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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11. 2020

라이킷이 뭔가요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라이킷했습니다'라는 알람이었다. 나는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서 라이킷을 찾았다. 라이킷은 Like it이었다. 손가락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영어를 전공했다. 어디 가서 재미있는 얘기라고 꺼내놓지도 못하겠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라이킷을 받고 오랫동안 그 알람을 바라봤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요일인데 사무실에 갔다.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진심이었겠지만 가끔은 진심도 못 견디게 아플 때가 있다. 엄마는 끝에서 거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손자의 성적과 재테크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 작정을 한 듯했다. 왜 너는 헛똑똑이냐로 엄마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나는 엄마와 그런 문제를 상의할 기분 아니었다. 이미 며칠 전 실기학원에서 아들의 심각한 현실을 충분히 들은 상태였고 재테크에 관심과 재주가 없는 것은 타고난 것이라 체념하고 있는 터였다. 주변 동료들이 유튜브로 부자들의 공통점이나 부자가 되기 위한 추천서를 구독하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읽는 편이었다. 어차피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나는 내심 태연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것이 태평스럽게 보인 모양이다. 엄마는 당장 서울로 올라와서 담판이라도 짓겠다는 듯이 집요하게 나를 몰아붙였다. 결국 백기를 든 것은 나였다. 나는 나이 들고 나서 엄마 앞에서 울어본 기억이 없었는데 이 날은 잊기 힘들 만큼 흉한 몰골로 엉엉 소리를 내서 울고 말았다. 엄마의 진심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내가 내 인생을 왜 설명해야 하는지 막막하고 힘들었다. 나는 지금 충분히 괜찮은데 자꾸만 상대방이 너는 괜찮지 않다고 하고 있으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나이 많은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에게 ADHD 때문에 힘들어하던 아이가 이제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걸 찾아가고 있다는 걸 이해시킬 수 없었다.


  펑펑 울고 났더니 가슴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인터넷을 뒤지고 연예기사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쓴 '브런치 작가로 사는 법'이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간절하게 들었다. 나는 작가 신청을 눌렀다.  초등학교 이후로 글이란 걸 써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대학교 때 소설 작법인가 하는 수업을 들으면서 소설을 써 본 적은 있었다. 하룻밤을 같이 한 남자한테 버림받고 빈 방에 앉아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상투적으로 풀었는데 교수님한테 꽤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강원도로 캠핑을 갔다. 예정되어 있던 여행이지만 여행 갈 기분이 아니었는데 이런 기분으로도 여행을 갈 수 있구나 싶었다. 텐트를 치고 타프를 치고 나니까 다른 사이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은 가족이 다 같이 캠핑을 온 모양이다.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여자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저런 레이스 두건을 두르고 있다니 덥지도 않은가 했는데 샤워장에서 만난 그녀는 머리카락이 없었다. 어디가 많이 아픈 걸까 갑자기 그녀에게 마음이 쓰인다.


 사람들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지만 다들 그만큼의 무게를 지고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조금 가벼워지면 어깨를 쭉 펴고 하늘을 보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거겠지. 살아보니 세상은 마냥 재밌기만 한 것도 마냥 숨 막히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올 때는 온통 너덜너덜해진 지옥 같은 마음으로 여행 가는 내가 한심했는데 그래도 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 다. 하늘에는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별들이 다 나와서 어지럽게 빛난다.


다들 잠든 늦은 시간에 메일함에는 낯선 메일이 와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메일이다. 나는 가슴이 설레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글을 써보려고 마음먹었다.


어떤 글이 나에게서 나올지 두근거린다. 내가 내 삶에 실망하지 않은 것처럼 내 글에도 실망하지 않고 조금씩 써보고 싶다.


 나는 눈을 꾹꾹 밟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하얗게 내린 눈 위를 꾹꾹 밟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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