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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14. 2020

친절하지 않은 그녀와의 동거

  취업에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이제 현실적인 문제들이 남았다.


  발령지는 충남에 있는 청양이라는 작은 소도시였다. 일단 있을 곳을 알아봐야 했다. 총무과로 전화를 해서 주변에 마땅한 숙소가 있냐고 물었더니 전화를 받는 직원은 귀찮다는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아직 근무지로 오지도 않았는데 꼬치꼬치 물어보냐는 식이다. 일단 와서 여관에서 하루 자고 회사로 오면 자세히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전까지 여관 같은 데서 자보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숙소를 해결하고 가야 했다.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회사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곳에 사택이 있다고 했다. 먼저 들어와서 살고 있는 직원이 있지만 방이 한 개 비어 있으니 그리로 들어가면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시설이 낡았고 방이 작으니 기대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나는 가장 큰 짐을 덜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갈 준비를 했다.


    엄마는 커다란 찜통에 육개장을 끓여서 차에 실었다. 갈비찜도 압력밥솥에 가득 만들었다. 뒷칸에는 이불과 옥매트와 세숫대야 같은 게 실려 있어서 앉아 가기도 좁을 지경이었다.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음식을 많이 만들었어? 차가 흔들리면 다 쏟아지게 생겼네"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 보면 엄마는 극성스러운 구석이 있다.

"사택에 살고 있는 직원이 있다면서?  그 직원한테 음식도 대접하고 해야 앞으로 잘 봐줄 거 아냐 "

그렇게 차는 출발했다. 차는 짐을 가득 싣고 구불구불한 일차선 도로를 달렸다. 지금이야 도로가 정비되었지만 그때는 길이 형편없었다.  


 사택 건물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몇 년 전에 지은 건지 건물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고 색칠은 다 바래 있다. 그래도 공짜로 살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배부른 소리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실내로 들어가 보니 구조는 더 희한했다. 방이 두 개 딸려 있는데 방 한 개는 큼지막했다. 그런데 내가 묵을 방은 방이라고 하기가 좀 민망한 방이었다. 한 명이 누워서 이불을 덮으면 남는 공간이 거의 없는 사각형의 상자 같은 방이었다. 이게 애초에 방의 용도로 만들어진 건지 아니면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작은 방을 열어보고 실망하고 있을 때 이 집에 살고 있던 직원이 삐죽이 나와서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그래도 언니라고 불러야 금세 친해질 수 있겠지 생각하고 언니라고 불렀는데 그녀는 곤란한 표정으로 '정대리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친절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인정머리가 없었다.  엄마가 커다란 찜통을 들고 들어오면서 육개장을 끓여왔으니 같이 먹으라고 했을 때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 부탁한다고 엄마가 몇 번이나 인사를 했을 때도 마지못해 듣는 시늉만 했다. 배짱이 좋은 편이 못 되는 엄마는 눈치가 보이는지 짐을 내려 주고 금방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가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선배하고 잘 지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떠났다.


  엄마가 떠나고 나니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방으로 돌아왔는데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라디오도 없고 텔레비전은 당연히 없으니 방은 절간이었다. 게다가 방은 얼마나 좁아터졌는지 여기 있다가는 폐소공포증 걸리는 거 아닌가 이런 걱정까지 슬그머니 들었다.


  그 언니인지 정대리인지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나와보지도 않았다. 새로 사람이 왔으면 나와서 설명도 하고 제대로 인사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녀 방문을 두드릴 용기는 애초에 없었다. 그녀 방에서는 영어 문장이 일정하게 반복되는 소리가 들렸는데 영어 공부에 꽤 열을 올리나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나는 가방에서 신입사원을 위한 안내문을 꺼냈다. 읽을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내가 복무규정과 신입사원을 위한 교육 안내문을 거의 외울 지경이 되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나와 보라고 하였다. 이제 무슨 얘기를 해 주려나 하고 나갔지만 그녀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일단 냉장고를 사용하지 마라. 밥솥도 마찬가지다. 다 최근에 구입한 가전제품이다. 욕실에 있는 세탁기는 사용해도 되지만 단 탈수 기능만 사용해라. 그리고 네가 가지고 온 국이랑 음식은 먹을 생각 없으니 너 혼자 먹어라. 특히 주의할 것은 거실에 있는 전화기를 절대 받지 말아라. 그리고 나는 결벽증이 있다.

 

 그녀의 주의사항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녀는 결벽증이 있으니 공동공간을 깨끗하게 사용하라는 말을 특히 강조했다. 나는 당연히 알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설거지와 청소는 내가 전담해서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은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는데 그녀가 워낙 호의적이지 않아 보여서 그렇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지 하여간 부지불식간에 그런 말이 의도와 상관없이 내 입에서 나왔다.


 결국 나는 엄마가 끓여온 육개장과 갈비찜을 며칠 동안 혼자 해치웠다. 이때만큼 엄마가 손이 큰  것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쯤 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쿨한 성격이었다.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통에 그릇과 숟가락을 던져 놓고 수영을 하러 나가 버렸다. '결벽증이 있다면서 설거지도 바로 하지 않는 거냐' 이렇게 궁시렁거리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는 매일 퇴근하면 사택까지 걸어갔다. 사택까지 갈 때는 도무지 집이라는 곳으로 가는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불평할 처지는 아니었다. 집으로 가면 설거지통에 담긴 그릇을 씻고 거실을 청소했다. 그래도 그녀는 꽤 양심적인 면이 있어서 자기 방까지 청소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남자 친구에게 사택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한번 불렀다가 그녀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

"사택에 남자 들이는 거 아니야. 여기는 안 보고 있는 것 같아도 보고 있는 눈이 많은 곳이야. 괜히 소문나서 이미지 이상해지기 싫으면 처신 잘해라. 너 때문에 나까지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을 했고 그 후로 남자 친구가 사택에 오는 일은 없었다. 하여간 그녀는 까다롭고 피곤하고 힘든 존재였다. 나는 집에 있는 것보다 회사에 나가 있는 시간이 편했다.


어느 날 문제가 터졌다. 그 날은 아침부터 그녀는 미친 듯 히스테릭했다. 욕실에 세숫대야가 정리가 안 되어 있다고 발로 걷어찼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렸는지 나는 얼음이 되어 버렸다. 회사로 도망쳤는데 퇴근하고 오니 방문 앞에 A4용지가 붙어 있었다. ' 거실에 머리카락이 많이 떨어져 있음. 요 며칠은 먼지도 많이 날리는 것 같음. 물걸레질을 한번 더 하고 머리카락 확인할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런 미친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결국 나는 그 집을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한바탕 붙어서 싸우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살짝 무서웠다. 나는  말없이 짐을 싸서 나왔고 밖으로 나와서는 속으로 온갖 욕을 해줬다.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사택을 나와서 가까운 곳에 방을 얻었다. 보증금이 부담되었지만 사람이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그녀는 같은 사무실 유부남 아저씨와 사랑-그게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에 빠졌고 그 아저씨 부인이 사무실을 급습했다고 했다. 부인은 그녀에게 욕을 하고 머리채를 잡고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지만 자기 입으로 결벽증을 그토록 강조했던 그녀가 그런 지저분한 사랑을 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나 때문에 그녀가 그런 험한 꼴을 당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녀 덕분에 세상을 살아가려면 마음에도 단단히 중무장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직장생활도 만만치 않았으니 사회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그녀와의 시간은 냉혹한 사회에 발을 딛기 전에 혹독한 예행연습을 시켜준 잊지 못할 경험일런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생각해도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은 우습고 비굴하고 이상한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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