썼다. 아이들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그녀의 이름은 신파조 영화에 나올법한 이름이 아닌가.

그러나 그녀의 이어지는 말에 아이들은 웃음을 거뒀다. "나는 한 놈만 잡는다. 죽도록 맞기 싫으면 수업시간에 똑바로 해라"

 그녀는 주말부부였다. 짧은 파마머리에 두꺼운 안경테, 고집스럽게 앙다물고 있는 두꺼운 입술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남편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그녀가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예감했다. 그리고 누군가 죽도록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왜 나쁜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는 걸까?


   그 날 교실은 조용했다. 아이들은 다들 칠판에 적힌 수학공식을 얌전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칠판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옆 자리 친구의 노트를 흘끔거리면서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한마디가 들렸다.

 "야, 너 나와"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교실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엎드려뻗쳐를 하라고 했다. 주먹을 쥔 채로 마룻바닥에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으면 책상에 앉아 있는 아이들과 눈높이가 비슷하다. 수많은 눈이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당황한 티를 내지 않았다. 누구나 엎드려뻗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놀라운 사건도 아니라고 나는 놀란 마음을 애써 달랬다.

 

  엄청난 타격감을 자랑하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그녀는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는 나의 엉덩이에 매질을 시작했다. 한대 , 두대, 세대, 그러나 매질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몇 대를 때릴 거라거나 무엇을 잘못해서 때리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매가 5대에서 끝날 것인가 설마 10대나 때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매는 10대를 훌쩍 지나고 있었다. 나의 뇌는 판단의 기능을 상실했다. 나는 이미 교실에 있지 않았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모래사막에 있었다. 나는 일어날 수 없었다. 나의 얼굴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뜨거운 것이 쉼없이 흘렀다. .

  나는 이제까지 매를 맞은 적이 거의 없었으며 또한 이렇게 많은 매를 맞은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발작적인 매는 70대를 훌쩍 넘기고야 끝이 났다.

  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엉덩이에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그저 종이 울려서 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끝나기를 애타게 기도했다.


 결국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기적처럼 종은 울렸고 홍갑순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교실을 나갔다. 나는 아무에게도 그 날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의 딸꾹질은 시작되었다. 나는 학년이 바뀔 때까지 1년 동안 수학 시간마다 고통스러운  딸꾹질을 했다. 홍갑순은 수업시간에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1년 동안 나는 홍갑순과 한 번도 눈이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홍갑순은 나한테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학년이 바뀌기 며칠 전 복도에서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네가 공부를 잘한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때리지 않았을 거다"

그 말이 칭찬인지 후회인지 사과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의 딸꾹질은 학년이 바뀐 후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나는 딸꾹질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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