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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14. 2020

의미 없는 말들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버스가 오지 않는다. 나는 아예 차에 들어가서 편하게 기다릴 작정을 한다.


   아빠는 3개월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온다. 종합병원에서 부정맥 약을 정기적으로 받아 가기 위해서이다. 그때마다 나는 휴가를 내고 이렇게 터미널에서 아빠를 기다린다. 아빠는 항상 버스 제일 앞 좌석에 앉아 있다가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부터 분주하게 내릴 채비를 한다. 서울에 오려고 이발을 하고 면도도 말끔하게 한 얼굴이다.  깔끔한 노신사 같은 차림의 아빠는 서울에서도 기가 죽지 않을 만큼 웬만큼 세련되어 보인다. 그러나 일어나서 걸을 때 보면 등이 굽어 있어서 예전처럼 꼿꼿하게 걷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기다려야 한다. 몇 달 전에 예약을 해 놓았지만 워낙 응급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짧게는 30분에서 2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다.


"아침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올 때 차 많이 안 막혔어요?"

"날씨가 꽤 쌀쌀해지지 않았어요?"

"요즘 몸은 어떠세요?"


 그렇다. 그쯤 되면 대화 소재가 고갈된다. 날씨와 교통상황과 몸 상태를 묻고 나면 화젯거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 아까 화제를 이용해서 힙겹게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아침식사 한지 오래되었는데 배 안 고프세요?"

"갈 때 금요일이라 차가 많이 막히겠어요"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오지 그러셨어요?"


 그러고 나면 이제 막막한 순간이 온다. 이제 우리 둘은 침묵 속에서 순서가 오기를 기다린다. 가끔 운이 좋아서 빈자리가 없으면 아빠와 나는 저만큼 떨어져 앉는다. 그러면 아빠는 자기 순서가 어디까지 왔는지 진료 번호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는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아빠가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휴가를 낼 수 있을지 병원 주차장에 여유 공간이 있을지 그 걱정보다 아빠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것이 제일 걱정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나와 아빠 사이에는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없다. 가벼운 이야기도 무거운 이야기도 우리 사이에 내려앉지 못하고 그저 헛돌다 사라져 버린다.

 


   동생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동생은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지 못했는데 그 날은 나를 뒤에 태우고 제법 속도를 냈다. 나는 뒤에서 동생 허리를 붙잡고 비틀거리는 자전거 위에서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생은 균형을 잃고 길에 푹 처박혔는데 하필이면 쓰레기 같은 게 쌓여 있는 곳이었다. 나는 정강이를 날카로운 것에 찔렸다. 정강이에서는 피가 나기 시작했고 피가 다리 아래로 흘러내렸다.


 큰 골목으로 들어가서 파란 대문 집을 지나면 그 옆이 우리 집이다. '피가 이렇게 계속 나면 사람이 죽는 건가 ' 아이다운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겁에 질렸다. 그런데 엄마가 없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마루로 나온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는 화가 나 있었다. 달게 자고 있던 오후의 단잠을 우리가 깨웠기 때문이다. 아빠의 화내는 소리를 우리는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아빠가 나를 치료하거나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이 없다는 것만은 이해했다.


  할 수 없이 꽤 멀리 떨어진 할머니 집으로 가야 했다.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다리에는 여전히 피가 흐르는 채였다. 학교 앞을 지나 잡화상을 지나 큰 도로까지 나왔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두려움에 질린 상태여서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지혈하고 붕대를 감으니 피는 멈췄다.


   날씨가 특별히 좋았던 것인지 나의 기억력이 비상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날 기억이 유난히 선명하다. 이제 흐릿해질 때도 되었는데 나는 구두를 파는 상점과 시계방 옆으로 이어지는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지나갔는지 나의 기분은 어땠는지를 다 기억하고 있다.  


가끔은 쓸데없는 기억이 떠나지 않고 내 안에 어딘가에 끈적하게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쓸데없는 기억과 슬픔은 좀 희미해져도 될 텐데 쉽게 희미해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나는 거짓말처럼 가끔 그 길에 서 있다.  


 아빠는 늙고 등이 굽고 살이 많이 빠졌다. 예전처럼 빠르게 걷지 못하고 이제 자주 화를 내지도 못한다. 내가 아빠 앞에서 하는 말에 진심은 몇 그램이나 담겨 있을까? 때론 말에 진심을 담는다는 것은 우주를 얻는 만큼이나 어렵다. 아직도 딱지가 채 마르지 않은 것인지 조심스럽게 나의 상처를 들쳐본다.  

 

 아빠와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는 무성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움직이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시간 속에 우리가 주고받은 말은 한마디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40년이 지난 지금 아빠와의 대화를 찾지 못해서 허둥대고 있단 말인가. 그냥 의미 없이 던지는 실없는 말들이 사실은 두 사람의 친밀함을 증명하는 언어였다. 오늘도 나는 친밀함을 찾기가 어려워서 미리 마음속으로 할 말을 생각해 내고 있다. 오늘도 허둥대고 어색한 순간이 찾아 올 것이다.

.



 아빠가 탄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아직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지 않았는데도 아빠는 일어나서 내릴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 아빠는 곧 내릴 것이다. 눈이 부시게 날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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