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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16. 2020

형님과 동서의 관계 심리학

 카톡이 왔다. 엄마가 보낸 것이다.

" 너 혹시 여기 사진에 있는 곳이 어딘지 알겠냐? 여기 외국이지?"


  사진은 숙모와 삼촌의 사진이다. 엄마는 그러니까 숙모의 카톡 프로필을 캡처해서 보낸 모양이다. 숙모는 스팽글이 많이 달린 푸른 티셔츠를 입고 있다. 머리는 짧게 자르고 파마를 해서 나이보다 젊고 경쾌해 보였다. 엄마와 7살 차이가 난다고 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다. 사진 속 숙모는 삼촌과 팔짱을 끼고 야자수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아마 발리나 사이판쯤 될 것 같다.


  엄마는 큰 수술을 받기 위해서 오늘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들러서 얼굴을 보고 나올 때만 해도 피곤해서 금방 잠들 것 같은 얼굴이더니 이 시간까지 깨어 있는 것이다. 아마 엄마는 병원에 따라와 보지도 않는 아빠를 내내 원망하다가 이제 숙모 카톡까지 훔쳐보고 있는 거겠지. 엄마는 숙모가 어디로 여행을 갔는지, 그곳이 외국인지, 그리고 외국이면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여유가 있는 건지 이런 생각을 혼자 이리저리 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유난히 숙모의 카톡 사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둘은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니까 카톡으로 근황을 확인한다- 엄마는 숙모 카톡 사진이 바뀔 때마다 돋보기를 가져다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사진에 있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했고 삼촌하고 다정해 보이는 것 같다고 부러워했다.


   숙모가 이사 간 집 구경을 다녀와서는 한동안 그 집 얘기만 했다. " 세상에 텔레비전이 얼마나 큰지 한쪽 벽만큼 크더라. 그 정도로 큰 거 살려면 비싸겠지?" " 집을 얼마나 잘해 놨는지 나는 이때까지 집 구경을 가봤어도 그렇게 잘 꾸며 놓은 집은 보지를 못했다. 서울 외숙모 집은 거기에 비할 바가 안 되더라" 하고 연신 감탄을 했다.


  엄마와 숙모의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엄마는 과수원을 크게 하는 부잣집 딸이었고 그래서 할머니는 혼수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혼수라고 친정에서 보내온 리어카에는 서랍장 두 개만 달랑 실려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애초부터 딸자식을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딸 혼수에 돈을 쓸 생각이 없었다.


 내심 기대를 했던 할머니 입장에서는 사돈댁의 처사가 섭섭하고 괘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듬해에 시집온 숙모는 형편도 좋지 않으면서 꽤나 혼수를 신경 써서 시집을 왔다. 할머니는 다 들리도록 어쩌면 저렇게 딸 보내면서 마음 쓰는 게 다르냐고 노골적으로 엄마한테 불만을 토로했다.


    한 달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제사 때마다 아빠와 삼촌의 행동도 완전히 달랐다. 아빠는 임신해서 마루에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엄마 옆구리를 발로 툭툭 차면서 언짢은 기색을 했다. 사람들 앞에 누워 있으니 보기 싫다는 게 이유였다. 엄마는 얼른  방으로 들어갔지만 무안한 기분은 오랫동안 씻기지 않았다. 그런 아빠를 지켜보고 있는 눈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어려운 시집살이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남자가 자기 여자를 함부로 하는 것 같은 낌새가 보이면 깐깐한 시어머니는 더 혹독하게 변하는 법이고 철없는 시동생들은 형수를 더 무시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삼촌은 아빠와는 딴판이었다. 삼촌은 숙모가 부엌에서 오래 고생한다 싶으면 부엌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일거리 좀 줄이자고 항의도 했다. 아들이 자기 마누라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것 같다 싶으니 할머니도 숙모한테는 함부로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삼촌은 제사다 명절이다 부엌에서 고생하는 숙모가 안쓰러웠는지 결혼하고 몇 년 후부터는 숙모가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자기만 혼자 제사를 지내러 왔다. 평소 같으면 할머니가 숙모한테 날벼락을 쳤겠지만 웬일로 할머니는 삼촌 눈치를 보는 것 같았고 별 말없이 제사는 오롯이 엄마의 몫이 되었다.


  엄마는 묵묵히 제사와 명절을 준비했다. 제사를 지낼 준비가 다 끝나면 그제야 삼촌들이 왔다. 그들은 제삿밥을 먹고 나서 남은 음식을 챙겨서 돌아갔다. 삼촌들이 제사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엄마에게 5만 원을 찔러 주면 아빠는 펄쩍 뛰었다. 아빠는 그 돈을 앞치마에 넣으려고 하는 엄마 손을 거칠게 낚아채서 그 돈을 다시 돌려주곤 했다. 그럴 때 엄마는  제사에 와서 밥 먹고 가는 시동생에게 돈 몇 푼이라도 뜯어내려고 욕심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빠는 큰 형으로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는 철저했지만 엄마의 감정을 읽는 데는 서툴렀을 뿐 아니라 읽으려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서로 같은 집에 시집을 와서 둘 다 연거푸 딸만 낳았는데 한 사람은 남편한테 사랑받고 한 사람은 남편한테 사랑받지 못했다. 엄마는 자신이 딸만 낳아서 아빠가 냉랭한 것인가 싶었지만 숙모의 경우를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빠와 삼촌은 코와 눈매가 많이 닮았다. 그들은 늙어가면서 점점 더 비슷해졌는데 아내를 대하는 모습만은 사뭇 달랐다. 엄마는 아빠와 꼭 닮은 삼촌이 숙모를 존중하고 아껴 주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의 삶이 더 처량해졌다.


   삶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지만 그렇게 눈 앞에서 불공평한 상황을 매번 목격하게 되면 사람은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자기 삶이 불행한 것보다 숙모의 삶이 행복한 것을 더 못 견뎌했다.

 

 어쨌든 엄마는 수술을 앞두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 잠도 자지 않고 밤새 숙모의 카톡을 들어가서 사진을 구경하고 숙모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혼자 상상하고 그러면서 본인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일단 자고 수술 잘 받아야 앞으로 그 부러운 여행을 하든 카페 나들이를 하든 할 거 아닌가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잘 안 되는 거겠지. 사람은 머리로는 다 알고 있고 이해하면서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머리로는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한없이 유치하고 덧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한 발짝도 그 유치함을 못 벗어나고 있는 그런 미로 같은 순간 말이다.


  삶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숙모의 행복이 엄마의 몫에서 뺏어가거나 덜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숙모의 행복과 엄마의 불행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 관계도 없다. 엄마가 언젠가는 그것을 인정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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