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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13. 2020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반역죄로 수용소에 투옥되어 십 년 형을 언도받고 이제 팔 년째 형기를 살고 있다. 그가 투옥되어 있는 감옥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낡고 커다란 건물이다. 창 밖으로는 이 센티미터가 넘는 얼음이 두껍게 유리창 위로 얼어 있고 천장에는 성에가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걸려 있다. 온기라고는 없는 침대에서 슈호프는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

 

 슈호프는 어딘가 몸이 불편해서 밤새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는 밤새 오한에 시달리고 뼈가 부딪히는 고통을 느끼며 아침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여느 때처럼 날은 밝았다. 슈호프는 하루라도 노역을 쉬고 싶었지만 그 날 노역에서 제외될 환자 지정은 이미 끝난 후였다. 그중에는 꾀를 부려서 겨우 노역을 면한 죄수도 있지만 슈호프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결국 슈호프는 노역을 나가게 된다. 그 날 중요한 관건은 사회주의 생활 단지로 가느냐 가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나가게 되면 아무것도 없는 영하 사십 도의 허허벌판에서 종일 괭이질을 해야 한다. 혀까지 꽁꽁 얼어 버려서 하루 종일 말없이 괭이질로 몸에 열을 나게 해야 하는 최악의 작업 현장이다. 그 일을 배정받지 않기 위해서 반장인 추린은 노련하게 상황을 조율하고 슈호프네 반은 건설 작업 현장으로 배치된다.

 

   슈호프는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내 아픈 몸을 추스르고 일 할 준비를 시작한다. 그는 대충 시간을 때우는 것으로 일 하는 시늉을 내는 타입이 아니다. 간수들이 설렁설렁 일 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겠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슈호프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기술자다.


 슈호프는 조심스럽게 일을 시작한다. 모르타르는 차가운 날씨 때문에 금세 굳어 버린다. 적당히 이겨진 모르타르가 굳어 버리기 전에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슈호프는 벽돌 위에 모르타르를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재빠르게 벽돌을 올린다. 이때 모르타르가 너무 두껍게 발라지면 안 되기 때문에 슈호프는 신경을 온통 작업에 열중한다. 슈호프는 벽돌을 올리고 벽돌이 좌우 균형이 맞는지 그리고 앞 쪽으로 밀리지 않았는지 여러 차례 확인을 하며 작업을 계속한다.  작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린 후에도 슈호프는 쉽게 작업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아직 모르타르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한 후에야 작업 현장을 나간다. 이때에도 그는 자기의 작업이 잘 되었는지 몇 번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반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이제 인원점검이 남아 있다. 하루 종일 영하 사십 도가 넘는 맹추위에서 벌벌 떨며 일을 끝낸 죄수들은 한시 바삐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러나 인원점검은 몇 번이나 계속되는데도 쉽게 끝나지 않았다. 결국 한 명이 빈다는 것을 경호대장이 발견하고 수색을 시작했다. 탈주범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죄수들 사이에는 동요가 발생한다. 경호대가 작업장에서 잠들어 있는 몰디비아인을 발견하고 끌고 오면서 소동은 끝난다. 밖에서 몇 시간동안 몸이 꽁꽁 얼어버린 죄수들은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다. 몰디비아인에게 야유를 보내고 온갖 욕을 하지만 쉽사리 화는 가라앉지 않는다.


 작업이 끝난 후 숙소로 가게 되면 그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죄수들의  것이었던 것이다. 죄수들은 저녁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멀건 양배추 죽이지만- 목욕을 하고 소포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어둠이 몰려올 때까지 계속되었던 노역이 끝나고 이제 자신만의 시간을 고대하던 죄수들은 그 귀한 시간을 강탈당했고 그 시간이 오기를 고대했던 만큼 아깝게 허비한 시간에 약이 오른다.


 결국 인원점검이 끝나고 죄수들은 줄을 지어 숙소로 이동한다. 이미 늦어 버린 마당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어버린 죄수들은 느릿느릿 걸어간다. 빨리 죄수를 집어넣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음이 급한 경호병들에게 복수하려는 목적도 있다. 경호대장이 빨리 움직이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죄수들은 빠르게 움직일 마음이 전혀 없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너희들도 고생 좀 해 봐라 하는 심보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다른 출입구에서 오고 있는 종대가 거무스름하게 나타났다. 이 쪽 종대가 꼴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양쪽 종대 간에는 숨 막히는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 하는 것은 생사가 걸렸다고 할 만큼 중차대한 문제다. 죄수들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하고 슈호프가 속한 종대는 먼저 도착했다. 경호대장은 간격을 맞춰서 이동하라고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지만 죄수들은 개소리하지 말라는 심정이다. 인원 점검 때문에 밖에서 벌벌 떨면서 이를 갈며 분했던 심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몸도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으로 슈호프는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 때보다 길고 아슬아슬했던 하루가 지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저녁은 평소처럼 멀건 양배추 죽이었지만 감자는 달큼하고 양배추 덩어리도 제법 크다. 슈호프는 소포 줄을 서 준 덕분에 죽 한 그릇을 더 얻어먹고 소시지까지 얻어먹었다. 그는 멀건 죽이라도 그냥 후루룩 마시는 법이 없다. 그는 장화에 숨겨놓은 숟가락을 꺼내서 죽 안에 든 건더기를 휘저어서 양을 가늠해 본다. 그다음에는 죽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긇어 먹기 시작해서 국물부터 먼저 먹는다. 마지막에 건더기가 남으면 천천히 씹어서 건더기의 단 맛을 음미하고 바닥에 남은 국물은 딱딱한 빵으로 긁어서 깨끗이 먹어 치운다.


 슈호프가 식사를 하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중간에 부반장이 죽 두 그릇을 내밀 때 순간적으로 두 그릇을 자기에게 주는 것으로 기대하고 그는 숨이 막힐 듯 기뻐한다. 물론 한 그릇은 다른 죄수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 날은 아침부터 몸이 아프고 한기가 있었지만 꽤 운이 좋은 하루였다.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나가지 않았고 죽 한 그릇을 더 얻어먹었고 작업장에서 가느다란 줄칼을 주웠다. 또 그가 산 잎담배는 얼마나 향이 좋고 품질이 좋은 것이었던가. 그 날은 슈호프의 3633일의 형기 중 하루였다. 그는 이 정도면 얼마든지 감옥살이를 견뎌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드는 순간까지 슈호프는 하루를 대충 때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반장을 깍듯이 대접했고 부반장에게도 상관을 대하듯이 행동했다. 중간에 형기가 얼마나 남았냐고 묻는 죄수의 질문에는 당황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것은 그보다 형기가 많이 남은 죄수에게 실례가 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슈호프의 옷차림은 우스꽝스럽다. 그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옷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몇 겹이나 껴 입고 낡은 펠트 장화를 신고 있다. 그 펠트장화에는 죽을 먹을 때 사용하는 숟가락이 숨겨져 있다. 그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환경을 보장받지 못했고 형기가 끝난다 하더라도 사소한 이유로 형기가 추가될 수 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도 불확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슈호프의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죽 한 그릇에 분노하고 기뻐하지만 또한 그렇게 짓밟힌다고 해서 쉽게 삶을 포기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수용소 생활을 묵묵하게 해 내고 있는 한 인간에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다. 절망적인 순간이 왔을 때 과연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존엄함을 지킬 수 있을 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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