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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11. 2020

부동산 때문에 쪼끔 슬픕니다


내가 경제에 동물적 감각이 없다는 건 인정한다.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지 못한 기회가  나에게 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에게 너그럽고 본인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이니까.


 시작은 뜻하지 않게 시작되었다. 나는 서울 중심에 있는 역세권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었다.  전세 만기가 되어서 근처 부동산을 찾았다. 부동산 사장은 50대의 활기가 넘치는 여자였다. 그녀는 나에게 집 근처에 있던 빌라 매매를 권했다. 그녀의 설명으로는 그 빌라는 10평도 되지 않는 작은 평수지만 이 주변이 곧 재개발될 것이고 그러면 몇 년 후에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추가분담금을 내야 하겠지만 시간은 충분하니 재개발될 때까지 차근히 모은 돈으로 추가금을 내고 입주하면 여러 모로 유리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미가 당기는 것은 개발 후에 아파트가 생기면 아파트 안에 초등학교가 생길 거라는 거였다.


 그녀의 말은 꽤 설득력 있게 들렸다. 게다가 지금 주변 빌라는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초조했. 그 빌라는 겨우 10평이었지만 4억이 넘었다.  자금이 부족해서 은행에 꽤 큰 금액의 대출을 냈다. 그리고 빌라 내부를 구경하지도 못하고 (그녀는 어차피 내부는 볼 필요도 없다고 했다) 덜컥 계약을 했다. 남편은 잘 생각해 보라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미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였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는 낌새를 챈 것은 계약 날이었다. 내가 구입한 빌라는 3층짜리 건물이고 층마다 한 세대가 사는 구조였는데 집주인은 모든 세대를 팔려고 내놓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계약할 때 그는 직접 오지 않고 일처리 할 사람을 대신 보냈는데 그는  뭔가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그때 불안감을 느꼈지만 불안해서 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서울 중심에 있는 빌라 소유자가 되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재개발도 취소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몰랐다. 아마 대부분 모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하여간 나는 세상 물정에 어둡고 가끔은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하다. 그곳은 재개발계획이 취소되고 신축 건물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끔 부동산에 전화하면 시세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무책임한 대답을 들었다.


 결국 나는 10년 만에 그 빌라를 팔았다. 10년간 은행 이자를 6천만 원 정도 냈고 4억에 샀던 빌라는 2억에 팔았다.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실까 하다가 작은 것부터 아껴야 한다고 그냥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모은 돈이었다. 세상을 몰라도 어쩌면 이렇게 모를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고 그 부동산으로 나를 이끌었던 두 다리와 아무것도 모르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나의 무모함이 원망스러웠다.


 그 타격을 극복하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살면서 한번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걸 털어버리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엄마의 전화다. 엄마는 너는 나이가 몇인데 전세로 돌아다니냐고 잔소리를 한다. 동생들이 오피스텔을 사서 어떻게 불로소득을 얻고 있는지 그리고 아파트를 사서 얼마나 차익을 얻었는지 설명을 한다. 어쩌다 보니 동생들은 강남에 집을 샀고 덕분에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동생들이 외제차를 타기 시작하고 돈 씀씀이가 커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내가 초라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엄마와 전화를 하고 나면 꼭 나는 잘못을 저지르고 기죽어 지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사실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나였다. 나의 바보 같은 세상살이에 한심해서 쓴웃음이 나지만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아직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갖고 싶어 하던 피아노를 샀을 때 나는 미칠 듯이 흥분하고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갖고 싶은 걸 가졌을 때 느끼는 행복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렇게 간절했던 것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

 

 가끔 부동산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나는 풀이 죽는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나 자신에게 설명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나답게 살 것이다.  




사진출처: http://www.ddnews.io/news/articleView.html?idxno=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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