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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04. 2020

야유회 습격 사건

  고등학생이 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아이들은 너 나할 것 없이 단과학원을 등록했다. 나와 친구 몇몇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영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영어 선생님은 얼굴이 시커멓고 키가 작았다. 목소리는 허스키한 수준을 넘어 목이 쉬어 버린 사람처럼 걸걸한 소리를 냈다. 워낙 골초였기 때문에 줄담배가 그의 목청을 망쳐놓은 거라고 우리는 짐작했다. 그는 대구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지명 수배되어 시골로 숨어든 거물급 인사였다. 그는 학원 선생님 같지 않았다. 머리도 잘 안 감는 것 같고 옷도 후줄근했다. 건물 맨 위층에 있는 방에서 숙식을 해결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어딘가 고독하면서 낭만적인 면이 있다고 수군댔다.  


   그런데 이 젊은 영어 선생님은 운동권 학생답게 꽤나 다혈질이었고 학원 원장과 자주 충돌하더니 결국 학원을 박차고 나갔다. 이전까지 그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을 보지 못했던 우리들은 언제 또 이런 선생님을 만나겠냐며 그를 따라 우르르 학원을 나왔다. 처음에 그는 제대로 된 건물을 구하지 못해서 우리를 임시로 비어 있는 사무실로 불렀다. 거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사무실이었고 우리는 거기에서 돗자리를 여러 장 깔아 놓고 수업을 들었다.


 그 고생을 하다가 선생님은 곧 임대료가 싼 건물을 구해서 학원을 오픈했다. 그리고 학원이 제법 자리를 잡았을 때 그는 우리에게 주말 야유회를 제안했다. 우리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의리를 지켜준 우리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겠거니 짐작했지만 사실 그의 일상도 지나치게 무료했으니 아마 그렇게라도 콧바람을 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야유회라니! 우리는 모두 흥분했다. 당시에는 웬만해서는 여행이나 야유회를 가는 일이 없었다. 먹고살기 바쁜 부모들은 자식의 여가 시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장소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계곡으로 정하고 우리는 자전거로 이동하기로 했다. 각자 먹을 간식과 물을 배낭에 넣고 우리는 출발했다. 도로가 좁아서 큰 차가 지나갈 때는 조심해서 길가로 비키면서 우리는 이동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자전거로 통학을 했기 때문에 다들 자전거 선수였다. 도로에 일렬로 늘어져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란 최고였다. 그 날 따라 하늘은 더 파랗고 구름은 뭉실뭉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까지 상쾌했다. 우리는 계곡 근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놀 준비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텐트를 치고 우리는 그 앞에서 밥을 해 먹기로 했다. 밖에서 밥을 해 먹어 본 적이 없었던 우리는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텐트 안에는 하은이가 누워서 뒹굴거리며 실없이 헤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계곡에 검은 세단 한 대가 느린 속도로 올라오고  몇몇 남자들이 내렸다. 우리는 무슨 구경거리가 생겼나 그쪽을 주시했다. 그런데 검은 세단에서 내린 남자들은 다름 아닌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3학년 1반 담임, 체육 선생님, 학생 주임까지 모두 셋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망설임 없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가만히 보니 선생님들은 옷도 신경 써서 입고 온 모양이다. 사람은 옷발이라더니 평소 후줄근한 티셔츠만 입고 다니던 학생주임도 옷을 갖춰 입으니 딴 사람이다. 얼핏 보면 무슨 영화에 나오는 첩보원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말쑥하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우리가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선생님들은 현장을 덮쳤다. 현장이라고 해 봐야 우리가 벌여놓은 텐트와 그 앞에 살림살이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선생님들은 우리가 끓이고 있던 냄비 뚜껑을 열어 보고 텐트 안을 들여다 보고 그리고 우리 가방을 뒤졌다. 그들은 가방 안에서 짱구, 환타, 삶은 계란 등을 발견했다. 그들은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였다.


  선생님들은 고민하는 눈치더니  영어 선생님을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영어 선생님은 그 날 따라 파란색 츄리닝을 위아래로 입고 있었는데 행색이 영락없는 동네 백수였다. 학교 선생님들이 옷을 쫙 빼입고 온 바람에 영어 선생님은 더 추레해 보였다. 멀리서 보고 있는데 뭔가 마음이 짠했다. 그들은 한참 얘기를 하는데 큰 소리도 오고 가는 것 같다. 우리는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한편 재미있기도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선생님들은 어떻게 알고 여기를 온 거야? 우리는 흥미진진한 상황을 관망했다. 잠시 후 검은 세단은 별 소득 없이 철수했다. 영어 선생님은 오늘은 더 이상 놀 수 없으니 짐을 정리하라고 했다. 우리는 세단도 돌아갔으니 조금만 놀다 가자고 난리를 쳤지만 선생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짐을 정리했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보글보글 막 끓기 시작한 찌개에 숟가락도 넣어보지 못하고 산을 내려왔다.


  다음날 학교에서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바로 어제 산에서 검거되었던 다섯 명의 이름이 차례로 호명되고 학생 주임실로 오라는 거였다. 우리는 복도에서 마주치고 서로 킬킬거렸다. 왜냐면 평소에는 교복 상의에 체육복을 입는 식으로 엉망이던 우리의 몰골이 오늘은 다들 단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오늘은 특별히 단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옷발은 중요하니까.


 우리는 쭈뼛거리며 학생주임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의 질문은 꽤나 오래 계속되었다. 그런데 질문은 빙빙 돌다가 끝에는 결국 텐트로 종결되었다. 텐트는 누구 거냐? 텐트를 가져가자고 처음 얘기한 사람이 누구냐? 텐트를 설치한 사람은 누구냐? 텐트에서 뭘 했냐? 질문은 그런 식이었다. 취조가 진행되면서 그제야 우리는 선생님들이 무엇을 상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삼류 영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을 상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는 정의감에 불타서 주말에 쉬지도 않고 산을 올라온 것이란 말인가?

 

 취조가 진행되어도 우리의 대답은 미지근했고 결국 선생님들은 성과가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는 학교 밖에서 보호자 없이 단독 행동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쓰고 풀려났다. 우리는 영어 선생님 인솔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는데 학교는 얼굴이 검고 목소리가 심하게 걸걸대는 영어 선생님을 보호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우리는 영어 선생님한테 뭔가 미안했다. 정장 차림의 공립학교 선생님 앞에 서 있던  영어 선생님은 심하게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선생님 얼굴이 시커멓고 못생겨서 더 오해에 시달린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우리는 혹시 그가 상처를 받은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수업을 하려고 강의실로 들어온 영어 선생님은 시커먼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쓰더니 이렇게 말했다.

"왜 그렇게 텐트에 집착하는 거야? 텐트가 도대체 뭐에 쓰는 물건이라고 저러는 거야? 참 나"

우리는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다. 텐트의 정의를 찾아보면  '바람을 피하고 들어가서 쉴 곳을 제공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텐트는 들어가서 쉬라고 만든 건데 그때 우리를  쫓아와서 검거에 열을 올리던 선생님들도 이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렇게 우리의 야유회는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그 후로 다시는 야유회를 가보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야유회였다.  


사진출처: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4/07/104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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