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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Sep 19. 2020

브런치 작가의 책상

   아침부터 남편은 하얀색 커다란 널빤지를 이리저리 맞추느라 바쁘다. 그 널빤지는 12년 전에 동생을 데리고 살 때 동생의 조립식 책상에 사용하던 널빤지다. 그것은 오랫동안 베란다에 처박혀 있다가 이제 밖으로 나와서 책상이 되었다.


  그렇다. 들통이 나고 말았다. 오랫동안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기가 왠지 쑥스러웠다. 일단 나의 목표는 한 달 동안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글을 써보자는 것이었다. 이슬아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한 달 동안 매일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렇게 글을 쓸 만한 얘기가 나에게 많이 있을까?'


  그렇게 나의 비밀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다행히 재택근무를 하는 덕분에 출퇴근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나는 저녁에 업무가 끝나고 나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읽고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 저녁에 쓴 글을 아침에 읽으면 감상적이거나 민망한 내용이 많았다. '아. 밤이라서 이런 기분이었군'. '혼자만의  감정에 흠뻑 빠져서 썼군' 전날 저녁에 쓴 글을 아침에 찬찬히 읽어 보면서 글을 고치고 매일 발행을 했다. 그것은 두근거리면서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가장 큰 난관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평소에 야근을 하는 편인데 요즘 코로나 영향으로 부쩍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 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 들어오는 일이 몇 번 발생하자 나는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만 들리면 '아이쿠, 또 들어오는구만' 하고 실망하면서 애써 반갑게 남편을 맞았다. 그때마다 쓰다 만 문장들이 내 머릿속을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남편과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혼자 머릿속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건성으로 남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자꾸 예전 일들에 대해서 기억을 되새기거나 남편에게 자주 묻다 보니 남편은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혹시 "너 글 쓰냐?"라는 남편의 질문을 받았다.


  '역시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촉이 좋아. '


   이렇게 해서는 글쓰기를 계속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멀쩡한 남편에게 자꾸 낮잠을 권했다 "피곤해 보이는데 낮잠 좀 자지 그래?" 그러다가 남편이 진짜 잠에 빠지면 몰래 글을 썼다. 사실 나는 책상이 없었다. 그전까지 나에게는 책상이 필요하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는 거실에 의자를 사용하고 밀린 업무를 볼 때는 주방 식탁을 이용했다.


  하지만 꾸준히 글을 쓰려면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아이들과 남편 눈을 피해 구석에서 몰래 글을 쓰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졌다. 나는 할 수 없이 남편에게 내가 요즘 글을 조금씩 쓰고 있다고 쑥스러운 고백을 했다. 남편은 머리를 한참 굴리더니 작가의 책상을 만드어 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렇게 나에게도 책상이 생기는 역사적인 순간이 왔다.

 

 처음에 글을 쓸 때는 그냥 후련해서 쓰기 시작했고, 쓰고 나서 읽어 보니 재미가 있기도 해서 그게 또 만족스러워서 썼고 나중에는 '그냥 약속한 한 달간 써보자', '재택근무가 끝나기 전까지는 꾸준히 써보자' 해서 써봤다. 나는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글을 썼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는 몇 가지 사건도 생겼다.


   나의 글은 다음 메인에 4번이나 올라갔다. 어떤 날은 조회수가 3만을 넘은 적도 있었다. 나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어지러웠다. 하루 종일 라이킷 알람이 울리면서 나는 회사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메일을 엉망으로 작성해서 보내기도 하고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평소 동생을 못마땅해했다. 인스타그램에 꽂혀서 매일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업데이트하고 보정 사진을 올리고 팔로우 수를 확인하는 동생을 관종이라고 욕했는데 '사람의 속성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구나' 반성도 했다.


  그리고 나와 약속한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나는 질문을 던져 본다.

" 왜 브런치 작가를 하기로 마음먹었을까?" " 그리고 브런치 작가를 하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브런치 작가를 하는 것은 나의 떠올리기 싫은 상처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이고, 하루하루 흐르는 시간 속에 흘러간 기억과 감정을 조금 더 오래 붙잡는 것이고,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조금 더 명확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 조금 더 재미있고 의미 있어졌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이제 '작가의 책상'에 앉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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