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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15. 2020

이제부터 명절에 무례함을 사양합니다.

  명절이면 큰 집인 우리 집에는 많은 친척들이 모였다. 어른들만 스무 명 가까이 되고 아이들이 열 명 가까이 되는 대가족이 모이면 사람들은 마루나 주방 식탁 아래에 마구 머리를 처박고 자야 했다. 화장실 한번 가려면 누워 있는 사람을 타 넘고 조심조심 화장실을 가야 했던 기억을 가족 간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훈훈한 기억으로 간직했다.


  어릴 때는 그 북적거림이 좋았다. 남자들은 안방에서 화투를 치거나 윷놀이를 하고 그것도 싫증이 나면 모두 방에 누워서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종일 전을 부치느라 허리가 끊어질 지경인 여자들은 제대로 자리에 궁둥이도 붙이지 못하는데 남자들은 며칠 밤을 새운 사람들처럼 자다가 일어났다가 자다가 일어났다가 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전과 막걸리로 상을 차려서 다시 술상이 벌어진다. 사실 남자들 입장에서 얼마나 즐거운 시간이겠는가. 밖에는 기름진 음식이 가득하고 주문만 하면 여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상을 차려서 방에 넣어줬다.


 시어머니는 시동생 때문에 꽤나 마음고생을 했다. 시동생은 취업을 하지 못했고 공무원 시험 준비만 7년 가까이 했다. 사실 준비한 지 5년이 넘어 버리자 본인조차도 거의 포기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고 시동생 이름이 특이한 이름인데도 불구하고 혹시 동명이인이 아닌지 몇 번이나 합격 여부를 확인했다. 그 후에는 운이 좋게도 승승장구해서 승진도 동기 중에서 제일 빨랐다.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기쁨도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머니는 명절이 되면 그 이야기를 곰국 끓이듯이 꺼내고 또 꺼내 놓는다. 어머니 이야기는 처음에는 공부를 꽤나 잘했던 주변 지인 자식들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걔는 참 공부를 잘했어. 그래서 고려대학교에 턱 하니 입학을 했지. 그런데 그러면 뭐하냐. 지금 뚜렷한 직장도 없이 그러고 있으니. 그리고 저 쪽 건너편에 약국집 아들은 또 어떻고. 그 집 아들도 공부를 그렇게 잘해서 대학교 갔을 때 잔치를 벌이고 난리를 치더니만 지금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지"


 그러니까 결국 어머니는 한때 쟁쟁했던 지인의 자식들이 별 볼 일 없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힘들게 살고 있는 그들과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시동생의 삶을 비교하고 극적 대조 효과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다시 한번 스스로의 가슴에 감동을 불어넣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할 때 어머니는 몇 번이나 반복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이야기를 하는 사람처럼 중간중간 이야기를 끊어가고 강약을 조절하면서 그 이야기의 감동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귀가 따갑도록 들은 이야기이고 어디쯤에서 약국집 아들이 등장할지 다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더군다나 그 얘기를 듣고 있으면 세상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성공한 사람과 불안정한 직장을 가진 실패한 사람으로 이분화되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고 마음은 불편해진다. 그렇지만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싫은 표정을 짓는 것도 어려운 입장이다 보니 나는 매번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열심히 듣고 있다. 불편한 마음을 애써 감추면서 말이다.



   친정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평생 무시당하고 힘들게 살아온 엄마에게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 젊은 시절 돈 많다고 으스댔던 사람들, 좋은 차 굴린다고 명절 때 와서 자랑만 잔뜩 늘어놓고 갔던 친척들을 이기고 싶은 심리 말이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그런 무시와 환멸로 한이 쌓인 걸 아는 딸들은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 한다.

" 엄마,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지 알지?" " 엄마, 이번에 김서방이 승진해서 연봉 엄청나게 올랐어요." " 엄마,  이번에 투자한 오피스텔이 또 올랐어요. " 뭐 그런 식이다. 엄마를 기쁘게 하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된 유치한 자기 자랑은 허물없는 가족 간의 대화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쓰고 거실을 날아다닌다. 명절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가 모여서 무슨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나 생각하면 딱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오로지 우리가 얼마나 속물인지 확인하고 돌아가는 것 같은 자괴감까지 스멀거린다.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가까운 친지, 가족과 모여서 서로를 비교하고 내가 지금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가늠해 본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쭈욱 보면서 자라왔다. 그러니 그렇게 배웠고, 배운 대로 자연스레 익힌 것이다. 명절에 사람들이 모여 앉으면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너 회사 어디 다닌다고 했지?" " 이번에 애는 어디 대학교 들어갔어? "그것도 아니면 " 너 요즘 사업은 잘 되냐? "뭐 그런 식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명절에 우리가 주고받는 질문은 상대방의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하고 있으며 때로는 몹시 무례하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경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사람을 볼 때 학력부터 확인하고 그 사람이 몇 평에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명절이 일정 부분  인간의 그런 기본적인 경쟁 욕구를 배설하고 분출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한솥밥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우리는 좀 더 지혜롭고 우아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번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면 무례한 질문과 대화에 단호하게 대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 본다. 명절에 이런 얘기를 나눠 보면 어떨까.

" 요즘에 어떤 책 읽고 있어요?" " 요즘 운동 많이 하세요? 산책하기 참 좋은 날씨죠" " 애들하고 여행은 자주 다니세요? 언제 캠핑 같이 가면 어때요?" "회사 생활하면서 힘들지는 않으세요. 내가 도와줄 일은 없어요?"


 이런 질문들 꽤 괜찮지 않나 싶다. 이제 명절에 모였을 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무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꿈꾸는 인간적인 품위와 예의를 가지고 모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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